51. 다 잊었네! 20211223
‘이렇게 까마득하게 잊을 줄이야.’
도레미파의 7 음계 자리도 잊어버리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허망하다는 마음뿐입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물건이 어느 날 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옛날에는 능숙하지는 못했지만,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끈 일도 있었습니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커튼 뒤에 숨기다시피 놔두었던 기타를 끄집어냈습니다. 이사를 와서 십여 년이 넘도록 구석에 있었으니 깨끗한 외모는 아닙니다. 기타의 집을 걸레로 정성껏 닦아냈습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기타는 옛날처럼 그 모습입니다. 새 얼굴이나 진배없습니다. 내가 이 기타를 산 것은 오십여 년 전입니다. 이십 대에 마련한 기타는 관리 소홀이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몸이 부실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십여 년을 함께하다 보니 폐기 처분을 했습니다.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악기는 두 번째입니다. 제법 친해지기도 하련만, 마음과는 달리 점차 곁에서 멀어졌습니다. 한동안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올해는 칼림바와 친해지기 위해 틈틈이 악보를 익혔는데 커튼을 들치다가 옛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자전거나 스케이트, 또는 수영은 익힌 지 오래되었어도 다시 하게 되면 곧 익숙해지는데 오늘 내가 만지는 기타는 완전히 느낌이 다릅니다. ‘도’가 어느 위치더라, ‘미’ 솔은……. 지판의 음 자리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7 음계의 자리를 짚을 수가 없습니다. 황망합니다. 불협화음입니다. 잠시 머뭇거리다 생각한 것이 인터넷입니다.
급한 대로 유튜브에서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찾아보니 7 음계의 이야기는 없고 초급이라고는 화음의 코드를 잡는 설명이 대부분입니다. 다시 이곳저곳을 찾아 헤맸습니다. 드디어 찾아냈습니다. 서너 차례 천천히 따라서 음의 자리를 짚어가자, 느낌이 살아났습니다. 5분 정도를 하다가 멈췄습니다. 그만해야 합니다. 마음이 조급하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퇴직하고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처럼 하기로 했습니다. 욕심을 내다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정도로 해야 합니다. 천천히 생각하며 매일 조금씩 늘려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내가 말했다.
“기타 어디서 났어요?”
“하나 샀지, 뭐.”
“처음 보는 거라서. 그래서 새것이구먼. 그런데 집은 헐었네.”
“한진 아파트에 살 때 음악을 하는 동서 아들에게 부탁했잖아.”
내가 기타를 산 것은 대학교 때입니다. 하숙을 함께 하는 친구가 기타를 쳐서 종종 그의 기타를 만졌습니다.
간단한 멜로디를 연주할 수 있을 정도가 되자 정식으로 배워보고 싶은 생각에 큰 맘을 먹고 샀습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화음을 넣으려고 하자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심하게 다친 왼손이 문제입니다. 손가락 마디의 구부림이 부자연스러우니 제대로 코드를 짚을 수가 없습니다. 하면 될 거라고 하는 생각에 몇 달이나 반복했지만 허사입니다.
고민 끝에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아니 손을 바꾸었습니다. 기타의 줄도 바꾸었습니다. 왼손잡이로 왼손잡이 기타에 도전했습니다. 생각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코드를 잡을 수 있고 화음을 넣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쉬운 곡은 화음을 넣으면서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참 재미를 느낄 시기였지만 여기서 멈췄습니다. 직장이 집에서 멀어 시간을 빼앗겼습니다. 기타와의 얼굴을 보는 기회가 적었습니다. 어쩌다 만지면 늘 그 타령입니다. 발전은 고사하고 퇴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두 번째로 산 기타는 오랫동안 눈에서 마음에서 잊혔습니다.
퇴직을 하고부터는 더구나 악기란 악기는 손에서 멀어졌습니다. 오르간, 리코더, 하모니카도, 올해 겨우 손에 잡은 칼림바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기타를 꺼내기 전 리코더를 꺼냈다. 하지만 리코더는 오래되어 이음매가 삭았습니다. 내 부실해진 이처럼 말입니다. 시간이 없었어도 틈틈이 기타를 가까이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랬으면 악기 하나는 다룰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기타 집의 먼지를 닦고 줄을 조율하느라고 오늘 첫날 첫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옛말에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았나.’ 소걸음으로라도 걸어야겠습니다. 아니 거북이걸음이 되더라도……. 힘들게 용돈을 모아 산 악기이니 좋아하는 몇 곡쯤은 소화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