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별이 된 아이 20230118
‘별’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별을 달고 다니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나와 비교해 키가 크고 가냘픈 모습입니다. 핏기가 없는 새하얀 얼굴입니다. 2학년 때 전학을 왔습니다. 외진 산골의 학교, 우리 반에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초등학교는 규모가 작았습니다. 한 학년에 한 반입니다. 학생도 도회지 학교에 비하면 적습니다. 전학을 가는 친구는 더러 있지만 전학을 오는 학생은 일 년에 한두 명입니다. 새 학기가 되어 선생님이 인사이동이 있으면 그 아들이나 딸이 함께 가고 옵니다. 그 외에는 특별한 경우에나 있는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우리 반에 두 명의 전입생이 있었습니다. 한 학생은 여자입니다.
학기 초가 시작되었습니다. 며칠 후 선생님이 아이의 손을 잡고 교실의 앞문으로 들어섰습니다. 순간 우리들의 눈은 아이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까까머리’
시골에서 흔히 보는 머리가 아니라 스님의 얼굴입니다. 옷까지 스님의 복장입니다. 책보자기도 회색입니다.
선생님이 아이의 이름을 말했습니다. 전입생의 얼굴은 떠올릴 수 있지만 이제는 이름을 기억할 수 없습니다. 절에서 다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먼 거리입니다. 부모가 불심이 깊어 학생을 절에 맡겼다고 합니다. 어쩌면 함께 졸업할지도 모르니 친하게 지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녀와 한 번도 말을 한 일이 없었습니다. 책상과의 거리가 떨어져 있고 하굣길도 다릅니다.
늦가을 서리가 내리는 시기입니다. 입동 무렵, 낯 모르는 남자아이를 앞세우고 담임선생님이 교실의 앞문을 드르륵 열었습니다.
“새로 온 친구다. 봄에는 여자, 가을에는 남자네.”
남자 친구들이 와! 함성을 질렀습니다. 축구할 때 짝이 맞지 않았는데 함께 뛰어놀 수 있어서 좋습니다.
며칠이 지났지만, 친구는 뛰어노는 데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교실의 양지쪽 벽에 붙어서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입니다. 나도 달리기에는 소질이 없기에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서리가 하얗게 내린 어느 날입니다. 밭의 보리가 하얀 가루를 뒤집어썼습니다. 마치 밀가루를 흩어 뿌린 모습입니다.
“무를 어제 뽑았어야 했는데, 일손이 바빠서…….”
된서리입니다. 등교하는 동안 손이 시려옵니다. 귀를 매만졌습니다. 귀도 시립니다.
학교에 도착하자 책보자기를 책상에 넣고 밖으로 나와 교실의 벽에 붙었습니다. 검은 벽면은 어느새 온기를 품었습니다. 언 손을 벽에 대자 따스함이 묻어나옵니다.
“일찍 왔네.”
봉삼이가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앞자락에서 무엇인가 반짝 빛났습니다. 몸을 돌려 가슴을 쳐다보았습니다. 쇠붙이입니다. 눈을 가까이했습니다.
“왜 그래? 보석이…….”
“별이야, 대장 별.”
외삼촌이 대장으로 제대했다고 했습니다. 무엇인가 떠올리는 밝은 얼굴입니다. 자랑스러운 표정입니다.
날이 추워지나 봉삼이는 매일 목도리를 하고 학교에 왔습니다. 집에 갈 때까지 목도리를 푸는 일은 없었습니다. 목도리를 볼 때마다 별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장래 희망이 뭐지.”
집안 식구들의 물음에 늘 국군 대장이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장래 희망을 물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군 대장이 되려면 씩씩하게 행동해야 한다기에 교실에서 발표할 때는 교실이 떠나가도록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는 말이 맞습니다. 갑자기 큰 소리가 나자, 친구들의 귀를 막았습니다.
“나한테 별 좀 빌려주면 안 될까?”
봉삼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몸에 지녀보고 싶어서 몇 번인가 청을 했지만, 번번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봄빛이 완연한 어느 날입니다.
“별을 빌려줄까. 하루만이야.”
나는 선물이라도 받은 양 고마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집에 가서 며칠 전 제대한 삼촌에게 자랑해야겠습니다.
“별 가져왔니?”
“깜빡 잊었네.”
“내일은 꼭 가져와. 잃어버리면 나 외삼촌한테서 쫓겨나.”
나는 주기가 싫었습니다. 내가 국군 대장이 되어야 합니다. 가슴에 붙여보기도 하고 얼굴에 붙여보기도 했습니다. 거울을 보니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별이 하늘의 별보다 더 멋져 보입니다.
“나 주면 안 될까? 국군 대장 되고 싶은데.”
“별만 단다고 대장이 되는 것이 아니야.”
친구는 어른스럽게 말했습니다. 더는 참을 수 없으니 내일 가져오지 않으면 친구를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졸업할 때까지도 추운 날이면 늘 목도리나 모자에 별을 달고 학교에 왔습니다.
그가 가을 어느 날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
“나 지금 가면 언제 너를 만날지 모르겠다.”
서산의 본가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집안이 가난해서 그동안 외삼촌 댁에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중학교에 갔는데 너와 나는 집에 있게 되었다며 서운한 표정입니다.
까까머리 여자애는 한 학년 올라간 어느 여름날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스님 학생은 돌아오지 않아.”
부모가 보고 싶어 몰래 절을 떠나 본가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자라는 말을 강조했습니다.
얼마 전 동창 모임에서 초등학교 때 친구들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그 둘의 안부를 묻기 전에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스님 학생을 짝사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마을에 살기에 함께 등하교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곁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순간 나는 황순원의 소나기를 떠올렸습니다.
‘봉삼이와 까까머리 학생이 친했던 거야.’
나만 몰랐던 일입니다. 그녀가 학교에 오지 않았을 때 봉헌이의 얼굴이 몹시 그늘져 보였던 이유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윤 초시네 증손녀와 소년의 사랑’ ‘봉삼이와 까까머리 아기 스님의 사랑’
“너 혹시 2학년 때 전학해 온 까까머리 여자 친구 알고 있니?”
봉삼이는 말을 흘린 채 그는 떠났습니다.
스님은 자취를 감춘 뒤 오래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답니다. 며칠 후 절로 돌아와 극락의 길로 향했습니다.
봉삼이 동구 밖 징검다리를 건너며 말했습니다.
“별을 줘도 될까?”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지금은 별을 단다고 대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를 만나고 나서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하늘의 별이 되었답니다. 그가 생각이 날 때면 가끔 하늘을 올려봅니다. 오늘은 시린 별을 하나 발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