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내일 모래는 설날. 20230120
‘타닥 타다닥 타다닥…….’
타악기들이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온 동네가 시끄럽습니다. 온종일 동네가 떠나갈 듯합니다. 보름 전부터 서서히 시작된 울림은 요즘에 들어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타악기의 연주보다 활기찹니다. 이 연주도 오늘이면 끝이 날 것 같습니다. 늦어도 끝맺음은 내일 낮 정도라고 여겨집니다. 다음이질 소리입니다.
지금도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이 노래를 배우고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의무적으로 국경일의 노래를 익히고 행사 날 부르던 것처럼 이 노래를 배웠습니다.
“할머니 감나무에서 까치가 울어요.”
“누가 오려나.”
나는 이제나저제나 하고 하루 종일 바깥을 내다보았습니다. 누가 찾아올지는 모릅니다. 까치는 반가운 손님을 알리는 국조의 역할을 했는데 요즘은 숫자가 많다 보니 유해조류로 인식되었습니다.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원흉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귀한 대접을 받던 새가 어느새 기하급수로 늘어 미움을 받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듬이질 소리, 다음이 소리는 설이 다가올수록 늦은 어둠을 사정없이 때립니다. 어느 때는 새벽까지도 밤을 재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도 모자라 낮에도 이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 이런 시끄러움이 계속된다면 난리를 칠 것입니다. 작은 소리에도 예민한 사람들이 그냥 있을 리 없습니다. 층간소음에 예민한 사람들이 참고 견딜만한 사안이 아닙니다.
다듬이질 소리는 다 같은 게 아닙니다. 연륜에 따라 음악성에 따라 다릅니다. 숙달된 사람의 방망이질은 타악기의 연주자를 능가합니다. 한 마디로 정도를 넘어 기교를 부립니다. 한이 숨어있고, 기쁨이 배어 나오기도 합니다. 다듬잇돌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여인네들의 조화 있는 두드림은 평소 익숙한 하나의 악보를 읽어가는 셈입니다. 때로는 무겁고 때로는 가벼운 울림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며느리와 며느리, 올케와 시누이…….
나는 가끔 다듬이질하는 할머니나 어머니 곁에서 홍두깨를 돌려드린 경우가 있습니다. 나무 방망이에 돌돌 말린 천을 골고루 두드릴 수 있도록 눈치를 보아가며 회전시킵니다. 방망이질하는 이유는 구겨지고 쭈그러진 천을 곱게 펴기 위한 방법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연섬유 특유의 광택과 촉감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인사동에 갔을 때입니다. 우리의 민속 물건을 파는 가게를 들여다보다가 다듬잇돌과 방망이를 발견했습니다. 곧 만들어 낸 것처럼 새것입니다. 진열장 안에 있는 것을 잠시 눈여겨보았습니다. 옛날 같으면 제소리를 내기 위해 연륜이 쌓여야겠지, 족두리를 쓴 새색시를 떠올립니다. 혼수 감입니다. 어쩐지 내가 두드리는 소리가 날 것만 같습니다.
몇 해 전에는 황학동 골동품 거리를 찾아갔습니다. 무엇을 사기보다는 옛 물건이 많다고 하기에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말 그대로 옛날의 고태가 나고 손때가 묻은 것들입니다. 놋그릇을 비롯하여 등잔, 신발, 서상, 다듬잇돌……. 저 다듬잇돌을 보는 순간 우리 할머니나 어머니의 손때 묻은 연륜만큼이나 세월을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중 요령이 눈에 뜨였습니다. 두부 장수의 종소리, 상여가 나갈 때의 종소리가 들립니다. 하나 사고 싶었지만 망설이고 말았습니다. 두부 장수의 종이면 좋겠는데 상여꾼의 종이라면 하는 꺼림칙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도 죽음에 대해 이해가 부족함을 느끼는 게 확실합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안 계신 틈을 타서 다듬이질했습니다. ‘턱턱 터덕’ 박자가 맞지 않습니다. 리듬이 맞지 않습니다. ‘터 더덕’ 방망이가 홍두깨에서 미끄러지며 다듬잇돌을 때렸습니다.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터져버렸잖아.”
할머니가 이불 청을 펴다가 낙담하셨습니다. 나를 쳐다보십니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습니다. 할머니가 반짇고리에서 바늘과 실을 꺼냈습니다.
지는 해가 어느새 지붕을 넘어 뒤뜰을 찾아왔습니다. 어수선한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외지로 나간 이웃집 식구들과 아저씨 아주머니의 말소리가 뒤섞입니다.
“잘 있었던 거야.”
다 못한 다듬이질이 이어집니다. 도회지에 나갔다 돌아와서도 재주는 잃어버리지 않았나 봅니다.
‘다닥닥닥, 다다 다닥’
할머니가 이웃집 울타리 너머로 안부를 전합니다.
“애들 온 거여, 지순이, 지금이.”
“예, 형님.”
“우리 애들도 조금 있으면 올 거야.”
할머니는 압니다. 다듬이 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압니다.
내일모레면 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