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20. 솥 이야기 20230119

by 지금은

시야가 흐려지며 눈물을 주르르 흘립니다. 뜨거움의 눈물입니다. 이제는 단련이 됐으련만 참을 수가 없나 봅니다.


솥뚜껑에 긴 금이 갔습니다.


“감자 꺼내 먹어.”


삼촌의 말에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부엌은 뜰에 비해 내 허리만큼 깊습니다. 솥뚜껑을 들 힘이 부족한 나는 뚜껑의 손잡이를 잡고 옆으로 끌어내렸습니다. ‘쨍 그를’ 소리와 함께 뚜껑이 솥 안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부뚜막 위로 올라갔습니다.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들어 올렸습니다.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뚜껑의 크기가 솥의 지름보다 크다 보니 끝에 걸려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뚜껑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기울여 보지만 쇠와 쇠의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잘못을 저질렀다고 혼이 날까 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청했습니다. 삼촌도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이상한 일도 다 있네, 어떻게 뚜껑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지?”


바깥일을 끝내고 돌아온 할머니와 작은어머니가 뚜껑을 꺼내보려고 했지만, 마음 같지 않았습니다.


“전에도 두 번이나 빠진 일이 있어 어찌어찌하다 보니 빼내기는 했는데.”


참는 데 한계를 느꼈는지 모릅니다. 삼촌은 뚜껑을 대각선으로 하여 힘을 주었습니다. ‘터 더덕’ 마찰음을 일으키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뚜껑이 밖으로 탈출했습니다. 가장자리에서 손잡이 쪽으로 긴 줄이 그어졌습니다. 뚜껑에 금이 갔습니다.


“솥을 바꾸어야겠네.”


하지만 올해의 형편으로는 개비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저냥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혼이 날까 봐 마음을 졸였지만, 식구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쓸 만큼 썼다는 생각입니다. 할머니는 뚜껑이 여닫는 동안 많이 닳아 일어난 일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이야 주변에서 무쇠솥을 보기가 어렵지만 내가 시골에서 살 때는 이와 반대로 양은솥이 귀했습니다. 우리 집은 무쇠솥 일색입니다. 쇠죽을 쑤는 가장 큰 솥, 물 끓이는 솥, 밥 하는 솥, 국 끓이는 솥, 모두가 가마솥입니다. 동네의 이웃들의 부엌에도 무쇠솥입니다. 몇몇 집은 우리와는 다르게 작은 솥도 있었습니다. 우리 부뚜막이 오래돼서일까요. 살강도 집을 지었을 때 그대로라고 합니다. 많은 음식을 할 때는 좋지만 때에 따라서는 불편한 점도 있습니다. 음식을 조금 할 때입니다. 때를 지나 한 사람의 손님이 오면 밥을 새로 지어야 합니다. 큰 솥에 일 인분이나 이인분의 쌀을 안치고 보면 퍼야 할 밥보다 누룽지가 더 많습니다.


“내년에는 작은 솥으로 바꾸어야지.”


할머니는 불편함을 알면서도 어쩐 일인지 해마다 그냥 지나치셨습니다.


‘솥의 눈물.’


사랑방의 쇠죽을 쑤는 가마솥, 물을 끓이는 솥, 밥 하는 솥, 국을 끓이는 솥,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아궁이에 불이 들어가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숨이라도 내뱉듯 ‘푸’하고 길게 하얀 김도 내뿜었습니다. 뚝배기도 냄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불에 손가락을 넣어본 일은 없지만 뜨겁다고 눈물을 흘린 일도 없습니다. 나는 아파서 눈물을 흘렸는데 불 위의 그릇들은 뜨거움에 눈물을 흘립니다. 주전자는 뜨거우면 소리까지 지릅니다.


내가 서울에 살 때는 양은솥을 사용했습니다. 식구가 단출하다 보니 크기도 작았습니다. 연탄아궁이에 맞게 하려다 보니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양은솥은 깨끗해 보이고 닦기가 편합니다. 무쇠솥은 쓰지 않으면 벌겋게 녹이 습니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으려면 기름칠을 해두어야 합니다. 무겁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쇠솥을 비롯한 무쇠 조리기구가 인기 있는 이유는 음식의 맛을 더해주고 건강에 유익하다고 합니다. 장점을 열거해 보면, 열을 빨리 흡수하는 열전도율과 열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열 보온성이 높아, 조리 시간을 줄여주고 음식의 영양소 파괴를 줄여줍니다. 뚜껑이 무겁기 때문에 음식 재료에서 나온 수분이 증발을 막아 저 수분 요리에 효과적입니다.


방학 때 시골집에 갔더니 뒤 곁에 양은솥이 보였습니다. 가마솥에 비해 작지만, 우리 집에 사용하는 것보다 두세 배 컸습니다. 깨진 무쇠솥은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깨진 금을 때웠습니다. 할머니가 결혼하면서 마련한 살림살이 중 하나입니다. 솥뚜껑을 열어보며 말했습니다.


“정이 들어서 버릴 수가 있어야지.”


“빠진 게 있어요?”


“아니다, 내 맘을 알고 있는 모양이로구나.”


솥은 할머니를 따라갔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집이 헐리고 솥들도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곳에 무너진 돌담을 따라 바람만 홀로 원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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