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22. 설날 20230122

by 지금은

‘가야 하나, 가지 말아야 하나. 갈까 말까.’


잠시 고민했습니다. 명절이면 어김없이 가던 형님 댁에 가지 않았습니다. 벌써 몇 년이 되었습니다. 형님이 쓰러지고 나서부터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급격한 전염병의 확산은 경제는 물론 사람들의 마음조차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명절은 쓸쓸하기만 합니다. 옛날에 비해 분위기가 많이 변했습니다. 가족이나 친지들의 모임이 많이 줄었습니다. 설날에 온 가족들이 모인다기보다는 여행을 떠나거나 각자 쉬는 분위기로 변했습니다.


잠시 명절의 표정을 돌아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일차 이차 산업시대는 지금과는 분위기가 완연히 달랐습니다. 외지에 있던 사람들은 명절이 돌아오면 고향이나 부모님을 찾아가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부모 형제들은 집 나간 식구들이 으레 돌아오는 줄로 알고 기다렸습니다.


‘서울에 계신 어머니가 오늘은 오실까.’


명절이면 더 바쁘시다는 전갈을 들었어도 보고 싶은 마음에 하루 종일 동구 밖을 서성이며 산모퉁이를 눈여겨보았습니다. 여느 때와는 달리 많은 사람이 산모롱이에서 나타납니다. 아이들은 멀리서도 자기의 식구인 줄을 알아차리고 길을 향해 달음박질합니다. 함께 돌아오는 그들의 눈이 방글거리고 입에는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선물 보따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보자 반기기보다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습니다. 언덕에서 이들을 바라보다가 가까워지는가 싶었을 때 나무 뒤로 몸을 감추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어색함을 느꼈습니다. 그들이 지나가자, 얼굴을 빠끔 내밀었습니다. 그들의 뒷모습만 보이고 아무도 없습니다. 다시 언덕에서 산모롱이를 향해 눈을 가져갔습니다.


점심을 먹는 것도 잊었습니다. 저녁 무렵 십 여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삼촌이 자전거를 타고 왔습니다.


“늦었는데 여태까지 기다렸어.”


반가워하는 얼굴입니다. 자전거 뒤에 앉으라고 했지만, 고개를 저었습니다. 기다릴 사람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올해도 오시지 못했습니다.


유년 시절 우리 집은 명절 때면 늘 시끌벅적했습니다. 아버지 형제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모두 여덟 남매나 됩니다. 한 달 전부터 다듬이질 소리가 밤낮없이 집안을 울렸습니다. 설맞이에 이것저것 할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우리뿐만 아닙니다. 온 동네가 들썩입니다. 동구 밖을 나서면 이웃 동네에서도 화답하듯 다듬이질 소리가 찾아옵니다. 그러고 보니 온 나라가 방망이질 소리에 묻혔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이불 홑청, 옷가지를 다듬는 소리입니다. 이 한 달은 여인네들이 귀신의 손이라도 빌려야 할 만큼 바쁜 시기입니다. 귀신이라고요, 어쩌면 감히 동네에는 얼씬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밤낮 두드려 대는 방망이질 소리에 귀신일망정 적응이 될지 모를 일입니다.


설날의 차례와 세배,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아침 떡국을 먹고 나면 온 동네를 제집 드나들듯 돌아다닙니다. 이웃 어른들께 안부 겸 세배입니다. 외지에서 돌아와 왔건 아니건 세배는 기본입니다.


“떡국 모양이 영…….”


아랫집으로 분가한 삼촌이 말했습니다. 오는 손님에게 대접하면서 미안한 기색을 보입니다. 나는 세배를 마친 다음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습니다. 나에게 일부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눈이 상상외로 많이 내린 해입니다. 폭설로 인해 나뭇가지가 꺾이고 쓰러졌습니다. 돼지우리가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흰떡을 좀 뽑아왔으면 좋겠다.”


삼촌은 바쁜 일이 있으니, 방앗간에 가서 떡을 해오라고 부탁했습니다. 밥을 지어놓을 테니 한 번만 갔다 오면 된다고 합니다. 무릎까지 빠지는 길을 걸었습니다. 시루를 지게에 짊어지고 걷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지게질이 서툴다 보니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입니다. 시키는 대로 흰떡을 해왔습니다.


“이렇게 하면 떡국이…….”


방앗간 아저씨는 떡이 풀어져 떡국의 태가 나지 않을 것이라며 이것은 우리가 술을 담글 때 쓰고 대신 쌀을 빻아줄 터이니 한 번 더 수고하라고 했습니다. 쌀가루를 집으로 가져가 시루에 쪄서 가져오면 결이 고운 흰떡을 뽑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삼촌이 그냥 뽑아오라고 했는데요.”


추운 날씨에 고생시킨다는 생각에 한 말임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지금은 쌀을 가지고 가면 그 자리에서 빻고 쪄서 흰떡을 만드는 시대입니다. 아니 그런 수고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거나 주문하면 됩니다.


하지만 정이 없는 설이 되었습니다. 찾아갈 곳도 찾아오는 사람도 적어집니다. 추억이 하나씩 둘씩 줄어듭니다. 대신 명절답지 않은 쓸쓸한 명절이 찾아옵니다.


며칠 후에는 조카에게 전화해야겠습니다.


“코로나19도 한풀 꺾이고 마스크를 쓰는 일도 해제되었으니 이번 추석부터는 명절을 쇠러 너의 집에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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