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글을 쓴다는 것 20240119
말을 잘한다는 것은 듣는 이가 잘 알아듣도록 하는 것입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읽는 이가 잘 이해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나는 말재주, 글재주가 있는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둘 다 중요하지만, 나에게는 글보다는 말로 표현하는 게 더 어렵게 여겨집니다.
모임에 가면 가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도 합니다. 어찌어찌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할 말을 상대가 먼저 내놓았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막상 말하려고 하면 정리가 안 되거나 앞뒤가 꽉 막힐 때가 있습니다. 말해놓고 실망하기보다는 들어주는 편을 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격 탓일지 모르겠습니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 한 명은 글 솜씨가 부족한 대신, 말을 재미있게 합니다. 괜히 지껄이는 게 아니라 분위기에 맞게 말을 쏟아냅니다. 모인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는 동안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웃음 반, 미소 반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즐거운 시간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친구가 어느 날 말했습니다.
“너 말하는 것 글로 옮겨 봐. 좋은 작품이 될 거야.”
“배운 게 있나 뭐, 글을 쓸 줄 알아야지.”
며칠 전 이 친구의 글이 인터넷 신문에 실렸습니다. 읽어보라는 소식이 왔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틈이 나기에 읽어보았습니다. 눈이 번뜩 뜨입니다. 소리를 내어 읽어보았습니다. 짧은 글임에도 귀가 번쩍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쓴 글임에도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일부의 글을 인용합니다.
강아지 체력 단련하느라 색색 뛰어다니는 가게 주인에게 “이 복숭아 맛있어요?” 하니 “맛 들었어요” 한다. 장마철인데 맛이 있을까, 없을까. 이 복숭아 인물만 좋은지 맛이 있는지 안에 있는 점원에게 또 물었다. 그 복숭아 익었어요. 익은 건 나도 안다. …….
말을 옮긴 줄글이지만 한 편의 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툭툭 던지는 말이 종종 시라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슨 일일까. 그에게서 시는 물론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 일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모으면 줄글이 되고 한 번 한 번 던지는 말이 모이면 한 편의 시가 되지 않을까. 그림에서 점이 모이면 하나의 선이 되고 선이 모이면 면이 되고 면이 모이면 입체가 된다는 원리를 생각합니다.
그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가끔 글을 써보는 게 어떠냐는 말을 했습니다. 시를 지어보라고도 했습니다. 손사래를 칩니다. 뭘 아는 게 있느냐는 말입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일어섰나, 움직이다 보니 그렇게 됐지.”
동시, 동요집을 한 권 주었습니다. 다 아는 것이랍니다. 학교에 다닐 때 읽고 부르고 하던 내용입니다. 그의 말에 반은 됐다고 했습니다. 이 속에는 당신의 생각이나 말이 들어있다고 글귀를 짚어주었습니다. 제 키가 미루나무처럼 크다고 말합니다. 바람이 불면 몸이 휘청거리는 흉내를 내기도 합니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말을 재미있게 하거나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재능도 있어야겠지만 그보다는 생각하고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합니다. 같은 것, 늘 보는 것이라도 새롭게 보고 자세히 관찰해야 합니다. 크고 무거운 것에서 소재를 찾기보다는 작은 것, 소소한 것을 들여다보면 새로움을 발견하기가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합니다. 문장을 모으고 서서히 다듬어가다 보면 완성된 글이 될 수 있습니다. 남의 글을 꾸준히 읽다 보면 어느새 내 글의 문장 표현도 함께 발전하게 됩니다.
친구의 글이 완성도 면에서는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해도 내용의 곳곳에 반짝이는 표현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시작이 늦었으니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나는 말과 글이 잘 어우러지는 문장을 좋아합니다. 말은 말로써의 가치가 있고 글은 글로서의 가치가 함께 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림은 점으로부터 시작되고 글은 낱자로부터 시작됩니다. 잘 그리고 싶고 잘 써보고 싶다면 우선 필기구를 들고 책상 앞에 앉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최대의 무기는 꾸준함이라고 여겨집니다. 생각하는 바를 꾸준히 옮깁니다.
나요, 뭘 아는 척 글은 이렇게 썼어도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것에 불과합니다. 아직도 남 앞에 서서 자신 있게 생각을 표현해 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하는 것도 꾸준함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을 잘해야 글을 잘 쓸 수 있는 것처럼 말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남 말 하다가 내 중요한 이야기를 빠뜨렸습니다. 말하는 훈련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회에 말에 관한 책 몇 권이라도 읽기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나의 글 쓰는 습관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꾸준히 갈고닦아야 합니다. 나는 작가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으니 소소한 일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