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빛과 그림자 20230124
설을 며칠 앞두고 처조카가 전화했습니다.
“어머니가 이모를 보고 싶어 해서 외삼촌께 인사도 드릴 겸 찾아뵐게요.”
처형은 동서가 작년에 세상을 떠난 후 혼자 살고 있습니다. 몇 달 전 시외버스를 타고 집에 와서 하루 자고 갔습니다. 하루가 멀다고 전화로 이야기하지만, 얼굴을 보고 싶은가 봅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니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차 타는 곳이 달라져서 엄두가 나지 않네.”
“그럼 내가 갈까.”
교통이 불편하고 집이 비좁다는 관계로 극구 사양을 합니다. 갑자기 만남의 장소가 변경되었습니다.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답니다.
우리는 아들의 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워커힐로 향했습니다. 빛 축제에 초대했습니다. 알고 보니 조카가 기획 전시를 한다는 곳입니다.
‘빛의 시어터’
‘구스타브 클림트’의 작품과 ‘이브 클랭’의 작품을 형상화했습니다. 갤러리의 벽면은 물론 천장과 바닥까지 공간이란 공간은 빈틈없이 빛으로 채웠습니다. 빛이 순간순간 움직일 때마다 형상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사라집니다. 연출 방법이 다르기는 하지만 쉽게 표현하면 영화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구스타브 클림트’는 빛의 화가입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색, 전통이나 관념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선, 매혹적인 관능미를 그의 작품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비엔나 곳곳에 숨겨진 초기 작품부터 우리에게 사랑받는 <키스>가 있습니다. 웅장한 건축물을 지나 클림트의 정원을 거닐고 그와 예술적 영감을 나눈 ‘메곤 쉴레’의 작품도 보았습니다.
‘이브 클랭’은 후기 인상파 화가로 인물과 풍경을 주로 그렸습니다. 1950년대 파리의 한 아트페어에서 퍼포먼스를 시작했습니다. 에펠탑 사이로 한 남자가 등장하고 파란색 물감이 연신 쏟아집니다. 바로, 이 파란색이 이브 클랭의 사랑하는 색입니다. 그의 캔버스가 된 공간에서 벌거벗은 인체의 자국이 찍히고 화염에 휩싸입니다. 그의 창의적 영감을 경험해 봅니다.
오늘 내가 본 빛의 시어터, 그동안 내가 볼 수 없었던 큰 규모와 디지털 명화의 찬란한 빛, 색깔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습니다.
조카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프로젝트 빔이 무려 120여 대가 투입되었습니다. 이것들이 동시에 빛을 쏘아 갤러리를 꾸몄습니다. 빛의 어울림을 위해서는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교육이나 설명을 위해 교실에서 사용하는 프로젝트 빔은 하나입니다. 우선 눈에 보이는 규모에 놀랐습니다. 빛이 교차하고 나눠지는 가운데 각각의 구성들이 이루어지고 이야기가 연결됩니다. 전시회나 설명회에 가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나는 잠시 한 자리에 서서 주위의 변화를 살피다가 공간을 차지한 사람들이 작품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작품의 일부분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자리에 서 있는 사람, 이곳저곳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장면 속의 그림 같습니다. 궁금함에 서서히 자리를 옮겼습니다. 나도 그림의 일부분이 되고 싶었습니다. 위로 아래로 좌우로 난간을 따라 오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중앙의 바닥을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작품과 어울려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구스타브 클림트’. ‘이브 클랭’과 함께 있다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지금 나도 그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다시 위층 난간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치 내가 어느 낯선 외국에 가 있는 느낌입니다. 백 년 이백 년,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전으로 돌아가 있습니다.
밖으로 나와 차 한 잔씩을 들고 강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앉았습니다.
“감상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어요?”
“즐거웠어. 느낌도 오고.”
미리 알림은 없었지만 나름의 지식을 살려 감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작년 봄부터 도서관에서 서양미술사에 관한 프로그램을 수강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주 일회로 육 개월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렘브란트, 모네, 르누아르를 비롯하여 유명 화가들의 생과 그림을 이야기했습니다. 이 중에는 구스타브 클림트도 있습니다.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빛의 화가라는 이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전시회에서 액자 속의 그림만 보던 나는 클림트의 재해석된 작품을 감상하면서 전자기기와 영상매체의 결합한 결과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5월이면 새로운 작품을 소개합니다.”
“힌트를 주면 안 될까.”
누구의 세계가 펼쳐질지 벌써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