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공차기 20230126
어제 오후에는 콧물을 닦아가며 공을 찾는데 밤새 눈이 내렸습니다. 추웠습니다. 영하 17도, 근래에 경험하지 못한 추위입니다. 공에게 겁이라도 주려는 듯 연신 바닥을 통통 굴렀습니다. 앞의 낮은 벽에 막혀 ‘대그르르’ 되돌아옵니다.
‘부지런히 움직여, 빨리 돌아와.’
닦달하듯 한동안 내 발이 쉼 없이 움직입니다. 공은 겁을 먹은 듯 발동작을 따라 되돌아옵니다. 나는 지금 공을 함께 찰 친구가 없습니다. 오로지 공과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창밖을 보니 눈발이 세차게 쏟아집니다. 잠을 자는 사이에 대지를 하얗게 뒤덮었습니다. 어둠이 물러가는 뒤를 따라 어느새 길게 바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아파트관리사무실 직원들이 넉가래로 눈을 밀어내며 길을 내고 있습니다. 긴 줄이 바깥의 버스정류장까지 이어졌습니다. 몇 사람이 그 길을 종종걸음으로 따라갑니다. 곧이어 한 떼의 아이들이 잔디 광장에서 달립니다.
‘눈이 오면 강아지와 아이들이 제일 좋아한다더니만.’
방학이라 늦잠을 잘만도 하지만 눈이 온다는 소식에 약속이라도 한 듯합니다. 밀가루를 곱게 펼쳐 놓은 듯 가지런히 내려앉은 눈은 금방 매끄러움을 잃었습니다. 잠에서 깬 아이들이 이불을 마구 밟아놓은 모습입니다. 눈이 오면 눈사람 만들기, 눈싸움만큼이나 공을 차는 재미도 있습니다. 공이 움직임을 거듭할수록 아이들은 어느새 하나 둘 겉옷을 벗었습니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나는 슬그머니 공을 집어 들었습니다.
“뭐 해요.”
“공을 차 볼까 하고.”
“꼭두새벽부터, 아침이나 먹고 생각해요.”
밥이 익어가는 동안 거실에서 할 일없이 공을 이리저리 굴려봅니다.
아침을 먹고 밖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뛰놀던 아이들이 사라졌습니다. 그 정갈해 보이던 눈밭은 마구 흐트러져 있습니다. 공이 지나간 자국, 아이들의 발자국이 뒤엉켜 하나의 무채색 화폭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바닥에 멋진 모습을 안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동화 속 눈 나라, 눈 오리병아리, 아니면 눈사람이라도.
아내가 구석에 있는 공을 집어 들었습니다.
“식사했으면 운동을 해야지요.”
“내 운동장을 아이들이 엉망으로 만들어버렸어, 공이 잘 구를지…….”
갑자기 밖으로 나갈 마음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었는데 지금은 빈 곳입니다.
잠시 그쳤던 눈발이 창밖에서 춤을 춥니다. 내리는 모습으로 보아 하루 종일 흩날리지 않을까 합니다. 어린 시절 소리 없이 내리는 가루눈은 긴 시간 동안 꾸준히 계속되었습니다. 갑자기 깡통을 차고 놀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공 대신 쭈그러뜨린 깡통을 찼습니다. 빈 통에 작은 돌멩이 몇 개를 넣었습니다. 찰 때마다 소리를 내며 달아납니다. 공과는 달리 방향을 예측할 수 없으니 달아나는 곳을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공을 잘 차는 아이나 못 차는 아이나 함께 어울리기에 좋습니다. 어느 해인가 운동회 날 편을 갈라 깡통을 차며 목표물을 돌아오는 경기도 했습니다. 안대로 눈을 가렸습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잠시나마 시각장애인의 고충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찌그러진 깡통을 차고 있습니다.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구릅니다. 구르기보다는 발끝에 의해 떠밀려 갔다는 말이 맞습니다. 달그락달그락 눈밭을 구르면서도 소리를 잊지 않았습니다. 순간 내 발끝을 떠난 깡통이 길로 벗어났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잠시 주춤하더니 나를 향해 몸을 돌렸습니다. 깡통이 작은 소리를 내며 나를 향했습니다.
“옛날 생각이 나요.”
손을 들었습니다. 그도 손을 들었습니다. 무언의 인사라면 좋겠습니다. 깡통을 차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집에서 학교에 이르는 길을 걷다 보면 지루할 때가 있습니다. 깡통을 차거나 굴렁쇠를 굴리며 뛰고 걷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닿았는지 모릅니다. 며칠 전에 비운 작은 깡통이 어린 추억을 되살렸습니다.
놀이터의 아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나도 찰 수 있을까요.”
나는 말없이 발 안쪽으로 밀었습니다. ‘달그르르’ 깡통이 아이를 향했습니다. 상대방은 발밑에 있는 자신의 공을 나에게 넘겼습니다. 눈은 그때처럼 멈출 줄을 모릅니다.
“옛날 생각이 나요.”
손을 들었습니다. 그도 손을 들었습니다. 무언의 인사라면 좋겠습니다. 깡통을 차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집에서 학교에 이르는 길을 걷다 보면 지루할 때가 있습니다. 깡통을 차거나 굴렁쇠를 굴리며 뛰고 걷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닿았는지 모릅니다. 며칠 전에 비운 작은 깡통이 어린 추억을 되살렸습니다.
놀이터의 아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나도 찰 수 있을까요.”
나는 말없이 발 안쪽으로 밀었습니다. ‘달그르르’ 깡통이 아이를 향했습니다. 상대방은 발밑에 있는 자신의 공을 나에게 넘겼습니다. 눈은 그때처럼 멈출 줄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