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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 봄소식 20240204

by 지금은

‘입춘대길 건양다경 (立春大吉 建陽多慶)’


아침이 되자 여기저기서 봄을 알리는 인사가 바람처럼 날아옵니다. 2월 4일 오늘은 올해의 첫 번째 절기로 생명이 약동하는 새봄이 왔음을 알리는 날입니다. 글의 뜻대로 입춘이 드니 크게 기쁜 일이 생기고, 새해가 시작되는 좋은 일이 많아지기를 바란다는 내용입니다. 입춘대길만사여의형통(立春大吉萬事如意亨通)도 많이 쓰이는 글귀입니다. 이 밖에도 여러 문구가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입춘이 되면 입춘첩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써서 대문 앞에 붙였습니다.


어렸을 때입니다. 시골집에는 대부분 입춘첩을 붙였습니다. 도시의 생활은 잘 모르지만, 이 또 하나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이나 글씨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이웃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하나의 부적 역할을 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세월이 흐르고 도시에 살면서는 이런 입춘첩을 붙이는 일이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지금은 도시의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눈에 잘 뜨이지 않습니다. 특별한 곳이나 아직도 옛 풍습을 간직하려는 사람 소수만이 명맥을 유지합니다. 도시 생활하는 동안 우리 집 문간에 몇 차례 입춘첩을 붙였습니다. 처음에는 쓸 줄을 모르니 남이 준 것을 붙였습니다. 이후 아내가 붓글씨를 배우면서 한글로 된 첩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이마저도 머릿속에서 떠나갔습니다. 앞산에 봄이 오는 느낌을 감지하면서 이야기했지만 정작 입춘첩이란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나의 경우 입춘은 냉탕과 온탕을 넘나드는 날이었습니다. 엊그제부터 몸이 불편한 듯했는데 드디어 탈이 나고 말았습니다. 하루 종일 움직임이 없어 그런가 보다 하고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어두워지자, 공원을 이곳저곳 걸었습니다. 비가 그치고 흐린 날씨에 찬기가 몸에 스며들었습니다. 점심을 평소보다 많이 먹은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더부룩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자고 나면 괜찮아지려니 했습니다.


아침잠에서 깨났을 때는 온몸이 뜨겁습니다. 한여름을 맞은 몸의 열기에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약을 먹었지만, 별 효과가 없습니다. 조금 지나자, 이번에는 춥고 떨립니다. 두꺼운 겉옷을 입었습니다. 이불속을 파고들었습니다. 냉탕과 온탕을 넘나드는 것처럼 하루 내내 시달렸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입춘을 맞이하는 기분이 엉망입니다.


입춘을 맞이한 오늘의 기온은 51년 만에 가장 기온이 높은 날이랍니다. 잠시 뉴스를 보니 봄소식을 전합니다. 복수초가 눈 속에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수목원에는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영춘화도 보입니다. 설강화도 보입니다. 오늘 서울의 최고 기온은 12도랍니다. 많은 사람이 야외로 나와 봄을 즐깁니다. 이와 반대로 나는 한 겨울의 추위를 느낍니다. 누구에게나 다 같은 봄이 아닙니다. 아침, 저녁 식사를 걸렀습니다. 속이 좋지 않을 때는 약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속을 비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동안의 경험이라고 해야겠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적게 먹어야 되겠다 느끼지만 그게 마음 같지 않았습니다. 요즘 입맛이 당겼기 때문인지 식성이 과하다 싶었습니다.


욕심 중에 특히 물욕, 성욕, 식욕을 조심하라고 했는데 잊었습니다. 늘 기억한다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속을 비우려고 한 게 맞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녁이 지나면서 점차 속이 편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아내가 종일 굶어서 되겠느냐며 뭔가 먹고 싶은 것을 물었지만 고개를 저었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나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입춘이 되었지만 봄이 아직 우리 곁에 마음처럼 다가온 것은 아닙니다. 내가 오늘 온몸으로 온탕과 냉탕의 감각을 반복적으로 느낀 것처럼 겨울은 쉽게 봄에 자리를 양보하지는 않습니다. 밀고 당기기를 여러 차례 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온이 높다고 했지만, 이틀 후에는 내려갈 거라고 합니다. 4월에도 눈이 내리는 날이 있는 것을 보면 아직은 봄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이릅니다. 그러고 보니 설날이 다가옵니다. 대동강의 얼음이 풀린다는 우수, 개구리가 놀라 뛰쳐나온다는 경칩이 남았습니다. 봄은 절기를 따라 그렇게 서서히 우리 곁으로 다가옵니다.

기분을 바꿔야겠습니다. 봄을 향해 손짓합니다.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찾았습니다. 조용하던 방이 갑자기 환해지는 느낌입니다. 올해는 보내온 봄의 인사처럼 만사형통(萬事亨通)의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큰 소망은 건강입니다. 동요를 흥얼거립니다.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너도나도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 종다리도 높이 떠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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