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 조용한 밤 20240203
“언제 시합해요?”
“오늘 밤, 자정을 넘기고.”
경기가 끝난 다음 날 아침 아내가 물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물음에 알쏭달쏭합니다. 잠시 생각을 하니 ‘오늘 밤 아니 내일 밤’ 헷갈립니다. 밤 0시를 기준으로 오늘과 내일을 가르니 내일이 맞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뉴스를 확인하고 말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오늘 밤이라고 하는 게 좋습니다.
아내는 작년과 올해 들어 야구와 축구에 관심을 보입니다. 전에는 중계를 보면 뭐 그리 좋다고 눈을 떼지 못하냐고 말했습니다. 그런 그가 내 옆에 앉아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습니다. 경기 규칙입니다. 왜 줄 밖에서 공을 던지느냐, 왜 경기를 멈추고 공을 상대편이 차느냐, 다른 선수들은 상대편 공을 막을 생각을 하지 않고 키퍼 혼자서만 공을 막으려고 하느냐는 둥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질문을 합니다. 이에 따라 드로잉, 프리킥, 페널티 킥에 관해 설명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질문이 있지만 연습장에 그림을 그려가며 상황을 말했습니다. 설명이 통했을까요. 운동경기에 관심이 없던 아내는 빙상, 농구, 배구, 탁구 등 스포츠에 관심을 보입니다.
요즘 아시안컵 축구 경기가 카타르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대회에 참가하기 전부터 우승할 것이라는 예측을 했습니다. 역대 참가 선수 중 실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입니다. 참가하고 보니 만만한 팀이 없습니다. 쉽게 여기던 팀과도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은 탓인지 졸전을 치렀습니다. 우선 16강 안에 들었지만, 경기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나 세계 여러 나라의 눈이 우승에서 멀어지겠다는 추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16강 경기를 치르던 날입니다. 밤 한 시입니다. 우리 식구들은 며칠 전부터 서로 날짜를 확인했습니다. 나는 잊지 않기 위해 스마트 폰에 알람을 설정했습니다. 늦은 밤 경기를 하는 동안 내내 마음을 졸였습니다. 우리 국민이 바라는 대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우리 팀이 시작과 동시에 쉽게 한 골을 먹었습니다. 이어지는 지루함은 후반전 끝날 때가 되어서야 한 골을 만회했습니다. 연장전 무승부, 승부차기를 했습니다. 주전 키퍼가 부상으로 이미 선수 명단에서 빠지고 평소에 믿음이 가지 않던 후보 키퍼가 골문을 맡았습니다. 이후 내가 염려하던 생각을 몰아냈습니다. 상대편 선수의 골을 두 개나 막아냈습니다. 혈투 끝에 8강에 올랐습니다. 이긴 것은 다행이지만 다음 경기가 걱정됩니다. 잘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채 조용히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오늘 밤에는 우리나라와 호주와의 경기가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내일 오전의 밤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아들이 출근하면서 장을 봐오겠다고 했습니다. 와인이라는 말도 꺼냈습니다. 이전 우리나라와 요르단의 경기가 있던 날입니다. 시청하는 내내 무미건조하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입이 즐겁지 못했습니다. 군것질거리를 준비하지 못한 탓입니다. 술을 즐기지 않지만 마음에 걸렸던지 와인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말을 했습니다. 사 온 물건 중에는 정말 와인이 있습니다. 잘 보이는 식탁에 미리 놓았습니다. 이번 경기만큼은 잘 풀릴 거라고 추측했는데 마찬가지로 우리 편이 불리했습니다. 전과 별 다름없이 한 골을 먹었습니다. 지루한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끝날 무렵이 되었을 때 상대방의 반칙으로 페널티 킥을 차 넣었습니다. 연장전에서 상대의 반칙으로 프리킥을 찼습니다. 공은 골문의 구석을 갈랐습니다. 연장전이 끝나고 승부차기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우리 골키퍼에게 마법의 주문을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상대 선수들의 허탈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기쁨의 모습도 보였지만 힘들어하는 기색이 안쓰러웠습니다. 삶이 그렇습니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승자와 패자의 갈림은 역력하게 대비됩니다. 아쉬움이나 쓰라림, 또는 환희와 해냈다는 만족감을 각각 읽을 수 있습니다. 나의 경우 딱지치기, 구슬치기, 팽이치기에도 희비가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하찮게 여기는 일이기는 하지만 어린 마음에는 그 어느 시합이 못지않았습니다.
선수들의 모습이 화면 속에서 사라질 때 우리 식구도 각자의 잠자리를 향해 일어났습니다. 비로소 식탁의 와인병이 눈에 뜨였습니다. 초반에 우리가 골을 넣었다면, 경기가 맘먹은 대로 풀렸다면 병은 침묵을 지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음 경기를 위해 다 같이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어야겠습니다. 결승전까지 경기가 잘 풀리기를 기대합니다.
우승의 샴페인 대신 와인 뚜껑을 열었어도 좋을 듯합니다. 공 하나에 밤잠을 설치고, 공 하나에 울고 웃는 밤이 되었습니다. 나 내일 탁구 하는 날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