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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5. 스무 살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20240205

by 지금은

내 생애 중 스무 살, 20대에게 쓰는 편지는 처음이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잠시 망설여집니다. 글을 쓸 때면 늘 존댓말이 손에 익숙해져서 나에게도 존댓말을 써야겠습니다. 글쓰기 동호회원이 이번 주에는 위의 제목으로 글의 주제를 정해주었습니다. 입춘이 어제인데 오늘은 추적추적 가는 비가 내리더니만 점심때가 지나자, 진눈깨비로 변했습니다. 어둠이 다가오면서 다시 비로 바뀌었습니다. 강원도와 전라도에는 폭설이 내리고 있다지만 우리 고장에는 봄을 부르는 비의 손짓인지도 모릅니다. 겨울과 봄의 사이에서 하늘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오락가락하고 있나 봅니다.


내가 당신이 된 그때, 당신은 이맘때쯤이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아직도 방학의 맛을 알아 학생의 신분으로 할 일 없이 빈둥거렸습니다. 장래의 뚜렷한 목적 없이 하루하루를 죽였다고 해야겠습니다. 그렇다고 건달 흉내를 낸 것은 아니고 실속은 없어도 그저 남 보기에 착실하다는 말로 대신합니다.

스무 살의 나이에 직장이 되었습니다. 그 시절 선망의 대상이던 기관차 승무원이 되었지만 1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공부의 욕심이 나를 다른 곳으로 이끌었고 졸업 후에는 곧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 직원이 7명밖에 안 되는 시골의 작은 학교입니다. 겨울 방학이 되면 학교는 절간이 됩니다. 아이들이 오지 않는 교정은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낮에도 고요합니다. 교정의 온기라고는 오로지 교무실의 난로입니다. 일직은 여선생님, 숙직은 남선생님입니다. 당신은 겨울 방학의 반은 학교에서 밤낮을 보냈습니다.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리고 교통편도 불편해 학교의 울타리에 갇히는 게 편했습니다. 촌구석의 인기 없는 학교이고 보니 신출내기 교사의 집합소입니다. 이 년이 지났을 때 어느새 서열 삼위의 교사가 되었습니다. 나보다 후배의 여교사가 두 명이나 되었습니다. 몸을 가까이하다 보면 마음이 가까워지는 법, 외로움이 마음을 불러옵니다.


누구는 스스로 집까지 찾아와 어머니와 식구들에게 선을 보였지만 나는 그들을 잡지 못했습니다. ‘바보 천치가 아니야.’ 발정이 끝난 수놈처럼 그들에게 마음은커녕 눈길을 주지 못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내가 떠나던 날 그중 한 사람이 배웅하면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다음 학교에서도 별다르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누구는 내가 없는 사이에 어머니를 뵙고 며느리가 되면 좋겠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답니다.


“목석이 따로 없지.”


말이 없는 분이지만 가까이 지내면서 손 한 번 잡아봐야 아는 게 아니냐는 말씀이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남의 과일이 더 커 보인다고 그들이 짝을 찾아 떠났을 때야 좋은 과일이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동물이나 나무나 때가 있는 법, 삼십이 가까워지자, 마음이 초조해집니다. 그때 그 사람, 그때 그 사람 하나둘 머리에 떠올리지만, 누구도 내 배우자로 손색이 없다는 마음이 듭니다.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20대의 세월을 흘려보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삼십에 이르러서 연애한다는 게 더욱 어렵게 여겨졌습니다. 본의 아니게 중매를 택했습니다. 이 사람이 소개하면 이 사람, 저 사람이 소개하면 저 사람입니다. 수없이 보면서 퇴짜를 놓기도 하고 퇴짜를 맞기도 했습니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당신에게도 짝이 찾아왔습니다. 30세를 훨씬 넘긴 때입니다. 그때 그 많은 사람, 인연이 닿지 않았어도 좋은 사람들이라고 때 지난 마음에 애태운 시기도 있었지만, 더 좋은 사람이 있어 뜸을 들였는지 모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부부의 정이 켜켜이 쌓아집니다. 내가 당신이 되고 당신이 내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상대의 등이 가려운 것을 당신이 먼저 알아차리고, 당신의 머리가 시린 것을 아내가 먼저 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스무 살의 당신은 한 마디로 멋쩍은 사람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융통성이 없다고 해야겠습니다. 직장에서의 일과, 직장과 집을 오가는 통근 시간밖에는 삶이 없었습니다. 왕복 네댓 시간을 거리에 쏟아내다 보니 삶의 자체가 핍박했다고 해야겠습니다. 가족의 울타리를 떠나면 곧 무슨 큰일이 이라도 생길 것만 같았던 시절, 빈곤한 삶이 모두를 어렵게 했는지 모릅니다. 별을 보고 집을 나서고 별을 보며 집으로 들어가야 했던 20대, 장발이 유행하던 시절 당신은 오로지 스포츠머리를 고집했습니다. 그 지절 군인 검문소를 지날 때마다 검문에 걸려 헌병(군사경찰)의 인도로 초소를 수없이 드나들었습니다. 짧은 머리는 군사경찰이 바뀔 때마다 우선순위로 지목되어 신분증을 확인했습니다. 군부대에 비상이라도 걸리는 날이면 초소에서 삼사십 분을 허비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의 20대는 참 재미없는 시간이었군요. 당신의 60대를 슬그머니 끼워 넣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건강 좋았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지, 누군가의 본보기 역할도 할 수 있었지, 책을 원 없이 만질 수 있는 사서(司書)지, 다 늦은 나이지만 연애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지, 하지만 그렇다는 느낌표일 뿐이지. 아내와 중매로 만나기는 했지만, 어느덧 깊은 연애 중이니까. 아무래도 당신 마음 알아요.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연애 원하는 만큼 하고 싶다는 걸. 목마른 추억엔 갈증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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