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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 명절이 다가 온다. 20240206

by 지금은

추위에도 봄은 눈 속을 비집고 서서히 눈치를 봅니다. 봄은 제자리에 서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엊그제가 바로 입춘이어서 날씨가 포근했는지 모릅니다. 봄은 진눈깨비에 잠시 몸을 숨기는 듯했지만, 곧 모습을 드러낼 것이 확실합니다. 입춘은 곧 설을 불러냅니다. 함께 대지의 생물들을 깨워볼 요량입니다.

‘휘요, 휘요.’ 휘파람 소리가 귓전으로 달려옵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소식을 알립니다. 며칠 사이에 봄이 다가옴을 알고 있는 듯 여러 가지의 문자가 자주 내 곁을 찾아옵니다. 무슨 내용인가 하고 스마트 폰을 들었습니다. 평생학습관의 프로그램 알림, 도서관의 도서 반납 문자, 노인회관의 동호회, 노인복지관의 봄맞이 행사, 친구들의 건강과 모임, 경쟁이라도 하듯 서로 다른 음으로 내 마음을 흔듭니다. 시끄럽다는 생각에 한동안 알림 소리를 꺼놓았습니다. 조용해서 좋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는 전화가 왔습니다. 뭐가 그리 바빠서 문자도 확인하지 않느냐는 핀잔입니다. 누구겠습니까. 친구입니다. 확인해 보니 만남이 있는 날을 지나쳐 버렸습니다. 학습관의 프로그램 중 마음에 드는 것도 신청하지 못하고 지나쳤습니다.


이게 아닌데 하는 마음에 다시 알림 소리를 살린 순간입니다. ‘휘요, 휘요’ 문자가 번개처럼 날아왔습니다. 노인복지관에서 소식을 전합니다. 명절을 앞두고 행사를 하니 참석하여 함께 즐기라고 합니다. 윷놀이, 딱지치기, 주사위 던지기, 아이들의 재롱과 실버합창단의 공연도 있습니다. 봄을 맞을 복지관의 문이 활짝 열리는 징조입니다. 해가 노루 꼬리만큼 길어진 요즘 기온도 점차 상승의 기미를 보입니다. 어제는 비록 진눈깨비가 질척질척 내렸지만 봄을 알리는 신호가 아닐지 여겨집니다.


“우리 복지관 행사에 참여합시다.”


곁사람은 할 일이 있답니다. 마음먹은 일이니 홀로 가방을 챙겨 일어났습니다. 가는 길에 옆 건물의 도서관에 들러 책을 몇 권 반납하고 새로운 것을 빌려야겠습니다. 시간에 맞추어 정류장으로 향했는데 저만치 셔틀버스가 보입니다. 늦게 나온 거야 하는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갔지만, 정해진 시간보다 앞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찻길이 붐비지 않았나 봅니다. 숨을 고르며 차에 올랐습니다.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그들도 나처럼 행사에 참석할 것이라 짐작이 됩니다.


행사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내 앞으로 긴 줄이 이어졌습니다. 윷놀이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 그만두고 딱지치기와 주사위 놀이 장소에 마음을 두었습니다. 딱지치기와 주사위를 던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저것도 못 넘겨서야 원’ 몇 사람이 딱지를 넘기려 애썼지만 한 사람 외에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내 차례가 되자 의기양양하게 딱지를 집어 들었습니다. 도우미가 분위기를 살려줍니다.


“딱지 잡은 폼이 멋져요.”


“어려서 많이 해보기는 했는데.”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으로는 딱지를 무한정 넘기는데 손은 겨눈 곳을 벗어납니다. 바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힘의 세기도 약합니다. 세 번 하기로 했는데 다섯 번을 휘둘러도 딱지는 뒤집어질 마음이 없습니다. 딱지를 쥔 손이 녹슬었나 봅니다. 지난해 해본 제기차기와 굴렁쇠 굴리기는 괜찮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주사위를 들었습니다. 도우미의 말입니다. 두 개를 동시에 던져 짝수가 나오면 깜짝 선물을 주겠답니다. 홀수와 짝수, 그러고 보니 반반의 확률입니다. 집에서 연습을 좀 해볼 걸 그랬나 봅니다. 집에는 종이도 많고, 작은 주사위도 몇 개 있습니다. 이미 지나버린 일의 생각이랑은 미련을 둔다 한들 소용이 있겠습니까. 도우미가 딱지치기하는 내 모습을 곁눈질했을까요, 성공하지 못하면 어쩌지요 하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입니다. 딱지 치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모릅니다.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반반이니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섭니다. 던졌습니다. ‘와! 짝수군요.’ 도우미가 제일인 양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나의 입술도 따라갑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의 고유 놀이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신 서양의 놀이와 여러 가지 장난감들이 아이들의 생활환경을 파고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네 마음속에는 제철이 다가오면 지난날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어오릅니다. 딱지치기를 이렇게 못해서야 하는 마음이 가시지 않습니다. 집에 가면 왕 딱지를 몇 장 접어야겠습니다. 지난해의 달력을 버리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내 딱지를 몽땅 따간 이웃집 춘식이 형이 생각납니다. 마음씨 좋은 형이 왜 나를 짓궂게 놀렸는지. 돌담 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용용 죽겠지 하며 혀를 쏙 내밀었습니다.


‘내 실력을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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