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 기억의 개비닛 20240212
설날 마지막 연휴입니다. 오랜만에 미술 감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림입니다. 서울 삼성동 마이아트 뮤지엄(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작가 이리야 밀 스타일의 ‘기억의 캐비닛’입니다. 틈틈이 무료 전시장을 찾아가 미술품을 감상하곤 했지만, 이번에는 관람료를 내고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 워커힐에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빛의 시어터’를 본 후 오랜만입니다. 작품의 세계는 서로 다릅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한 화가이자 상징주의자 아르누보 스타일의 대표적인 작가. 작품은 주로 초상화와 누드 그림, 장식적 패턴과 금색을 사용한 화가로 유명합니다. ‘빛의 시어터’는 압도적인 규모의 공연장에서 화려한 빛과 조명, 웅장한 음악으로 이루어진 영상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바닥, 벽면, 천정을 화면으로 채웠습니다. 굴곡진 구석구석까지 빛이 점령했습니다.
이에 비해 오늘 감상한 이리야 밀 스타일의 작품 전시는 기억의 캐비닛이라는 의미로 캐비닛에 들어갈 만한 작은 화폭이지만 그 하나하나의 화면 속에는 수많은 기억을 불러올 수 있는 것처럼 작가의 세계관을 담고 있습니다. 전시는 4부 19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져 각기 다른 내용으로 그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화폭에 그림을 가득가득 채우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상하는 동안 마음에 다가오는 그림이 예쁘고 따뜻했습니다. 다채로운 그의 묘사를 하나하나 관찰하게 하고 그림 속에서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특히 만화적 요소가 가미되어 어린이들도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작품들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습니다. 제목은 ‘티레니아 해 옆 서재'입니다. 모두 세 작품인데 빼곡히 들어찬 서재에서 창밖으로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남자의 뒷모습이 사색적이며 고독해 보였습니다. 다음으로 양옆으로 보이는 그림 역시 책들로 가득 찬 서재의 창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함박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쓸쓸해 보인다든가, 고독해 보인다든가 하지만 화면 속의 인물과 동화되었습니다. 나 또한 무엇인가를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지 않나 하는 마음입니다. 나는 섬에서 먼바다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나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요.
함박눈이 대지를 뒤덮은 날의 크리스마스를 기억합니다. 며칠 전부터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던 눈은 전날부터 쉬지 않고 하늘을 마구 채웠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눈은 소리 없이 바닥에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람도 없는 낮, 바람도 숨은 밤, 눈은 순백의 이불이 되었습니다. 유리창 밖을 틈틈이 내다봅니다. 발목까지 오르는 눈은 무릎까지도 묻을 태세입니다. 어둠이 몰려오지만 정작 깊은 어둠은 아닙니다. 가로등 불이 보이지 않는 곳의 가까이 있는 물체를 분간할 수 있는 어둠입니다.
하지만 장지문의 손바닥만 한 유리를 통해 수시로 밖을 응시합니다. 어머니는 어디쯤 오고 계실까? 밤이 깊어지자, 밖으로 나왔습니다. 대문 밖입니다. 저녁에 직장에서 귀가하는 사람들이 내놓은 눈길에서 서성입니다. 가끔 사람들이 내 곁을 지나쳐갑니다. 내가 움직이는 자리는 어느새 동그란 원이 그려졌습니다. 가고 오는 사람들을 피하다 보니 바닥은 자연스레 다져진 눈구덩이가 되었습니다. 걱정되어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을 나갔습니다. 자정이 되어갈 무렵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뭐 하려고 나왔어.”
어머니의 머리에는 보따리가 없습니다. 빈 몸입니다. 대신 신발이 눈을 뒤집어썼습니다. 고무신이 끈에 묶여 있습니다. 벗겨질까 봐 미리 끈으로 묶으셨습니다. 눈이 많이 내려 버스가 다닐 수 없다고 하여 먼 시장에서 돌산 길을 넘어 걸어오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큰 보따리는 시장에 맡겼다고 하십니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 어머니는 늘 눈길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집에 돌아오셔서 저녁을 한술 뜨실 때입니다.
“메밀묵 사려, 찹쌀떡.”
“어린것이 불쌍하기도 하지, 이 눈 내리는 밤을 헤집고 다니는구나.”
어머니의 말씀입니다. 손바닥만 한 유리창 밖으로 그믐달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가끔 창밖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깁니다. 어느새 보이지 않는 봄이 눈에 들어옵니다. 건너편 산의 나무들이 희미하게 봄을 부릅니다. 하늘을 향해 손짓합니다. 오늘은 내내 액자 속의 내가 되었습니다. 아내가 아들이, 액자 속의 인물을 지우고 나를 대신 그 자리에 세웠습니다.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