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 신수 좋은 해 20240213
어느 해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음력 섣달의 끝 무렵 삼촌은 토정비결을 사 오셨습니다. 다가오는 새해의 길흉화복을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책이 귀하던 시절이니 토정비결 책이라고 해서 흔할 수는 없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동네에서 학식이 높고 연세가 많으신 남자 어르신을 찾아가거나, 이웃 동네의 훈장님을 찾아가 토정비결을 알아보았습니다. 신수를 보는 것은 삼촌 당사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집안 식구들의 안녕을 묻는 기회였습니다.
시골을 떠나 서울에 살면서부터는 어머니가 식구들의 한해 신수를 챙기셨습니다. 사주 명리에 밝다는 철학관을 다녀오셨습니다. 철학관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점집입니다.
“올해는 삼재가 있다는구나, 조심해야겠다.”
말씀을 들었지만, 그때뿐 얼마 지나지 않아 잊었습니다. 지금은 더구나 기억에서 영원히 멀어졌습니다. 떠올리는 것이라고는 모든 일에 조심하라는 내용입니다. 간추려보면 건강 조심, 사람 조심, 자연 조심이라고 요약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가끔 부적을 가지고 오시는 일도 있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문지방 위의 벽에 붙여놓거나 식구 중 누군가가 항상 지닐 수 있도록 옷에 감춰주기도 하셨습니다.
밤에 식구들이 한방에 모였습니다. 삼촌이 등잔불 아래 토정비결을 펼쳤습니다.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조합하여 수자를 계산하고 펼쳐야 할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항목을 하나하나 천천히 읽어갑니다. ‘꿈보다 해몽이 좋아야 한다’는데 이게 문제입니다. 내용은 대강 짐작할 수 있지만 풀이가 문제입니다. 이 생각이 맞기도 하고 저 생각이 맞기도 할 것 같습니다. 고민입니다. 서로의 의견이 분분하기도 합니다. 이러는 가운데 식구들의 신수를 예측했습니다.
나는 어떨까, 나이가 어리고 보니 먼저 내 일 년의 신수를 보아달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할머니가 우선입니다. 이제나저제나 하며 눈치를 보았습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늦은 밤까지 기다렸지만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참다못해 말했습니다.
“삼촌, 나는 어때요?”
“너는 너무 어려서 토정비결에 나오지 않아.”
어리다고 무시하는 것인지 귀찮아서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사람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신수를 볼 수 없다고 하니 믿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년이면 확인할 수 있을까. 어서 나이를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점에는 윷점이란 게 있고, 쌀 점도 있습니다. 화투 점도 있었습니다. 점을 치는 방법이 여러 가지입니다. 종류가 참 많습니다. 별을 보며 점을 치는 점성술, 태어난 날과 시로 보는 사주, 꿈을 푸는 해몽, 나뭇가지를 뽑는 산통, 그리고 관상, 타로 등 인간은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점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점은 축구 경기에도 사용되는 동전 던지기처럼 경우의 수가 정해져 있지만, 결과는 예측 불가능한 것입니다. 인간 진화의 역사는 바로 점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점을 치면서 발달한 점성술이나 연금술같이 인간에게 꼭 필요한 학문도 발달했습니다. 점을 치는 능력은 고대에 권력의 주요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요즘 같은 일기예보나 정보가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 주술사의 예지력(叡智力)은 곧 백성들의 생명을 지키는 수단이고, 또 인류가 각종 자연재해와 전쟁에도 멸종하지 않고 살아오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어렸을 때의 정월 풍경입니다. 많은 사람이 일 년의 신수를 이야기하는 일로 방안이 떠들썩하기도 하고 해석에 따라 분위기가 바뀌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이런 길흉화복에 대한 신수를 알아보는 일이 적어졌지만, 소문에 의하면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있습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점집이 있고 좀 근엄해 뵈는 이름의 철학관이 존재합니다. 귀신을 섬겨 굿을 하고 길흉화복을 점치는 일에 종사하는 무당도 있습니다.
요즘은 과거와는 달리 일부의 소수를 제외하고는 이런 곳을 찾는 사람이나 말을 믿는 사람이 드뭅니다. 길흉화복을 점친다고 해도 재미 삼아해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심풀이라고 하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책이 귀하던 시절, 우리 집에는 토정비결 책자가 두 권 있었습니다. 한 권은 장에서 사 온 것이고 또 하나는 필사본입니다. 이 중 한 권이 동네를 돌아다녔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사 온 것도 필사본이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토정비결의 책자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필사에 필사하는 가운데 알게 모르게 내용이 변모되었을 것입니다. 이지함이 쓴 원본을 알 수 없으니, 점괘를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이 돌기도 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내가 어릴 때까지만 해도 한동안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정월 한 달 동안 대접을 받았습니다.
일 년의 신수라고요. 일일 신수도 있습니다. 신문을 보면 오늘의 운세라는 난이 있습니다. 가끔 눈이 갑니다. 12 간지의 띠별로 운세를 알려줍니다. 신문마다 운세의 내용이 다릅니다. 하지만 내 마음먹기에 따라 행동하기에 따라 신수는 정해져 있다고 믿습니다. 긍정의 삶이 중요합니다. 꿈보다 해몽입니다.
‘올해의 점괘가 아주 좋아요. 버킷 속에 운동기구가 있고 공책이 여러 권인 걸 보니, 건강하고 글을 열심히 쓰겠어요.’
스스로를 믿습니다. 긍정 속에서 일 년의 신수는 진행됩니다. 꿈보다 해몽입니다.
‘올해의 점괘가 아주 좋아요. 버킷 속에 운동기구가 있고 공책이 여러 권인 걸 보니, 건강하고 글을 열심히 쓰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