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 바느질 20240214
바지를 사면 기장이 길어 그때마다 줄여야만 합니다. 이럴 때는 옷의 길이만큼 키가 컸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고 보면 체념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그렇게 마음이 굳어진 상태입니다. 윗옷을 사도 소매가 긴 경우가 많으니, 같은 생각입니다.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오자, 옷장에서 반지 그릇을 꺼냈습니다. 전번에 산 바짓가랑이를 꿰맨 실이 풀렸습니다. 오는 내내 신경이 쓰였지만, 모양을 유지한 채 내 몸에 잘 붙어있어서 다행입니다. 검은 실을 꺼내 바늘에 꿰었습니다. 그냥 끼우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언제인가부터 실 끼우기를 사용합니다. 돋보기를 쓰지 않아도 수월하게 실을 끼울 수 있으니 여간 요긴한 게 아닙니다.
아내는 내가 바늘을 들 때마다 자신에게 맡기면 되는데 생뚱맞게 반지 그릇을 찾느냐고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릅니다. 옛날도 아니고 이제는 남녀의 하는 일이 구별되지 않는 사회라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굳이 상대에게 맞길 필요가 없다는 마음입니다. 오랜만에 바늘을 들어서인지 바느질을 하면서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밥의 간격이 고르지 못해 들쑥날쑥합니다. 처음 바느질을 배울 때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꾸준히 해야 하는데 요즘 세상에 바늘을 들 일이 별로 없다 보니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바짓단의 실올이 풀렸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내가 한 일이라서 나만 아는 현상입니다. 돈을 좀 아껴보자고 했는데 마음처럼 수월하지 않습니다. 바지를 살 때마다 수선하는 곳에 맡기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드르륵 하고 잠깐 바짓단 하나 줄이는 것 치고는 삯이 비싸다는 생각입니다. 처음에는 손으로 재단하고 꿰매는 과정을 거쳤는데 모양새가 깔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횟수가 거듭되자 바느질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남자이면서도 내가 바느질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총각 시절부터 자주는 아니지만 일 년에 보름 정도는 아이들에게 바느질을 가르쳤습니다. 실과시간입니다. 처음 맞이하는 수업 시간이 고민이었습니다. 여선생님이 바느질 시간과 목공 시간을 묶어 교환 수업을 제의했지만 거절했습니다. 나중을 생각하면 내 할 일은 내가 해야 합니다. 어쩌겠습니까. ‘바느질’, 모르니 배워서라도 가르쳐야 합니다. 어머니께, 학교에서 함께 지내는 동료 여교사에게 물어보고 실제로 바느질을 익혀야 했습니다.
“남자 선생님도 바느질해요.”
바느질 첫 시간이 되었을 때 여학생들이 의심스럽다는 듯 말했습니다. 남자라고 바느질하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솜씨는 좀 부족한 감이 들지만 나름대로 하나하나 방법을 가르치자, 여학생들의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단추 달기, 시침질, 박음질, 감침질 ……. 드디어 손지갑을 만들었습니다. 손수건에 수도 놓았습니다.
퇴직 후에도 내 옷에 이상이 있을 때는 서슴없이 바늘을 들었습니다. 재작년에는 휴대용 재봉틀을 하나 구입했습니다. 예전의 큰 재봉틀과는 달리 손에 들고 다닐 수 있습니다. 작은 가방에도 쏙 들어갑니다. 한 뼘보다 조금 큽니다. 처음에는 사용 방법을 몰라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곧 익숙해졌습니다. 한 땀 한 땀 꿰매는 손바느질보다 훨씬 빠릅니다. ‘드르르, 드르륵’ 모양도 좋습니다. 만족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지를 잘 입고 다녔는데 어찌 된 일인지 실올이 풀려버리고 바짓단이 벌어졌습니다. 재봉틀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박음질이 되지 않습니다. 이리저리 상태를 확인했지만 원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 하나를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새를 못 참고 다시 바짓단의 실이 풀리고 말았습니다. 바늘을 다시 들었습니다. 손바느질입니다.
오늘따라 모양새가 말이 아닙니다. 누군가 자세히 보면 웃을 일이지만 걱정할게 못됩니다. 서있거나 앉아있을 때 내 바짓단만을 쳐다볼 사람이 있겠습니까. 내가 한 바느질에 내가 어색하다고 느끼는 것뿐이지 다른 사람은 관심을 두지 않을 게 뻔합니다. 바느질을 마친 후 일어서서 내 발등을 향해 시선을 옮겼습니다. 실올이 보이지 않습니다. 서툴지만 아내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해냈다는데 점수를 주었습니다.
작년에는 독서 주간을 맞이하여 도서관에서 곰돌이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천으로 손가방도 만들었습니다. 나 청일점이었습니다. 함께 바느질하던 여자들이 신기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신기한 표정을 짓게 한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바늘을 처음 잡아보았다는군요.
“앗 따가워.”
갑자기 건너편 사람이 외마디 소리를 냈습니다. 모두의 눈이 그에게로 쏠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