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 이런 날이면 20240220
준비되지 않은 날, 이럴 때는 난감합니다. 아침에 하루의 날씨를 보니 온종일 흐릴 거라는 예보입니다.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하늘이 심상치 않습니다. 빗방울이 보입니다. 집까지 걸어가기에는 무리입니다. 셔틀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시간에 맞추어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너 버스에 올랐습니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지자 한 사람 한 사람 좌석을 메웁니다. 빗방울이 굵어집니다. 늦게 차에 오른 사람이 걱정합니다. 차에서 내리면 집이 먼데 비를 쫄딱 맞게 생겼답니다. 몇몇 사람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우산을 챙겼나 봅니다. 그에게 시선이 갔지만 그 누구도 우산을 내미는 사람이 없습니다.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나 같아도 선뜻 내줄 수 없습니다.
운전기사가 말합니다.
“사무실에 가서 말씀하시면 빌려드려요.”
“정말요?”
출발시간이 다 되었는데 다녀와도 되느냐고 묻고 재빨리 차에서 내렸습니다. 잠시 후 그녀를 실은 차는 출발했습니다. 무심코 있던 나는 신호등을 지나 코너를 돌 때 나도 우산을 빌려올 걸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기사의 말에 잠시 무심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전철역에서 내리면 집까지는 지하도를 통해 갈 수 있습니다. 일부 구간이 단절되어 있지만 바람이 심하거나 먼지가 많고 날씨가 고르지 못한 날에는 이용에 편리합니다.
하지만 소나기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역을 나와 다시 지하보도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건널목을 하나 건너야 합니다. 건너고 건너야 하니 족히 5분여는 걸립니다. 하찮게 생각했는데 이게 문제입니다. 밖으로 나왔는데 모두 우산을 받쳐 들었습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뭔가 머리 위를 가리고 빠른 걸음을 합니다. 다음 지하도로 가려면 옷이 젖을 게 분명합니다. 어쩔 수 없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곧바로 역과 붙어있는 큰 건물로 향했습니다. 시민들을 위한 쉼터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소파를 비롯하여 노트북 등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시설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넓은 실내에는 한 사람뿐입니다. 평일이니 한가롭게 쉴 사람은 많지 않은 게 당연한지 모릅니다. 엉거주춤 밖을 내다보다가 흩날리는 비를 보고 소파에 눈이 갔습니다. 포근해 보이니 쉬어가는 것도 좋겠습니다. 자리에 앉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비가 그치기를 우두커니 기다린다는게 여간 지루한 일이 아닙니다. 내 뒤를 따라온 사람은 비와 상관이 없다는 듯 어느새 시선이 책에 꽂혔습니다.
‘바보 같으니라고’
나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책을 빌려야 했습니다. 아침에 책을 반납하여 집에서 읽을 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반쯤 읽은 책을 제자리에 꽂았습니다. 그 책이 아니라면 다른 거라도 빌려야 했습니다. 늘 책에 빠진 사람이 하릴없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10분이 한 시간도 더 되는 것 같습니다. 약속 시간을 넘긴 애인을 기다리는 시간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몇 차례나 자리에서 일어나 밖을 내다봅니다. 그때마다 우산을 쓴 사람들이 역전을 오갑니다. 언제나 그칠 거야 조바심이 납니다. 가만히 있는 가방만 애써 어루만집니다.
슬그머니 뒤따라온 사람을 쳐다봅니다. 아직도 눈이 책에 박혔습니다. 부럽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게 어느 때는 행복일 수 있습니다. 가방을 끌어안았습니다. 평소에 비해 무겁습니다. 가방 안의 노트북이 생각났습니다. 책과 함께 내 놀잇거리입니다. 왜 지금까지 책 타령만 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을 연결할 수가 없습니다. 안내하는 코너에 갔지만 사람이 없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탁자를 살폈지만, 책자는 물론 문구 하나 없습니다. 되돌아서서 주위를 살핍니다. 혹시나 벽면이나 기둥에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패스워드가 있을지 모릅니다. 머뭇머뭇 둘레둘레 살폈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노트북은 있는데 무용지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머리 회전이 늦습니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고 시간을 죽일 것까지는 없습니다. 타자를 하면 되는데 계속 생각이 늦습니다. ‘글을 쓰면 되지’ 하는 생각이 떠오르자 주제를 정했습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이런 날은…….’
늦기는 해도 생각이 꼬리를 무는 날입니다. 밖에 나간 아내가 묻습니다.
“어디 있어요?”
“나 여기 있어요.”
아내도 우산이 없이 나갔으니 비가 멈추기를 바라며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립니다. 비가 먼저 멈출까. 아내가 먼저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