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 어리벙벙 20240227
‘수강 신청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며칠 전에 평생학습관 홈페이지를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을 발견했습니다. 봄이 되니 여러 교육기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개합니다. 늘 관심이 가는 분야 먼저 눈이갑니다. 나는 글쓰기, 독서, 미술, 음악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당연히 글쓰기입니다. 작가가 되기 위한 글쓰기라니 학습 내용이 알차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잊지 않기 위해 수강 신청 날짜와 시간을 달력에 기록했습니다. 휴대전화의 알람에도 저장해두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것저것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계획한 것들을 잊는 수가 있습니다. 기억력이 쇠퇴해 간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듭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맞이하는 수강 신청이고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니 아침까지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십 분 전에 홈페이지에 접속을 시도 했습니다.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기 위해 어제저녁에 연습도 했습니다. 시간이 되자 마음 편하게 홈페이지에 접속하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인증을 하려고 했지만, 자꾸 오류가 발생합니다. 수강이 자꾸만 지체됩니다. 선착순이라는 생각에 긴장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컴퓨터에 문제가 있나 하는 생각에 노트북으로 접속했습니다. 인증 절차를 거치고 신청하려는데 신청하는 난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10여 분을 허비하다가 어쩔 수 없이 학습관 담당자에게 전화했습니다.
“수강 신청을 할 수가 없네요.”
도움을 청했습니다. 담당자는 친절하게 홈페이지의 항목을 말합니다. 오른쪽으로 마우스를 움직이면 수강 신청 버튼이 보입니다. 말하는 대로 오른쪽으로 눈을 돌립니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알려주는 사람이 답답해하는 목소리입니다. 나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말을 주고받다가 순간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오른쪽으로 가라는데 왼쪽을 살피고 있습니다. 내가 왼손잡이라서 착각을 일으킨 게 아닌가 합니다. 곧 눈을 정상으로 움직였지만 당황해서인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혼자 차근차근 살펴보고 안 되면 다시 도움을 청하겠다고 했습니다. 어쩌지요. 시간만 흘러갈 뿐 아무리 살펴보아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전화했습니다.
“오른쪽 수강 신청이라는 글자, 파란색 보이시지요.”
곧바로 수강 신청을 마쳤습니다. 그동안 허비한 게 한 시간 가까이 됩니다. 지켜보던 아내도 답답했나 봅니다. 어느새 가져왔는지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넵니다.
오후에 학습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나에게 도움을 준 그 사람입니다. 65세 이상이라서 수강료 감면 신청을 해야 하는데 누락되었답니다. 이미 하려다 오류가 몇 차례 발생하여 미루고 있습니다. 내일 학습관에 찾아가 담당자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에 해당하는 감면 항목을 찾기는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이것저것 눌러보았지만, 변화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머리가 나쁘면 발이 고생한다고 누군가 말하더니만 그 꼴이라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밖에 나갔을 때 키오스크를 이용해야 할 일이 있으면 시행착오를 거치고 당황하는 일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전자 문명이 때에 따라서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치명적이라는 여겨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밖에서 전화를 받은 관계로 집에 가는 즉시 해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안되면 내일 아침 학습관에 찾아가겠다 고도했습니다. 감면 신청란을 눌렀습니다. 예시만 보일 뿐 항목의 변화가 없습니다. 말 한대로 내일 일찍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다시 눈여겨보았습니다. 예시 옆에 작은 창이 보입니다. 클릭하자 감면이 되었다는 자막이 뜹니다. 힘겹게 등록을 마쳤습니다. 그동안 인터넷으로 수강 신청을 여러 번 했습니다. 가끔 시행착오를 거치는 때도 있었지만 오늘처럼 어려웠던 일은 없습니다. 컴퓨터를 끄고 생각해 보니 바보가 된 느낌이 듭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거야,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거야,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거야, 아니면 모두인 거야?
저번 친구들을 만나는 날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만남의 장소를 찾아갔는데 바로 길 건너 건물을 바라보고도 이리저리 헤맨 일이 있습니다. 길치가 되어가나 봅니다. 홈페이지에서, 내 발이 닿는 길에서도, 키오스크에서도 헤매는 경우가 늘어납니다.
오늘은 일진이 이래저래 나쁜 날인가 봅니다. 아내와 점심을 먹고 음식값을 내기 위해 신용카드를 내밀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생각해 보니 할인이 되는 카드를 놔두고 생각지 않은 카드를 사용했습니다. 창밖으로 먼 하늘을 바라봅니다. 어둠이 다가오고 앞에 보이는 산이 멀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