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친구를 둔다는 것.

by 장뚜기


공부가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

적나라 하게 등급이 매겨지던 시절.


그 시절.

모든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등급을 높이려고 노력을 했고

더 높은 등급의 결과는 자연스레 더 높은 등급의 대학으로 이어진다고 믿었다.

높은 등급이 더 나은 삶을 만든다는 사고가 뇌를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나 또한 그런 학생들 중 하나였고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더 높은 등급이 나에게 매겨지도록 하기 위해서 더 좋은 고등학교를 갔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나처럼 더 높은 등급을 받으려고 모인 고등학교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등급 전쟁을 이어갔다.

내가 3분이 소요되는 문제를 1분에 푸는 친구가 있었고 선생님 조차 도저히 이해시킬 수 없는 구조와 내용을 나의 눈높이에서 설명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 친구들에게 느끼는 열등감과 자극은 나에게 원동력이 되었고 그 친구들과 비슷한 수준이 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수능 전 같이 논술을 치러간 친구는 수능을 치고 무난하게 대학에 합격을 했고 수능을 말아먹은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전혀 다른 지역에서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종종 내가 놀러 갔을 때 그 친구를 만나서 근황을 듣곤 했다.


이번엔 그 친구가 내가 있는 곳으로 놀러 왔다.

자연스레 사회로 진출하는 나이가 되어버린 우리의 관심사는 역시 취업.

만나자마자 대학 졸업 얘기부터 시작해서 취업얘기로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어졌다.

친구는 대학에 가서도 역시 잘하고 있었다.

작년에 인턴을 했던 회사는 대기업이고 올해 원서를 쓴 회사들도 모두 대기업이다.

대한민국 청년 취업난이라는데 친구는 대학도 졸업하기 전에 이미 취업이 확정이 난 상태였다.

서로 타지살이를 하고 있지만 어찌보면 금의환향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


고등학교 때 느꼈던 감정을 한번 더 느끼게 되었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서로 나아가는 길이 달랐기에 열등감을 느끼진 못했지만 충분한 자극은 느끼게 되었다.

과연 이것이 자극일까?

혹시나 질투와 시샘은 아닐까?

100% 확신한다. 이는 단 1%의 질투와 시샘은 없다.

단순 자극이다.

친구가 잘되어서 오히려 내가 뿌듯하다. 내가 이런 친구와 같은 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같이 시험도 치러 갔다는것이.(결과가 어찌됐든...)

주변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듯이 친구가 잘되어서 나까지 잘 된 느낌이랄까.


오랜만에 가진 친구와의 만남은 나에게 큰 자극을 주게 되었다.

잠시 느슨해졌던 나를 일깨웠다.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이것 저것 핑계로 나는 확실히 느슨해져있었다.

할 것을 끊임없이 찾아서 하던 예전과는 다르게 게으름에 익숙해 진 것이다.

이런 나를 되돌아 보게 되었고 그 감정을 소재로 이런 글까지 쓰게 되었으니, 친구는 나에게 기폭제가 된 것이다.


잘난 친구를 둔다는 것.

누군가는 잘난 친구를 보고 질투와 시샘을 할 것이다.

어쩌면 자격지심도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이를 잘 이용하면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이자 기회가 된다.


내가 현재 상태에 안주하지 않도록

내 친구들이 모두 잘 되어서 나에게 기폭제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잘난 친구를 둔다는 것은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끊임없이 온다는 것이고

또 하나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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