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이 무서운 것

깍쟁이 시어머니가 뇌종양이라니

by 졔자까


시아버지는

약 10년 전 크게 하던 사업을 접고

귀촌해서 장어와 소를 키우며 지내셨고
시어머니와는 주말 부부로 지냈다.


그런데 남편과 내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님은 도시집을 처분하고
아버님이 계시는 시골집으로 귀촌했다.


그것이 병의 시작이었을까?


시어머니는 아주 외향적이었다.
교회를 주 4일 다니며 사람들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셨다.


백화점이나 마트 다니는 것도

정말 좋아하셨다.


그런데 시골집은 시내와 떨어져 있을뿐더러

백화점도, 대형 마트도 없었다.


호미질 한 번 해본 적 없던 사람인데
귀촌이라.. 과연 괜찮을까 싶었다.


그래도 아버님이 귀촌을 먼저 해서

시골살이의 베테랑이 되셨을 테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뭐, 처음엔 재밌어하셨다.


1만 평 되는 땅에

배추, 알타리, 깻잎, 고구마, 땅콩, 블루베리,

방울토마토, 사과, 고추, 오이, 호박, 대파, 양파 등등

어디 내다 팔 것도 아닌데

가족들 나눠줄 거라며 매해 다양하게 심었다.


한 일화로..

결혼하고 다음 해였나

배추김치만 100 포기에

총각김치까지 어마어마하게 담갔다.


배추 뽑고, 다듬고, 절이고, 양념 묻히고, 담고...
매년 하진 않겠지..

좋은 경험이다..라는 생각으로 했던 기억이 난다.


그다음 해는 어머님이 눈길에 미끄러져

팔목에 철심 박는 수술을 하는 바람에

다행히 김장은 그때 이후로 하지 않았다.


각설하고..
남편과 나는 결혼하고 정말 바쁘게 살았다.
서로 직장에서 인정받고, 연봉도 늘어서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고, 열심히 먹었다.


사실 신혼집 근처에

시부모님이나 친정부모님이 살면
주말마다 또는 한 달에 두, 세 번 만나서

점심이든 저녁이든 식사도 한다지만,
내 친정집은 경남이라

명절이나 여름휴가,

계모임 친구들 만날 때가 아니면 가지 않았고,

남편도 나도 바쁘다는 핑계로...

시댁이 차로 두어시간 거리임에도

그리 많이 가지 않았다.


친정엄마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라
남편에게 선톡도 선전화도 하지 않을뿐더러

(연락을 기다리지도 않는 사람이지만)


어머님은 일주일에 한 번,

많게는 두 번 정도

항상 먼저 안부 톡이나 전화를 하셨다.


우리는 어머님이 열흘이나 보름 넘게 연락이 없어도

그런가 보다~ 하고 먼저 연락하진 않았다.


나는 친정엄마한테도

무슨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연락을 잘 안 하기에...

크게 연락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결혼은 집안 대 집안
다른 삶을 살아온, 다른 가정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이니
내가 살아온 삶이
결혼 후의 삶의 기준에 맞춰선 안 되는 것이었다.


어머님이 00이가 전화를 도통 안 한다고..

남편에게 뭐라고 했던 건지..
남편은 나한테

미안하지만 엄마한테 연락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시골에서 아버님과 둘만 지내니
얘기할 사람도 없고 지루한 일상에 답답했던 것이다.


그렇게 말하기 좋아하는 분이

뭐 안 사더라도

백화점이며 마트를 수시로 다닌 분이
시골에서 일만 하니 우울증이 온 건 아닐까 싶었다.


여하튼 내가 먼저 한 적도 있고
오빠가 또 부탁할 때도 있었지만..
언젠가부턴 연락이 자주 오지도,
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냥 시아버님이랑

둘이서 잘 지내는가 보다 싶었다.


남편과 그저 행복하게..
앞으로 뭐 하고 놀까..
우리 아기는 언제 낳을까..
행복한 앞날을 그리며 하루하루 보냈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
뭐가 잘못 됐을까..


내가, 아니 우리가 연락을 자주 드렸다면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뵀다면
지금, 이 현실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크리스마스이브날에서

크리스마스로 넘어가던 날 밤.


어머님의 머릿속.. 뇌간이라는 곳에

아주 지독한 놈이 자리 잡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뇌종양은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병인 줄 알았는데..


만우절 날짜가

우리 모르는 새 바뀌었나?

정말 거짓말 같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로또 같은 남의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