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극한직업이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간병 생활
오전 7시 반~8시에 아침밥이 나온다.
나는 보통 새벽 2~3시쯤 자서
오전 9~10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데,
간이침대에서
일찍이 일어나는 것부터 곤욕이었다.
어쨌든 나는 따로 밥을 신청하지 않고
병원 내 편의점이나 식당을 이용했다.
시어머니도 병원밥에
내가 사 오는 걸
곁들여 같이 먹는 걸 좋아했다.
아침밥 먹고 이런저런 얘기 나눴는데
오전 10시 반경.. 어디 좀 가자고 하시는 시어머니.
병원에서 어디 갈 때가 있나 싶었는데
매일 오전 11시에 열리는 예배가 있단다.
시어머니는 기독교 신자셨는데
무교인 나는 사실.. 가고 싶지 않았다.
원래 아프시지 않을 때도 믿길 바라셨지만
일이 바쁘기도 했고.. 시간 낭비라고만 생각했다.
병원에서야 시어머니 곁을 지켜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같이 갔다.
30분간 예배를 드렸는데
찬송가로 시작해 성경 말씀, 다시 찬송가
기도로 마무리 됐다.
보호자도 환자도 꽤 많이 와서 기도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정말 기도를 하면 병이 나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들 오셨겠지..
그런데 젊은 목사님의 말씀은 꽤 들을만했다.
못 알아듣는 성경 구절만 줄줄 읽는 게 아니라
뭔가 삶의 목표? 희망적인 이야기?
tv 강연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 나쁘지 않았다.
점심 때도 편의점에서 유뷰초밥을 사와
시어머니와 나눠먹고 나는 업무를 시작했다.
창가 자리라 노트북을 펼치고 사무실처럼 일했다.
나는 프리랜서 방송작가긴 하지만
2~3일은 출근해야 하는데
양해를 구하고 재택 하기로 했다.
간병 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몰라
출연자 섭외를 많이 해놔야겠다는 생각에
카페에 글을 많이 올렸었는데
의외로 촬영하겠다는 분들이 연락이 많이 왔다.
연락 온 순서대로 전화를 여기저기 돌렸다.
간단한 취재만 하고 전화를 끊기 여러 번..
어머님은 심심한지 혼자 복도 운동을 다녀오셨다.
오늘 하루만 힘들게 일하면
이, 삼주가 편할 테니
양해해 달라고 어머님께 말했다.
그렇게 오후 4시까지 전화를 돌린 결과
무려 4주 치의 출연자 섭외를 했다.
그렇게 기뻐하고 있을 때
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이틀 뒤에 퇴원을 하라는 것.
현재 병원에선 수술 날짜밖에 기다릴 수 없고
뇌압 낮추는 스테로이드제는
먹는 약으로 바꿔 상태를 지켜보자고 했다.
이날 밤은 수면 유도제 때문인지
6시간을 푹 주무셨다.
다음 날 또 아침 먹고,, 복도 산책하고.. 예배를 다녀왔다.
점심 먹으니 담당 교수님께서 와서
증상 체크하고 2주 뒤에 보자며
퇴원 잘하라고 했다.
집에 가서 최소 8시간 자려고
노력하라는 말과 함께 가셨다
2일 뒤 퇴원한다는 소식에
남편은 분주해졌다.
화장실 딸린 우리 안방을 내어드리기로 했는데,
고장 나서 쓰지 않았던 안방 화장실 세면대와
환풍기 소리가 시끄럽던 거실 화장실을 수리했다.
나는 혹시 몰라 화장실용 미끄럼방지 매트를 주문했다.
그렇다.
결혼 3년 차에
신혼방을 뺏겼다.
우울해하고 있을 그때
목사님이 병실에 왔다.
시어머니께서 방문 예배를 신청한 것..
시어머님은 파워 E였다.
처음 본 목사님께 어찌나 말을 많이 거시는지...
가고 싶어 하는 목사님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목사님이 가시고 나는 일을 시작했다.
다음 날이 생방송 날이었기 때문에
오늘은 원고 자막을 쓰는 날이다.
보통 가편이 밤 9시나 10시쯤
나와 파인이라는 작업을 하고 나오는데,
다행히 메인 작가님이 대신
피디와 파인 작업을 빨리 해주셔서
가편이 일찍 나왔다.
오후 4시쯤이었나
12분짜리 영상 자막부터 차근히 썼다.
집중은 잘 되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말하기 좋아하는 시어머니는
친한 권사님과 통화하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셨다.
그런데 조금밖에 못 썼는데..
간식 드시고 싶다는 어머님..
샤인 머스켓과 딸기 씻어서 챙겨드리고
다시 일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병실 전기 공사한다며
잠시 나가 있으라는 간호사...ㅎ
병원 로비로 내려와서 산책했다.
대형 트리가 있었다.
아직 가시지 않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꼈다.
소원 쓰는 종이에 소원 써서 걸기도 했다.
불효자 남편이 효자가 됐으면 하는 소원,
시어머니 건강이 빨리 회복되길 바라는 소원을 적어서 말이다.
같은 시각..
남편은 나중에도 쓸 수 있는
널찍한 장박용 에어매트도 사서
앞으로 우리가 지낼.. 컴퓨터 방에 펼쳐놨다고
톡이 왔다.
사진을 보니 방이 가득 찰 정도로 커다란 에어매트였다.
에효..
이제 그 방에서 자야 한다니
착잡했다.
애써 웃으며
저녁 식사를 했는데
뭔가 마음이 불편했다.
밤을 새우지 않으려면
빨리 원고, 자막을 써야 할 텐데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한 것..
호떡이랑 샐러드를 먹었는데
그게 체한 건지 속이 안 좋았다.
다시 일하려고 자리에 앉았는데
내가 뭔가 불편한 티를 내서 그런지
시어머니도 기분이 나쁜 건지 뭔지
말없이 혼자 나가셨다가 들어오셨다.
밤 9시쯤.. 소등한 병실에서 작업하는 게 눈치 보였다.
타닥타닥 타자 소리,
노트북 불빛,
삐걱대는 의자 소리..
어머님이
안대 끼고 주무시는 것 같길래 복도로 나왔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휴게실 문을 닫은 상황ㅜ
그냥 대기 의자에 앉아 허벅지에 올려서 썼다.
노트북 열기 때문에
허벅지가 너무 뜨거웠다.
목도, 허리도 아팠다.
그렇게 밤 10시 반에 자막을 다 썼다.
이후, 쉴 틈 없이 원고를 써 내려갔다.
원래 나레를 쓰고
성우처럼 읽어가며 쓰는 편인데...
큰 소리를 못 내니
정말 불편했다.
절반쯤 썼을까.
밤 12시에 간호실에서 전화가 왔다.
간호사가 주사를 잘못 찌른 건지 뭔지..
아프시다고 날 부른단다.
하아 ㅠ
병실에 갔더니 땀에 옷이 흥건하게 젖은 채
앉아 계셨다.
새 옷을 받아와 갈아입혀드렸는데
땀 식힌다며 병실 밖으로 따라 나오시는 어머니..
남편이랑 통화도 한 번 시켜드리고...
다시 눕혀드린 다음에 다시 나왔다...
그렇게 나는
새벽 2시 가까이 돼서야 원고를 마무리했다.
뭘 썼는지 기억도 안 난다.
카톡으로 완본을 넘기려는데
와이파이가 느려서 보내지 지도 않았다.
되는 일이 없었...
핫스폿 잡아서 넘기고...
좌상단 자막이랑 다음 주 방송 제안서도 써야 했는데
일단 병실로 복귀해 간이침대에 누워서 폰으로 썼다.
병원에서의 작업은 정말 최악이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았고
퇴원 전날도
똑같은 루틴.
밥->산책->예배...
병원 아침밥..
병원 예배실..
기존의 날들과 조금 달랐던 건
점심 먹기 전에 청력검사를 받았다.
이전 병원에서의 기록은 적용이 안된다고 했나.
아무튼 다시 청력검사를 받으셨다.
오른쪽 귀가 안 들려 우울해하셨다.
(MRI상 종양이 오른쪽 달팽이관까지 점령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시어머니는 낮잠을,
나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옆 환자의 보호자가 바뀌었다.
남편에서 딸로 보이는 20대 여자로.
딱 봐도 간병이 처음인 듯했다.
휠체어 운동을 하러 가야 하는 듯했는데
갑자기 대변이 마렵다고 말하는 그녀의 엄마.
수술 후유증이 심했던 건지
침을 퉤퉤 뱉는가 하면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듯했다.
옆으로 눕혀서 대변패드를 깔고 받는 것 같았는데
닦고 있는데도 자꾸 변을 봐서
어쩔 줄 몰라했다.
제발 그만하라고.. 울부짖는 그녀...
안타까웠다.
시어머니가 이 정도로 건강하신 것에
감사하다 생각하니 내가 눈물이 났다.
(이땐 알지 못했다. 그녀가 훗날의 내 모습이 될 줄은)
그렇게 사태가 수습되고
나는 시어머니와 또 산책을 나섰다.
퇴원하면 심학산 도토리국수와
소고기가 먹고 싶으시단다.
먹는 거야 뭐 뭐든 사드릴 테니 건강해지셨으면 했다.
어쨌든 나도 어머님도
이 날은 피로가 쌓인 건지..
밤 9시 반에 기절하고
새벽 6시 반에 일어났다.
점심때쯤 퇴원 예정이었는데
시어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필요한 걸 말씀하기 시작했다.
안방에서 쓸 1인 소파와 협탁,
주방에 놓고 본인과 아들, 나와 셋이 앉아서
밥 먹을 식탁과 의자를 사고 싶다는 것...
식탁은 우리 부부가 거실에서 TV 보면서
밥을 먹기 때문에
사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나야 뭐 상관없는데, 남편이 극구 반대할 거라고 했다.
어쨌든 10일간의 간병을 끝으로..
시어머니는 3월 수술을 기다리며
우리 집에서 같이 살게 됐다.
그렇게 내 인생에 없을 것 같았던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