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걸린 시어머니 몰래 술 마시기

술쟁이 부부의 작고 소중한 일탈

by 졔자까

신랑과 나는 술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20kg이 쪘다는 건.. 핑계일까.

아무튼, 우리는 거의 매일 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거실에서

드라마나 예능을 보며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게 루틴화돼 있었다.


그런데 어머님과 같이 살게 되면서

우리는 어쩌다 금주를 하게 됐다.


어머님과 함께 사는 생활에

조금 익숙해졌을 무렵,

우리 부부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일단,

작업방에서 먹을 작은 상을 샀다.

레트로틱한, 꽃무늬가 그려진,

은쟁반이 떠오르는 그런 상.


택배가 왔을 때

어머님은 그걸 왜 샀냐고 물으셨지만

그냥 "하하 예쁘잖아요~"

웃으며 방으로 들고 들어갔다.


밤 10~11시쯤,

신랑이 퇴근하면

어머님은 주무셨다.


신랑은 퇴근할 때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 와

집에 오자마자

방에 가져다 놨다.

(밤에 냉장고 문 여는 소리에 깨실까 봐...ㅎ)


그리고

회사에서 밥을 먹고 왔는데

안 먹은 척

배고프다고 징징댔다.


나는 밥반찬 겸 안주를 만들었고

신랑은 편의점에서 사 온

도시락이나 간편식을 데웠다.


그렇게 안주들을

방으로 가져와서

노트북으로 넷플릭스를 켜고

작은 상 앞에 앉아

소곤소곤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몰래 술을 마셨다.


그런데, 며칠 이렇게 하니..

배달로 시켜 먹던 야식이 당겼다.


고등어봉초밥이라든지.. 회무침.. 보쌈..

치킨.. 피자... 파스타.. 햄버거..


우리가 보통 2차로 시켜 먹던 안주들이 당겼다.


결국 참지 못하고

배달을 시켰다.


'벨 누르지 말고 문 앞에 두고 가세요'


그런데 문제는

삐걱거리는 현관문!


우리가 사는 집은

신랑이 고등학생 때부터 살았던 터라

현관문이 삐걱댄다.


'문 앞에 놔뒀습니다'


라이더의 문자가 오면

방문부터 조심스레 열고

현관문까지 가야 하는데


우리 귀요미 고양이가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게

조심조심... 움직여야 했다.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잡고 올리고

바닥에 있는

배달 봉지를 들어 올리는 신랑.


그런데 아뿔싸.


'딩~'


우리가 신혼여행 때 사 와서 달아둔

현관문 종소리가 울렸다.


화들짝 놀란 신랑.

고양이도 울어댄다.


시뻘게진 얼굴로 고양이와

방에 들어온 신랑.


다행히 어머님은 깨지 않으셨다.

아니면 모르는 척하신 걸까.


어쨌든 그날 밤,

시메사바 한 접시와 초대리.

슬램덩크와 함께 2차를 즐겼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고양이가 문을 긁기 시작한다.


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영상 소리가 들릴 텐데... 하아..


잠시 영상을 멈추고

냥이를 내보내고 방문을 닫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들어오겠다고 문을 긁는 녀석...


아우...

눈치도 없어라~~


어떻게 할까 하다가

결국엔 문 열어두고

이어폰 끼고

말없이, 짠 안 하고 먹기를 택한 우리

징허다.

그냥 자면 될 것을ㅋㅋㅋ


다음날

밥 차리려면

아침 7시에 일어나야 하니

우리 술자리는

매번 새벽 1~2시면 끝났다.


그렇게 일주일 넘게

비밀스러운 밤을 무사히 보내는가 싶었는데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밤에 술 좀 그만 마셔. 건강 챙겨야지~"


다 알고 계셨던 것이다.


하긴...

방구석이며

분리수거통이며

소주 페트병들이 늘어나고 있었으니...

진작에 들켰겠지.


그럼에도,

우리 술쟁이 부부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2~3일은

당당히 술을 마시는 척... 했다.

렇게 먹는 날에는

어머님이 주무시러 방에 들어가도

전자레인지를 돌리는가 하면

소주도 먹다가

다 마시면

냉장고에서 꺼내 마시고... 그랬다.


나머지 4~5일은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마셨다.


몰래 마시던 밤들.

우리의 작고 소중한 반항이자

행복이었다.


수술하시기 전까지는

꽤 오랜 시간

그렇게...

몰래 술을 마셨다.

레트로 테이블과 우리 고양이.

그 밤들을 함께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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