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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리 May 31. 2020

이런 결혼을 했습니다.

부부가 주인공인 실속적인 결혼


내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던 2014~ 2016년 그 시기에는 스몰웨딩이 유행이었다. 대표적으로 이효리-이상순 부부는 2013년, 원빈-이나영 부부는 2015년에 결혼했다. 제주도 집에서 찍은 사진으로, 밀밭에서 국수를 대접하며 올린 결혼식으로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이 결혼식들과 함께, 당시에는 스몰웨딩이 유행했더랬다.


좌) 이효리-이상순 / 우) 원빈-이나영 결혼식 사진 ⓒ구글 검색



디테일을 위해 들인 돈은 절대 적지 않으나, 보여지는 규모만 작은 그런 스몰웨딩. 지금도 이러한 결혼식이 유행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이미 2016년에 결혼을 고, 그 뒤로 '결혼식'에 대해서는 관심이 떠나갔었으니까.




당시 나는 이런 저런 결혼들을 보면, 스몰웨딩처럼 특이하지만, 그렇다고 돈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 실속적인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진행한 것이 이른바 '레스토랑 셀프 웨딩'. 세월이 흘러 결혼식의 방법은 더 많아졌겠지만, 이제 와서 라도 글을 쓰는 이유는 그래도 이런 결혼식을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렇게 결혼을 시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남기고 싶어서이다.


어른들을 위한, 형식을 위한 결혼식 또는 결혼 준비가 아닌, 오롯이 부부 둘 만을 위한 결혼 준비. 이런 결혼을 한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참고 삼아, 누군가는 용기내어 본인의 소신을 꺾지 않고, 스스로를 위한 결혼 준비를 하면 좋을 것 같다.   







2014년 10월 3일, 역사적인 순간, 2006년 9월 6일 천문 동아리 첫 세미나에서 만난 친구가 연인이 되는 날이었다. 오랜 친구가 연인이 되었기에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바로 결혼으로 이야기가 흘러갔고, 우리의 연애 기간은 거의 모두 결혼 준비를 위한 기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아 C는 나의 아버지에게 소환 당해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고, 곧이어 나도 시댁이 될 C의 본가에 인사를 드렸다.


오랜 친구가 연인이 되기까지 풀 스토리는
키스할 수 있을까 매거진에서


당시, C는 우리 집에 인사를 드리자마자 본인이 하루라도 빨리 결혼해야겠다며, 아직 결혼하지 않은 둘째 누나에게 언제 결혼할 거냐고 독촉했다. C에게는 누나가 둘이 있다. 6살 터울의 큰 누나는 이미 결혼해서 아이가 있었고, 3살 터울의 둘째 누나는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었던 남자친구가 있었을 뿐(키스를 할 수 있으면 사귈 수 있다 하였다의 그 분), 언제 결혼할지에 대해서 고민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앞으로 몇 년 동안 결혼 생각이 없다던 막내가 갑자기 치고 나오자 가족들은 당황했다.  




누나가 3월에 결혼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결혼할게.



3월 결혼설을 일축하고 있던 누나에게 C가 최후의 통첩을 던졌다. 할거면 얼른 해라, 아니면 난 못 기다린다.


취직한지 막 2년여 정도 되어서 모아둔 돈도 없으면서, 결혼은 왜 그렇게 빨리 하고 싶었는지. C는 부모님에게는 나 생각보다 일찍 결혼할 거 같은데 얼마까지 지원해 줄 수 있느냐는 돌직구도 날렸더랬다. 사귀기 전에 그렇게 뜸들였던 남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본인이 결혼하고 싶다는 확신이 들자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밀어 붙이고 있었다.


결국, 2015년 3월에는 둘째 누나가 결혼하기로 했다. 그리고 같은 해에 두 명을 연달아 결혼시키는 부담스럽다는 시댁의 뜻에 따라 우리의 결혼은 2016년으로 미뤄지게(?) 되었다. 그 사이, 우리는 아직 결혼한 것은 아니지만 결혼한 것이나 다름 없는 관계가 되어 종횡무진 연애질을 하고 다녔다. 평소에 취미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니 웨딩 스냅은 셀프로 찍겠다며 모든 데이트마다 삼각대를 설치하고 사진을 찍었고, 이걸 전시해야 한다며 결혼식장 한 코너에 사진전을 열었다.


어차피 결혼할 거니까 마음 편하게(?) 상견례도 일찍하자며, 2015년 여름, 예식장을 잡기도 전에 상견례부터 했다. 보통 양가 간에 생기는 마찰을 피하기 위해 상견례는 결혼식 하기 2~3달 전쯤, 본격 결혼 준비가 시작되기 직전에 하거나 결혼 준비가 끝나갈 때 마지막에 형식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결혼하기 반년도 더 전에 후딱 해버렸다. 어차피 결혼은 할 것인데, 양가가 정식으로 만난 적이 없다보니 자꾸 이후에 생각하자고 하는 것들이 많아서, 일단 만나버렸다. 만나고 나니 웬만해서는 무를 수 없는 관계가 되어 우리의 결혼 준비는 더욱 원활해졌다.



이 둘은 꼭 결혼을 해야 한다.

라는 전제가 모두에게 의무처럼 깔려있었다. 우리끼리는 일단 좋아죽고 있으니 당연한 것이고, 주변 친구 및 지인들 모두 동아리를 기반으로 같이 친한 사람들이었으므로 그 사람들 입장에서도 우리가 이왕 만나고 있는 거 잘 되어야 좋은 일이기도 했다. 양가 집안에서도 자식들이 20대 대학 시절의 기억과 추억을 모두 공유한 사이인데다가, 지금 좋다고 만나고 있으니 함부로 끼어들 수 없었다. 참 다행히도 양가 모두 '자식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분들이라 처음부터 별 말씀 없으시긴 했다. 결혼을 준비하며 모든 것이 좋지만은 않았겠지만, 서로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라 중간 중간 양가의 생각이 달랐던 부분들도 있었겠지만, '이 결혼만은 절대 무탈하게, 모든게 좋게 흘러가야 한다'는 전제 아래 모두 아주 원만하게 풀어갈 수 있었다.


정말 어른들은 큰 소리 한 번, 그 어떤 갈등 한 번 없이 모든 것을 도와주셨다. 모든 의사 결정은 C와 내가 직접 상의하여 내렸으며, 만약 우리의 의사와 어른들의 의사가 반할 때는..... 가차 없이 우리의 고집을 밀고 나갔다. 이미 자식 결혼이 세 번째인 C의 부모님은 모두 너네 맘대로 하여라~ 모드였고, 무남독녀 외동딸을 시집보내는 우리 부모님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자식 결혼식이라 하고 싶은 것들이 있으셨지만, 고집쟁이인 내 확고한 의견 앞에, 그래 너의 결혼식이니 너 맘대로 해라~ 의 물러남을 보여주셨다.(분명 부모님이 희망하셨던 것이 있었던 것 같지만 티 내지 않으셨다. 다만, 내 맘대로 진행한 결혼식도 마음에 들어하셨다.)



어디든, 어느 것이든 골라야 한다. ⓒ구글 검색



결혼을 준비한다는 것은, 무수한 선택의 연속이다. 살면서 이렇게 단 기간에, 이렇게 많은 것을 정하고 고민한 적이 없었는데, 결혼은 그것을 해야만 진행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고민의 범위가 정말 무궁무진하다.) 당장, 나의 본가는 울산, C의 본가는 인천, 나는 서울에서 살고 있어 결혼식장은커녕 결혼식을 할 '도시'를 정하는 것부터가 고민이었다. 나의 부모님은 보통 경상도는 친정에서 결혼식을 올리니 울산이 어떻겠냐고 하셨고, 나는 내가 살고 있고, 나와 C의 지인들이 많은 서울에서 하고자 했다. (다행히 C의 부모님은 아무데나 상관 없다고 하셨다.) 결국? 서울에서 했다. 결혼식을 준비해야 할 신랑, 신부가 서울 및 근교에 있고, 손님들 또한 서울 중심으로 있었기에 보통 결혼식을 어디서 한다더라-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식으로 모든 것을 '우리' 중심으로 생각하고, 설득하고, 실행했다.


그렇게 결혼을 준비한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어떠한 탐색 끝에 '레스토랑'을 결혼식 장소로 정하게 되었는지, 웨딩 플래너도 웨딩 디렉터도 없는 순도 100% 셀프 웨딩의 과정은 얼마나 험난한지, 집은 어떻게 구했는지, 상견례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제일 중요한 프로포즈는 어땠는지. 모든 일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그때 그때 상황이 허락하는대로 흘러갈 뿐이다. 그렇기에 아, 이렇게 결혼한 사람도 있구나를 참고 삼아, 결혼 당사자들의 의견 중심으로 준비한 결혼식은 이렇구나 하며, 많은 예비 신랑, 신부들이 자신감을 갖고 본인의 결혼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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