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데이트가 '웨딩 스냅'이 되다.
우리는 둘 다 중학생 때는 필카, 고등학생 때는 디카, 스물세 살부터는 DSLR로 사진 인생을 살았다. 어릴 때부터 사진을 좋아했고, 관심이 많았고, 각자 본인의 카메라를 썼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반에서 1등 하면 당시 10만 원 중반대인 필카를 사달라고 졸랐었고, 아빠는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1등을 하고 당당히 카메라를 선물로 받았다. 고2 때 디카가 본격적으로 나올 때까지 부지런히 썼던 것 같다. 학창 시절, 소풍을 갈 때도, 수학여행을 갈 때도, 당시 나는 반에서 '나의' 카메라를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아이였다.
그렇게 컸고, 성인이 되었고, 이천 년대 중후반 한창 DSLR이 유행할 무렵, 나는 캐논 30D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렌즈까지 200만 원에 육박하는 카메라를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즈음 C는 학교 선배에게 캐논 20D 카메라를 중고로 구매했다. 드디어 우리에게 별을 제대로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생겼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아웃포커싱'을 위해 DSLR을 샀지만, 우리는 '장노출'을 위해 이 카메라를 샀다. 별은 어둡게 오래 노출하며 찍어야 하는데 일반 콤팩트 카메라는 그게 어렵다.)
C는 언제나 자기가 흥미를 느끼는 분야의 지식에 통달해있었고, 아직 이런 정밀한 기계의 초보였던 나는 그가 가르치는 대로 DSLR 사용 기술을 배웠다.(덕분에 꼼수부터 배웠다.) 그리고 우리는 사진 연습을 위해 허구한 날 '출사'를 나갔다. 어지간히도 돌아다녔던 것 같다. C가 휴학하고 놀면서 군대를 남들보다 2년여 늦게 가는 바람에, 또래 남학생들 모두 군대 가고 없을 때 더 실컷 놀았던 것 같다. 다만, 이렇게 사진을 찍는 우리의 피사체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둘 다 '찍는 재미가 없다' (곧, 못 생겼다) 고 하였고, 풍경을 중심으로 새로운 구도와 시선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사진과 함께 했던 우리이기에, 결혼을 하기로 했을 때 결혼사진만큼은 우리 손으로 찍고 싶었다. '우리를 위한 축제니까, 우리가 직접 찍은 사진을 걸자.'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아무리 사진 인생이 켜켜이 쌓여있다 한들, 그 대상이 대부분 자연이었지 사람을 향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인물 사진은 낯선 장르였고, 도전이었다. 심지어 스스로 모델까지 되어야 한다니! 찍는 것도 어렵지만 모델은 더더욱 힘들다. 사진 안에 자연스러운 포즈는 아무나 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도전하기로 했다. 결혼식에서 여는 '사진전'에 '우리'가 주인공인, '우리'가 찍은 사진을 전시하기로. '우리'만이 남길 수 있는 사진을 찍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 실현을 위해 우리는 정말 연애 기간 내내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다른 사람들의 스냅사진들을 열심히 찾아보고 참고했다. 어떤 사진을 보면서는 포즈를 구상했고, 어떤 사진을 보면서는 구도 및 보정을 고민했다. 나는 주로 사진 포즈 및 구도를 '기획'하였고, C는 기술적으로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찍고', '보정'하였다. 덕분에 이때, C의 보정 실력이 많이 늘었다. 전에는 빛을 강조하고, 별을 살렸다면, 이번에는 나의 피부를 밀고, 얼굴을 깎고, 팔다리를 가늘게 해 주었다. 사랑이라는 묘약이 들어가서 그런지, 그동안의 사진들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결국 인물 사진의 핵심은 피사체를 향한 애정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처음 우리의 커플 사진은 '인증샷' 수준이었다. 제주도 용눈이 오름 위에서의 모습처럼, 기술적으로는 괜찮을지 몰라도 '데이트 스냅'의 느낌은 아닌, 나 여기 왔어요~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진화하였다.
셀프로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삼각대다. 내 팔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카메라를 받칠 수 있어야, 자유롭게 구도를 잡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데이트마다 커다란 삼각대를 갖고 다녔다. 그게 어려울 때는 주변 자연지형/지물을 이용하였다.(바로 위 사진처럼) 지금은 휴대폰 카메라도 성능이 좋아서 충분히 고화질의 큰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가볍게 휴대폰과 폰 삼각대를 갖고 사진 찍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하지만 불과 4~5년 전만 하더라도 폰카의 화질 한계는 명확해서, 우리는 고퀄리티의 사진을 위해 무거운 카메라와 그만큼 무거운 삼각대를 갖고 다녔다. 당시 C가 쓰던 카메라는 캐논 70D였다. 거기에 캐논 어플과 연결하여 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능이 있었는데, 그걸 적절히 활용하였다. 폰 화면에 내가 찍을 장면이 나오자 우리는 '뷰파인더'의 자유를 찾았다. 멀리서 대략 구도를 잡아서 카메라를 세팅해놓고, 폰 화면에 보이는 포즈를 보고 사진을 찍는 것이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 아래의 사진들이다.
데이트 파파라치 컷처럼 찍은 사진들. 왼쪽 사진은 삼각대를 높이 세우고, 카메라 방향을 아래로 향하게 구도를 잡았고, 오른쪽 사진은 삼각대를 낮게 설치하고, 렌즈를 약간 망원으로 당겨 찍었다. 자세히 보면 C의 손에 휴대폰이 있는데, 폰 화면을 터치- 하면 그대로 사진이 찍혔다.
한창 무더운 여름이던 시절에는 이렇게 사진을 찍었다. 본격적으로 각 잡고 찍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면 옷도 맞추지 않았고(그냥 티셔츠, 반바지), 포즈도 어딘가 모르게 어설프다. 그나마 내 모습을 보면서 사진을 찍은 것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계절이 가을로 넘어갈 무렵, C가 부모님과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에서 70D를 잃어버렸다.(잃어버렸다고 쓰고, 도난당했다고 읽는다.) 이런. 여행 첫날 밤에 카메라를 잃어버린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에펠탑 앞에서 세 명 가족사진을 찍고 나에게 전송해준 것이 유일하게 DSLR에서 건진 사진이 되어버렸다.
C보다 물욕이 조금 더 있었던 나는, 전부터 좀 더 비싼, 5D MarkⅢ 카메라가 갖고 싶었다. 풀프레임 바디에 L렌즈까지. 기본 라인업을 구비하려면 신품으로 500만 원은 족히 주어야 하는 가격의(몸체+렌즈), 취미로 하기엔 좀 비싼 카메라다. 카메라에 입문하면서부터 꼭 한 번은 갖고 싶었기에 그에게 전부터 '결혼할 때 하나 살까?'를 물었었지만, 검소했던 C는 70D면 충분하다고 거절했었다.(아니 왜 와이프가 지르자고 하는데 거절하는 거죠)
그런데 마침, 그가 그렇게 애정해 마지않던 70D를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건 매우 안타깝지만, 덕분에(?) 새 카메라를 살 명분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5D MarkⅢ(일명, 오막삼)을 사자고 했다. 그는 중고도 괜찮으냐고 물었다. 학생 때부터 그의 카메라 중고거래 경험을 알고 있는 나는, 그가 보기에 괜찮으면 된 것이니 중고든 뭐든 일단 오막삼을 내놓으라고 하였다. 그렇게 9월 30일, 본격 가을바람이 불 때 그는 '서프라이즈'로 중고 구매한 오막삼 바디와 신계륵 렌즈(24-70mm 캐논 L렌즈)를 갖고 회사 앞으로 와서 퇴근하는 나를 맞이하였다.
안타깝게도 오막삼에는 와이파이 연결이 없어, 캐논 어플과 연동하여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능이 없었다. 아마 오막삼이 출시된지 꽤나 오래되어 최신 기능이 포함되지 않은 것 같았다. 메모리 와이파이 연결, 회전 LCD 등 편의 기능이 없어 불편했지만, 카메라의 기본 기능인 사진이 정말 잘 나왔다. 좀 번거롭긴 해도, 사진 때깔이 좋으면 되었지. 카메라에 우리를 맞추기로 하였다. 이때부터는 10초 타이머와 무선 릴리즈(멀리서 셔터를 누를 수 있게 해주는 것)를 활용하여 사진을 찍었다. C가 셔터를 누르고 10초 안에 신나게 달려와 포즈 잡으며 사진을 찍거나, 릴리즈를 이용해서 찍었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서 커플티도 맞췄다.
이제 하다 하다 이런 점프샷까지 셀프로 찍게 되었다. 겨울이 되며 사진은 더욱 무르익었는데, 연사 모드로 놓고 뛰어가는 모습까지, 자연스러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를 담은 사진들은 차곡차곡 쌓였고,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까지 모두 모아 우리는 결혼식 때, 한쪽에 사진전을 열었다. (결혼식 때 전시 모습은 추후 글에서 쓸 예정이다.)
처음에는 몹시 어색했고, 하면서는 어려웠고, 하고 나니 뿌듯했던 그런 사진 찍기였다. 나름 이렇게 사진을 찍으면서 노하우도 늘어, 결혼 후에는 아예 부업으로 친구 커플의 데이트 스냅을 찍어주기도 하고, 예비부부의 웨딩용 야외 스냅을 찍어주기도 하였다.(우리는 단가가 싸다!) C는 사진을 찍고, 나는 가방순이를 하며 포즈 디테일을 잡아준다. 나름 취미를 생산적으로 발전시킨 셈이다. 덕분에 사진도 남고, 사진 실력은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