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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리 Oct 13. 2020

오로라 폭풍, 화려한 빛의 소나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오로라 헌팅 첫 날을 무사히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밤을 새우고 오전 6시가 넘은 시간,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잠이 들었다. 영하 30~39도의 추위에서 밤을 보냈기 때문에 우리는 곧 기절하다시피 잠들었고, 밤이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시차 적응을 할 필요가 없는 여행이었다. 


오로라 헌팅 둘째 날이자 숙소는 3일째 였던 날. 이 날은 완전히 허탕이었다. 우리는 어차피 밤 새 오로라를 보는 게 목적인 여행이니 낮 시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했지만, 정말 하루 종일 잘 줄은 몰랐다. 낮을 이렇게 홀랑 보내버렸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밤하늘에는 그저 구름뿐이었다. 차를 타고 한 바퀴, 두 바퀴 돌다가, 저녁을 먹고, 숙소에 와서 쉬다가, 간식을 먹다가, 또 나가보아도 그저 구름. 앞서 일정 지도에서 눈치를 챘을지 모르겠지만, 그 지도에 보면 우리의 둘째 날 관측 장소가 없다. 하하, 자정쯤 되어서는 완전히 포기하고 다시 자기로 했다. 마지막 하루에 모든 것을 쏟아 붓기로 하고. 고작 3일밖에 안 되는 헌팅 일정 중에 하루를 완전히 날려버렸다. 인간의 계획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변화 앞에 무기력해졌다. 


오로라 헌팅 셋째 날이자 마지막 날. 어제 하루 종일 푹 자둔 덕에 마지막 날은 일찍부터 움직였다. 아무리 오로라가 목적인 여행이라지만 적어도 낮에 찍은 사진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나름 셀프 데이트 스냅 촬영도 하고, 옐로나이프 인포메이션에 가서 기념품도 받았다. 그리고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밤을 기다렸다. 우리가 둘째 날을 포기하고, 셋째 날에 올인하기로 했던 이유. 바로, 오늘은 오로라 예보가 Storm(폭풍)이기 때문이다. 


인포메이션 센터 전경, 방문 기념품으로 옐로나이프 뱃지를 준다 ⓒ과거 사진첩
인포메이션 센터의 오로라 예보. 오늘은 스톰이다 ⓒ과거 사진첩



오로라는 태양 표면이 폭발하면서 지구 쪽으로 방출된 입자들이 지구 자기장에 이끌려 극지방으로 가게 되고, 태양의 입자들과 지구의 대기가 충돌해 불꽃이 튀는 현상이다. 이를 C의 표현을 빌려 다시 설명하자면, 태양이 재채기해서 침이 튀었는데 지구가 그 침을 맞지 않기 위해 손으로 쳐내면서 비말이 인근 사방으로 퍼지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 시대에 괜찮은 설명일지 모르겠다.) *


아무튼 태양 활동이 활발할수록 오로라도 강하게 나타나며, 태양 표면 폭발 후 지구까지 입자가 날아오는 시간이 1~2일 정도 걸리기 때문에 오로라 예보가 가능하다. 우리는 먼 길을 가야하므로 미리 여행 일정을 짜는데 참고하기는 어렵지만, 여행 가서 관측 시간 및 일정을 짤 때 참고하기에는 유용하다. 1~2일 이내 예보는 신뢰도가 아주 높기 때문이다.* 


오로라 예보 사이트는 구글링을 통해 아주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지만, C는 주로 

http://astronomynorth.com/aurora-forecast/ 

를 이용했다. 그리고 우리는 여행 첫날부터 예보된 이 날의 Storm을 몹시 기대하고 있었다. 


*각주 : C의 블로그 : https://m.blog.naver.com/amadas72/220934361357



다행히 낮에는 구름 한 점 없었지만, 지상은 옅은 안개로 하루 종일 뿌연 상태였다. 오로라는 폭풍이 몰아칠 예정인데, 과연 구름은 어떻게 될까? 아무리 오로라가 세도 지상에서는 구름이 그걸 가려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긴장하며 해 질 녘을 기다렸다. 


옅은 오로라와 북두칠성 그리고 별똥별 ⓒ과거 사진첩


해가 지자마자 우리는 첫날 밤 새 놀았던 장소에 가서 오로라를 기다렸다. 첫날과는 다른, 뭔가 다른 낌새가 보일 듯 말듯하지만 시원하게 보이는 그런 건 없었다. 금방 오로라가 세질 것 같지는 않아 관측지를 이동하기로 했다. 고정 시설을 두고 운영할 정도면 오로라 보기에 최적화된 곳인가 싶은 궁금함에 오로라 빌리지 쪽으로 갔다. 당시에는 오로라 빌리지로 아무리 검색해도 위치 정보가 나오지 않아, 무작정 구글맵을 보면서 북쪽으로 이동했던 것 같다. (옐로나이프를 빠져가는 길은 남/북으로 나 있는데, 확률상 북쪽에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북쪽 길로 무작정 갔다.) 


30분쯤 이동했을까, 좌회전을 해서 꺾어 들어가는 길로 오로라 빌리지 간판이 보였다. 일단 꺾어서 그 길로 들어갔으나, 오로라 빌리지로 들어가는 입구는 막혀있었고, 길은 계속 이어져 있어 우리는 안쪽 길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그 길의 끝은 호수였다. 아마 오로라 빌리지에서 보이는 호수 뷰도 이 호수인 것 같아, 우리는 일단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오로라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왼쪽 아래 옅은 오로라, 오른쪽 아래 오리온 자리가 보인다. 고위도 지역이라 오리온이 낮게 뜬다. ⓒ과거 사진첩


뭔가 어렴풋이 존재감은 느껴지는데, 아 이거다!는 없는 답답함이 이어지고 있었다. 첫날 밤에 본 게 다일까? 오로라 폭풍은 대체 어느 정도 일까? 언제쯤 우리는 화려한 오로라를 볼 수 있을까? 기약 없는 기다림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오로라 빌리지 근처 호수에서 한 시간쯤 기다렸을 때, 설상가상으로 구름이 몰려오는 게 보였다. 아니 오라는 오로라는 안 오고! 웬 구름이람!! 오늘이 마지막 밤인데.. 오로라 폭풍 예보는 우리에게 괜한 희망만 준 것 같았다. 이틀의 기대감이 절망으로 빠져들었다. 구름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온 하늘을 덮었다. 뭔가 오로라가 꿈틀대는 것 같았지만 두터운 구름은 우리에게 한 틈도 오로라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힘이 빠졌다. 비행기 안에서 어렴풋이 본 오로라, 첫날 밤 새 맛보기로 보았던 오로라가 이번 여행의 전부일까. 우리는 거기까지 만족해야 하는 걸까. 일단 답이 없는 관계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늘은 낮부터 돌아다녀서 피곤하다. 


숙소에서 두어 시간을 잔 것 같다. 소스라치며 눈을 떴는데,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커튼을 열어 창밖을 봤는데, 도시 전체가 구름에 뒤덮여 있었다. 하아, 진짜 운도 없지. 예보가 폭풍이면 뭐한담..


마지막 날 밤인데, 내일이면 오후 비행기를 타고 다시 미국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여기까지 와서 구름만 보며 한숨 쉴 수는 없지. 그리하여 우리는 무작정 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마지막 날이니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그렇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일단 나는 최선을 다 했노라고, 그 후에는 자연의 뜻에 따라 볼 수 있었다 또는 볼 수 없었다 라고 해야지 싶어, 구름을 노려보며 차를 몰고 나왔다.


목적지는 첫날 밤 새 즐겼던 그 관측 스폿. 야트막한 언덕도, 근처의 눈 쌓인 침엽수림도 예뻐서 거기서 우리의 마지막을 즐겨보고자 했다. 그렇게 다시 그 길로 향하는데...



어라? 이 강렬한 초록색의 느낌은 뭐지?


구름이 아직도 끼어있나 확인하기 위해 창문을 내렸다가 뭔가를 봐 버린 것 같다. 하늘을 빈 틈 없이 채우고 있었던 구름이 어느덧 슬금슬금 물러 나고 그 사이로 강렬한 오로라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다르다! 움직임도 다르다! 너무 놀라서 우리는 바로 길가에 차를 세우고 오로라를 보기 시작했다.


오로라 폭풍의 시작. 구름이 물러나는 중 ⓒ과거 사진첩


구름이 걷히는 것과 동시에 춤을 추는 오로라가 보였다. 엄청난 타이밍. 초록색의 오로라는 금세 온 하늘을 덮었고, 격렬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전에 넘실넘실 움직임이 보이던 것과 다르다. 정말 커튼 자락이 바람에 힘껏 휘날리는 느낌이고, 머리 위에서 치맛자락이 빠르게 움직이는 느낌이다. 누군가 하늘 전체를 향해 입김을 세게 뿜고 있는 것 같다가, 결 따라 겹겹이 파도를 타고 있는 것도 같다.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고, 함성이 절로 나왔다. 사진에서 보던 것과, TV 속 영상에서 보던 것과, 불과 그저께 보던 것과 차원이 달랐다. 오로라 폭풍이라는 게 이런 거였구나. 바로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오로라의 힘이 느껴졌다.


찰나를 담은 사진에서도 그 역동성이 느껴진다 ⓒ과거 사진첩


한 차례의 요동이 지나고 오로라가 약간 잠잠해졌을 무렵, 우리는 부랴부랴 달려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제 오로라는 거대한 녹색 기둥을 비롯하여 다양한 색의 향연을 보여주고 있었다. 녹색 위로 빨간색도 보인다. 가느다란 한, 두 줄기의 오로라가 강렬하게 눈동자에 박힌다. 이미 달이 떠서 굉장히 밝은데도 오로라의 위세는 꺾이지 않았다. 풍경도 오로라도 모두 선명하게 사진 속에 담을 수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로라를 즐겼다. 다행이다. 먼 길 온 보람이 있어서. 마지막에 던진 우리의 모험이 성공했다. 만약 아직도 구름이라고 계속 잤으면, 숙소에 있었더라면 이 순간을 평생 후회했겠지. 역시 마지막엔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늘은 뜻대로 되지 않지만 간절히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를 주는 것 같았다. 덕분에 평생 가져갈 추억을 남겼다. 우리는 이후에 TV에서 본 어떤 오로라도 부럽지 않았다. 그저 이때의 기억을 떠올릴 뿐이었다. 



이와 같은 우여곡절이 있었기 때문인 걸까. 마지막 날의 오로라 폭풍은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남았다. 그 전의 마음고생과 함께. 2015년 한 해 힘들었던 것도 마음의 상처도 오로라를 보며 훨훨 날려 보냈다. 추위에 고생했지만 연말을 마무리하고, 2016년 새해를 시작함에 앞서 좋은 변곡점이 되어 주었다. 


누군가 오로라를 보러 가야 할지 고민한다면, 꼭 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보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부터 그걸 실천에 옮기고 직접 보는 것까지 모두 나의 인생에 밑거름이 될 거라고. 신나게 움직이는 오로라가 고생했던 마음에 힐링이 되어 줄 거라고. 


추운 겨울, 여행을 준비하고 함께 고생하고, 행복해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함께하는 삶에 자신감과 용기를 얻었다. 


타임랩스는 생각도 못하고 찍었던 사진을 그래도 이어 붙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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