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반구에서 별보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뜨거운 빛, 건조한 바람. 모든 것이 새로웠다. 사막을 달리기 위해 빌린 커다란 차의 에어컨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켤 때마다 에어컨에서는 뜨거운 바람만 나올 뿐이었다. 창문을 내리면 이토록 시원한 것을, 그냥 에어컨 대신 창문을 열고 달렸다. 그랬더니 창문 너머 햇살이 반 팔 아래 살을 데운다. 잠깐 느끼기에도 이 햇살은 한국에서 맞던 것과는 다르다. 직사광선의 뜨거움을 막고자, 운전하는 C의 팔과 얼굴을 담요로 둘렀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담요가 펄럭거린다. 조수석의 나는 담요 고정시키랴 지도 보랴 지나는 풍경을 사진 찍으랴 바쁘다.
입은 바짝 타들어 간다. 딱히 목이 마르지는 않은데 뭔가 이유 없는 갈증이 느껴진다. 입술부터 갈라지는 이 느낌. 문득 한 번 더 깨닫는다. 아, 여기 사막이었지. 칠레 제2의 도시, 안토파가스타에서 차를 빌려 칼라마를 넘어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까지 가는 길이다. 대략 4~5시간의 운전. 지대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의 해발고도는 2,470m 정도. 사막으로 이루어진 칠레 북부는 대체적으로 이 정도 높이이며, 볼리비아와 국경선을 이루는 안데스 산맥 쪽은 4,000m를 넘어간다. 남한에서 제일 높다는 한라산(1,947m) 보다 훨씬 높다. 고산증이 있을 높이는 아니지만 공기가 달라진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가볍고, 좀 더 건조하다. 하늘이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결혼한지 일주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칠레로 신혼여행을 왔다. 어쩌다 보니 극한의 신혼여행 스케줄. 일정만 보면 끔찍했다. 총 6박 10일의 일정인데 매일 숙소를 옮기고, 비행기를 10번 탔으며, 대략 2,000km를 운전하였다. 지금은 여행의 막바지, 칠레 북쪽으로 옮겨와 지구에서 가장 건조하다는 아타카마 사막 한가운데로 돌진하는 중이다. 달과 가장 유사한 지형을 가졌다는 달의 계곡을 보고, 밤에는 그곳에서 은하수를 보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먼 거리를 열심히 달렸다.
별을 보는데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조건 3가지로 구름, 월령, 광해를 꼽고 싶다. 일단, 구름 없는 맑은 날이어야 한다. 비가 오거나 구름이 하늘을 가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월령은 달의 위상, 간단히 음력 며칠인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 어두운 별을 보고 싶은 경우 밤하늘에 가장 밝게 빛나는 달의 존재가 방해가 되기 때문에 달이 뜨고 지는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은하수를 보고 싶다면 보름달이 뜨는 시기는 피해야 한다. 초저녁에 지는 초승달 시기 또는 새벽녘에 뜨는 그믐달 시기가 좋다. 그리고 광해는 말 그대로 우리 주변의 빛 공해인데, 아무리 하늘이 어두워도 주변이 밝으면 소용이 없다. 도시에서 별을 보기 어렵고, 인적이 드문 어두운 곳으로 별을 보러 가는 이유이다.
아타카마 사막은 매우 건조하여 구름이 거의 없다. 비가 내린 흔적이 없다는 곳이 있을 정도니 그 건조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맑은 하늘이 보장된 곳이다. 심지어 공기가 건조하다는 것은 별 빛을 또렷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또한, 이곳은 넓은 사막지대에 대도시가 없기 때문에 광해 또한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도 몇 안 되는 최적의 관측 조건을 갖춘 곳이고 그렇기에 그 동네에는 천체 관측 시설이 많다. 연구를 위한 천문대도 많고, 관광객을 위한 사설 천문대도 많다.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동네를 다니다 보면 별 관측을 주요 관광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곳에 우리가 왔다. 직접 별을 보러! 아타카마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구름과 광해는 해결됐는데, 월령... 그것이 문제로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날짜는 3월 18일! 음력 2월 10일! 바로 달이 상현을 넘어 보름으로 가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더 선명한 은하수를 보기 위해 밝은 달을 피해야 한다는 걸 아는 우리가 왜 이런 일정으로 왔느냐 한다면... 그저 우린 반년 전 결혼 날짜를 정할 때 초승달이 뜨는 3월의 토요일을 골랐을 뿐이고, 나중에 여행 일정을 짜다 보니 별을 보는 건 그로부터 일주일 후더라... 하는 현실이 도래했을 뿐이었다. 하하, 언제나 현실은 극복하라고 있는 법. 오로라 때를 생각해보면... 달이 있으면 지상이 밝아 주변 풍경까지 사진에 담을 수 있다는 장점... 은 무슨 여긴 허허벌판 사막 한가운데인데.
날짜를 바꿀 수 없다면 시간을 조절하면 된다.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은하수를 보는 시간은 달이 지고 난 후, 해가 뜨기 전이될 것이다. (반달이 넘었으므로 해가 질 때 이미 달이 떠있고, 해가 지면 달은 밝게 빛난다.) 이 날, 달은 오후 4시 49분에 떠서 19일이 넘어간 새벽 4시 16분에 진다는 사실을 확인한 우리는, 일정을 다시 세웠다. 초저녁 달이 떠 있을 때, 간단히 별과 풍경을 구경하고 잔다. 그리고 4시쯤 일어나서 달이 질 때쯤 은하수 관측을 나간다. 하하하...
달의 계곡에서 일몰을 감상하고 내려오는데 어둠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하지만 그건 햇빛 대비 상대적인 어둠이었을 뿐, 이내 달이 점점 밝아지고 빛을 발하였다. 일단은 달과 함께 별 감상. 무엇보다 오리온자리가 뒤집어져서 보이는 게 신기했다. 아, 여긴 남반구지. 새삼스럽게 우리가 적도 아래 지구 반대편에 와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북극성은 북반구에서만 보이고, 남십자성은 남반구에서만 보이지만 사실 많은 별들이 남반구, 북반구 모두에서 보인다. 뜨는 고도와 보이는 모습의 위, 아래가 조금 다를 뿐. 오리온자리도 어디에서나 보이지만, 남반구에서는 이렇게 다른 형태로 보이는 것이다.
별자리 신기함도 잠시, 우리는 시간이 없었다. 내일 다시 이곳을 떠나 안토파가스타를 거쳐 더 남쪽에 있는 파라날 천문대까지 가야 한다. 그것도 오후 2시 전까지. 그러면 일찌감치 이곳을 떠나야 하는데 새벽 4시에는 일어나서 은하수를 봐야 한다. 그렇다면? 얼른 자야지. 신혼여행 와서 쪽잠이라니. 심지어 천혜의 관측환경인 이 곳을 단 하룻밤만 거쳐가다니! 멋모르고 일정을 짠 나를 원망했다. 흑흑. 일단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야지. 먼 길 운전과 땡볕에, 건조함에 지친 몸을 얼른 뉘었다.
그리고 새벽 3시 반.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정말 정말 피곤해서, 몸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은하수를 보지 않고 갈 수는 없었다. 최소 남미까지 오는데만 비행기로 36시간이 걸린단 말이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힘겹게 일어났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잠옷바람에 등산복 하나 걸치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공터, 달의 계곡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은하수는 더 잘 보일 테고 어딘가 사방에 어둠만이 내린 곳이 있을 테지만 우리에겐 고민할 시간도, 멀리 이동할 시간도 없었다.
새벽 4시쯤, 달의 계곡 주차장 공터에 도착했다. 은하수는 어느덧 머리 위에서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고, 달은 서쪽 너머로 지려고 하고 있었다. 와아. 은하수 중심부가 머리 위에 있고,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까지 이어지는 모습이란. 이렇게 길게 이어지는 은하수는 실제로 처음 봤다. 우리나라에서는 은하수 중심부가 지평선 부근에 있어서 일부만 볼 수 있는데, 남반구에서는 은하수 중심부가 하늘 한가운데 있어 양쪽 끝으로 이어지는 은하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쪽 끝에는 남반구에서 볼 수 있는 대마젤란 은하와 소마젤란 은하가 보였다. 북반구에서 가장 잘 보인다는 안드로메다 은하도 위치를 찾아가면서 간신히 봐야 그 존재를 볼 수 있는데, 마젤란은하들은 그냥 잘 보였다. 엄청 크게!
어느덧 달이 지고, 한층 더 강력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이내 눈은 그 어둠에 적응하였고, 별빛을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은하수가, 그 중심부가, 암흑대까지 모두 맨 눈으로 선명하게 보인다! 은하수를 입체적으로 느낀 최초의 순간이었다. 별은 멀리 있기 때문에 그 거리감이 잘 느껴지지 않아 별들끼리는 평면적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실제 거리가 다른 별들을 평면에 이어 별자리 형태로 보는 것), 여기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일단 온 하늘이 모두 빈틈없이 별로 꽉 차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은하수 중심부를 구성하고 있는 별들은 누군가에게 뒤질세라 밝게 빛나며 존재감을 뽐내었다.
그리고 그 사이의 암흑대가 입체적으로 명확히 보였다. 어떤 물질로 이루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빛이 통과하지 못하여 우리 눈에 어둡게 보이는 암흑대. 보통은 까만 밤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별 외에는 모두 어둡기 때문에 잘 구분이 안 가지만, 여기에서는 달랐다. 별들이 빈틈없이 있는 밝은 하늘 가운데에 있는 암흑대는, 그 존재감이 명확했다. 어디까지 암흑대인지, 어느 경계에서부터 별이 보이는지 그 부분들이 입체적으로 잘 느껴졌다.
나는 넋을 놓고 고개를 돌려가며 은하수와 별들을 안시 관측(맨 눈으로 보는 것)하였고, C는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동안의 고생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이런 은하수를 본다는 자체만으로 우리가 고생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렬하고, 선명한 은하수 경험이었다. C는 그동안 열심히 갖고 다닌 장비를 모두 세팅하면서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은하수를 배경으로 셀카도 찍었다. 비록 옷은 잠옷 위에 등산복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충분했다.
별을 보고 사진을 찍다 보면 참,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불멍, 물멍 만만치 않은 것이 바로 별멍이다. 넋 놓고 보고 있다 보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특히 머리 위 온 하늘이 모두 별로 뒤덮인 광경 아래에서는 더더욱 이 별들의 움직임이 실감 나지 않는다. 별이 너무 촘촘해서 내가 아는 별자리 조차 잘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별 속에 남겨진 것 같은 그 기분이란. 그래서 별자리가 아닌, 한국에서는 망원경으로 보는 딥스카이를 맨 눈으로 보고 찾아내는 즐거움이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있는 행복함이란. 우리가 함께한 10여 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철원에서 별을 보며 좋아하던 꼬꼬마 둘이 어느덧 커서 같이 손잡고 지구 반대편까지 왔구나 싶었다.
오로라의 화려함과는 다르다. 특별히 화려하지 않아도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은, 그리고 그 별들이 모여있는 은하수의 모습은 그 존재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었다. 원래 이 모습이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밤하늘의 모습이었을 텐데. 문명과 도시가 발달하면서 잃어버린 본래의 모습을 만난 것 같았다. 그래, 이것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지.
황홀한 1시간이 지났다. 우리에게는 다음날(이미 새벽이므로 사실 같은 날) 이번 신혼여행의 절정이 될 일정이 기다리고 있기에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가야 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가 잠깐의 잠을 청하기로 했다. 여전히 내 마음은 흥분 상태였지만, 이제 곧 해는 뜰 것이고 이 은하수도 밝은 빛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다가올 다음의 태양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짧은 잠을 청했다. 두어 시간 잔 후, 또 새로운 길을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