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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Grace Apr 04. 2024

마포대교 한 번, 양화대교 여러 번.

아직도 그곳을 지날 때면 가슴 한편이 아려옵니다.

마포대교 한 번, 양화대교 여러 번.


시간을 조금 전으로 돌려 내가 문신 일을 하던 때, 나는 이미 여러 가지의 마음의 병, 잔인하게 이야기하면 정신병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항우울제와 조현병 치료제를 먹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다 나에게 공황장애가 생겼을 때, 나는 좌절했다.

병들이 나아지기는커녕, 잔인한 선물을 하나 더 받았으니.

병원에서 안정제를 받고, 주머니에 그 약 통을 항상 넣고 집과 일터를 오갔다. 내가 집에서 나온 지 삼십 분이 흘렀어도, 내 주머니에 안정에 약 통이 없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안정제 없이 오는 공황 발작은 죽음의 고통과 결이 비슷하니까.


어느 날이 있다. 왠지 불안한 날. 기우겠거니 몸을 씻고, 옷을 입고 출근을 했다.

이곳에 들어온 지 벌써 수개월이 흘러 다들 얼굴은 충분히 기억한다. 건조한 목례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린다.


한 시간이 되지 않아 불안해진다. 심장이 조금씩 빨리 뛴다. 헛구역질이 나온다.

수 차례 헛구역질을 하고, 약을 챙긴다. 탁 하며 약 통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입에 털어 넣는다.



효과음이라도 들린 듯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바닥에 주저앉는다. 정상적으로 호흡을 했던 방법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가쁜 숨을 몰아쉰다. 가슴을 친다. 눈물이 흐른다.

나는 추하다. 나는 무너진다. 사람들 앞에서 무너진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겨우 발작이 잦아들 때쯤, 나의 추함을 본다. 얼마나 내가 등신 같이 또 사람들 앞에서 발작을 일으켰는지 생각한다.


그만하자, 진짜 그만 살자.


어플로 택시를 부른다. 도착지는 마포대교. 마포대교. 너무나 유명한 그곳을 간다.

나도 아마 이제 잠기겠지.


대충 계산을 하고, 걷기 시작한다. 다리의 시작점과 끝 점은 아마 너무 얕아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아프기만 할 것 같다. 아픈 건 싫다. 다리의 중간까지 걸어 이제 마음을 되돌아본다.


준비됐어? 정말 준비됐어?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놓는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그냥 어디서 봤다.


난간을 오르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난간이 높다. 나의 키의 수 배는 될 정도로 높다. 아마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저렇게 만들었겠지, 오른다. 오른다.


탁, 뒤에서 누가 나의 목덜미를 잡는다. 팔을 잡는다. 경찰이다. 왜 경찰이 지금 여기 있지?


아, 근처에서 시위가 있어 출동했단다. 되는 일이 없다. 분노한다. 머리를 난간에 수 차례 박는다.


파출소로 끌려간다. 상담실 비슷한 곳에 앉았다. 대화하고 싶지 않아 입을 닫는다. 겨우 지인이 전화를 받아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다리 방문이다.


그 후 나는 내가 있는 곳에서 마포대교가 꽤 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오히려 양화대교를 더 편하게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실 자전거만 타도 갈 수 있는 곳이니까.


이 전 화에서 이미 이야기했을 것 같은데, 또 그런 날이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 지독한 우울감과 무력감이 내가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나의 온몸을 휘감고, 괜히 사람들의 눈빛이 날 서 보이는 날이 있다. 그날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작업이 없는 신예 문신사는 그림이라도 그려야 한다. 압박감을 가지고 하나하나 톺아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으나, 젠장, 헛구역질이 올라온다. 심장이 점차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호흡이 점차 가빠지기 시작한다. 맞다. 발작이다. 하지만 그날은 더 심했다. 그날은 더 지독했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발작이 왔다가 가라앉았다가, 이 반복이 세네 번은 지속되었으리라. 다시 마음을 먹었다. 이제 마무리하자. 마무리하자. 이건 사는 것이 아니다. 겨우 버티며 생존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살아있으나 죽은 존재였다.

걸어 다니는 시체가 아마 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택시를 타고, 조금 돌아가도 괜찮으니 양화대교를 찾아달라 한다. 이번에도 다리 초입에서 내렸다. 기사님께서 눈치채고 경찰에 신고 전화를 하면 나의 이 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리의 중간으로 향한다. 이곳에서도 고개를 돌렸을 때 두어 대의 전화기가 있다. 사실 마지막을 결심하고 온 자에게 이 전화가 어떠한 효과가 있을지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담배에 불을 붙인다. 대충 주저앉아 담배의 연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한다. 몇 분 뒤면 아마 이것도 하지 못할 것임을 알아서, 삶의 마지막 담배 연기를 음미한다. 반 갑 이상을 앉은자리에서 다 태웠을까, 이제 일어나 난간으로 향한다. 다시 신발을 벗는다. 슬퍼 흘리는 것인지, 혹은 나에게 나의 삶을 마감할 자유라도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기쁨으로 흘리는 눈물인지 모르겠지만 눈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눈물이 흐른다.


한 발, 두 발, 난간 틈에 발을 올린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진짜 조금만 더,



젠장. 누가 나를 잡는다. 뒤돌아보니 자전거를 타던 아저씨 한 분이 달려와 나의 옷깃을 잡고 내린다.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림잡아 일고여덟 명 정도의 사람이 주변에 있다. 그 아저씨는 화를 낸다. 왜 화를 낼까. 지금 화가 나는 건 나다. 마지막 자유를 빼앗겼다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제발 나를 내버려 두라고,

가던 길을 그저 가 주면 안 되겠냐고,

처음 본 나의 죽음을 막지 말아 달라고,


울부짖었다. 울부짖었다.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짐승의 소리와 흡사했다.


그리고 그렇게 수 분이 흘렀을까, 눈을 들어 보니 나의 뒤로 119 구급차 한 대와 구조차량 한 대, 경찰 순찰차 두 대가 보인다. 아, 진짜 실패구나. 직감한다.


나의 온몸을 맡길 수 있었던 강을 보고 싶었다. 고개를 돌려 강을 바라보는데, 소방 보트 세대가 대기하고 있다.

나의 죽음은 아무도 허락하지 않는구나. 나의 의지로, 나의 비루한 삶 정도는 마감하고 싶었는데.


나는 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구나.


더 큰 무력감에 빠지고, 귀가한다.

이다음에는, 정말 이다음에는 확실하게,

소망을 입으로 외며 잠에 든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면 양화대교 ‘여러 번’이 아니다. 사실 이 이후 양화대교를 자주 찾았다.


그리고 위에서 적었던 내용과 거의 동일하게 지나가는 행인과, 경찰이 나를 막은 적도 자주 있었으며,

나의 인생을 마무리하려 오른 다리에서 다른 약속을 하며 다리에서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다. (다음 이야기에서 이야기하겠다.)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의 걱정 서린 목소리에 발걸음을 돌린 적도 있다.


그때는 나의 몸을 중력에 맡기게 하지 못하게 막았던 이들이 너무나도 미웠다. 미웠다. 미웠다.


그 후 3년이 지난 후 나는 다시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짧게 보이지 않는, 앞으로 만날 일 없는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속으로 건넨다. 그 사람들이, 그 존재가 지금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아 이 이야기를 하나하나 적고 있는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감사하다. 정말로 고맙다.

나는 나의 삶의 끝을 내가 장식하기를 원했다.

마무리하길 원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럼에도.

나는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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