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대. 그대
다사다난했던 2024년이 저물어갑니다.
날씨는 생각보다 더 추워졌어요.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의 날씨도 여기와 같이 추운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저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부모님과 함께 살던 본가에서 길을 떠나 서울에 방을 잡았습니다.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두다가, 잘리다가, 다시 취업했다가,
지금은 이전에 하던 타투이스트 일을 하며 지내고 있어요.
혼자 사는 프리랜서의 삶이 여유롭지는 못하더군요.
밀린 카드값과 전세 이자를 보며 아침마다 한숨짓는 삶이 참 지겹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한국에서는 처음 혼자 사는 것이다 보니 몸도 많이 아팠어요.
독감에, 장염, 작고 큰 감기까지, 여러 일들이 많았어요.
아! 전시도 한번 했었어요. 너무 좋아하는 형과 같이 처음으로 압구정 빈칸에서 글 전시를 열어봤어요.
브런치에만 적던 글을 더욱 실체화시켜 전시를 하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배웠어요.
모든 창작자들을 정말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조금 외로워졌어요. 좋던 밉던 집에 들어오면 누군가 있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것일 줄은 몰랐어요.
난방비를 아끼려 집에 보일러를 잘 틀지 않는데,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여섯 평 짜리 조그마한 방이 한기로 가득 찬 게 가끔씩 서글프기도 했어요.
배도 많이 고팠어요. 하루종일 라면만 먹는 것이 이렇게 지겨운 줄 몰랐어요.
부모님의 반찬이 그리워지다니. 불효자에서 점차 효자로 바뀌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사랑을 하고 싶어졌어요.
그저 재미로 잠깐 만나는 것이 아닌,
헤어지더라도 만나는 동안은 서로가 서로의 우산이 되어 주는,
각자가 마주한 현실을 각 객체의 현실로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그 현실을 자신의 현실이라 여기며 살아내 주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졌어요.
너무 이기적인가요?
그래도 이제는 잠시 만났다가 남이 되어버리는 그런 일시적인 관계는 하고 싶지 않아 졌어요.
서른이 되어간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싶네요.
그럼에도 많이 미안해졌어요. 혼자 살아오고, 그다지 많은 만남을 해 본 경험은 없다 보니, 이십 대 후반에 맞지 않게 너무나도 서툴고, 너무나도 방법을 모르는 제 모습에 많이 미안해졌어요. 어느 정도의 경험은 관계의 유연함을 만들어주는데, 별로 없는 경험은 사람과 관계 둘 다 뚝딱거리게 만드나 봐요.
다가올 2025년은 어떤 한 해가 될지 기대가 되어요.
내가 항상 궁금한 당신의 하루는 어떠한 안부 인사들로 가득 찰지 기대가 되어요.
슬픔에 점철된 하루는 이제 떠나보낼 준비가 되었는지 궁금해집니다.
아침 찬 공기와, 낮의 바람, 밤의 한기에 젖어들지 않을 것이라 나는 그대를 믿어요.
내가 아는 그대는 내 생각보다도 더 따뜻한 사람일 테니.
큰 부는 누리지 못할지라도, 충분히 여유 있는 삶을 살아낼 것이라 믿어요.
그대에게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능력과 가능성이 있어요.
현실은 고통이라고 비관론자들이 말하고,
따뜻한 글을 쓰고 읽는 것을 바보 같다고 냉소주의자들이 손가락질하지만,
그대는 충분히 그 말과 비웃음을 흘려보내고, 충분히 평안과 여유를 찾아낼 수 있어요.
행복하라는 말은 아직 아끼고 싶어요.
사실 행복이라는 것은 나도 잘 모르겠어요. 어떤 감정이 정말 완전한 행복을 주는 것일까.
많은 돈일까, 사랑일까, 혹은 그저 삶의 안정감일까.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그대의 삶이, 나의 삶이 불안과 절망보다는,
평안과 고양으로 가득 찬 하루들로 만들어진 덩어리였으면 좋겠어요.
가끔은 그 덩어리에 불순물들이 낄 수 있겠죠. 마냥 평안하기만 한 하루는 없을 수도 있어요. 삶은 항상 불친절하니까요. 누군가 당신의 하루를 짓밟는 행동과 언행을 할 때도 있겠죠.
고양감 대신 삶의 무게에 눌려 절망에 빠져 잠드는 날이 있을 수 있어요. 괜찮아요. 그래도 괜찮아요.
평안해야겠다는, 고양감에 취하여 365일을 살아내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요. 그저 평안한 날이 불안한 날들보다 하루라도 더 많기를 바라요.
절망에 빠지는 밤보다, 고양감에 기운차게 하루를 살아내는 날이 하루라도 더 많기를 바라요.
그렇게 하루씩 늘려나가는 거예요. 하루만 더, 하루만큼, 하루만 더.
그러면 언젠가 그대는 2025년의 끝에서 올 한 해는 괜찮았다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슬픈 날 보다 기쁜 날들이 더 많았다며 웃으며 한 해의 끝을 맞이하는 날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그저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나에게도 그대와 같은 한 해가 있기를 바라요.
그리고 그대가 그 한 해의 끝을 마주할 때, 내가 그대 옆에 있기를 바라요.
그저 그거면 될 것 같아요.
그대 올 한 해 정말 고생 많았어요. 다가올 해에 더욱 편안한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