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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Grace Mar 19. 2024

프롤로그. 어쩌다 나는.

어쩌다 나는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프롤로그, 어쩌다 나는.


눈을 떴을 때 하루가 상쾌하고 기분 좋았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반복되는 나날에 신물이 난 지 오래이며,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떠한 것을 원하는지 또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은 나를 실패와 나락으로 이끌었으며, 내가 추구하고 원했던 것들은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음악을 하기 원했을 때는 나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으며, 그림을 그릴 때 나는 공황과 조현병을 얻었으니.

책상 위에는 뜯어 입에 털어 넣고 종이만 덩그러니 입을 벌리고 있는 약 봉투가 나뒹굴어 있으며, 방 한구석에는 언제든 나의 삶을 마무리하려는 나의 의지가 반영된 듯 벨트로 만든 매듭과, 부엌에서 남모르게 가져온 식칼 하나가 있다.


연락 올 사람은 몇 없다. 그저 내게 오는 연락은 어서 카드값을 내지 않으면 너의 신용 정보와 은행거래를 다 막아버리겠다는 친절하지만 살벌한 문자 안내가 와 있으며,

오늘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내일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겨울도 아닌데 몸을 떨고 있다.

연락이 왔다. 다행히 은행은 아니다. 카드사도 아니다.


“오늘은 모임에 나올 수 있니?” 물어보는, 유일하게 나의 안부와 나의 안녕을 진심으로 바래주는 ( 그 당시에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두 살 위 형의 연락이었다.

답장을 보내고 싶고, 구구절절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이며, 지금 나의 머릿속에는 어떤 것이 가득 차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 이야기를 할 힘도 없어서,

“머리가 복잡하네요.”라는 답장만 슥 남긴 채 휴대폰을 침대 위로 자유낙하 시켰다.


어차피 잠시 후면 병원에 가야 해서 일어나야 하니까, 하는 단순한 핑계로 의자에 앉는 것인지 누워 있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애매한 자세로 담배를 태우며 괜히 쓸쓸한 음악을 골라 귀에 담았다.

겨우 몸을 일으켜 신발을 질질 끌며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이 그래도 걸어서 십분 거리의 가까운 거리니 다행일까, 만약 병원이 멀었다면 나는 가지도 않았으리라.

아직 앳된 얼굴이 가시지도 않은 교복을 입은 한 무리가 구석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저들의 걱정은 무엇일까, 잠시 걱정했지만 괜히 눈 마주치고 싶지 않아 나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겨우겨우 병원에 도착하여 깊은숨을 한 번 내쉬고 병원에 들어선다. 이 병원을 십 오 년 넘게 다녔으나 아직도 퉁명스러운 안내 간호사의 어투에는 적응이 되지 않는다. 거슬림을 약간 누그러뜨리고 잠시 소파에 앉아 생각을 정리한다.

어떻게 해야 진료가 빨리 끝날까, 어떤 말을 해야 의사가 나를 빨리 보내줄까.


쉬고 싶다.

쉬고 싶다.

그만하고 싶다.


떠오르는 생각과 갈망을 얼추 갈무리해갈 때쯤, 의사가 나를 부르고 나는 문으로 들어간다.

“일주일 동안 어떠셨나요?”

“이전과 동일했습니다.”

“약을 먹었을 때 부작용은 어땠나요?”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안정제가 더 필요할 것 같네요.”

“네. 처방해 드릴게요.”

십분도 걸리지 않는 진료 혹은 상담이 끝난 후 약국으로 내려와 이주치 약을 받는다.


매일 밤 먹어야 하는 한 움큼의 약 열 네 봉지, 상시로 들고 다니며 먹어야 하는 안정제 한 통.

이 약을 든 후 나는 생각했다. 열나흘도 걸리지 않으리라.


다시 집으로 들어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옷을 갈아입고 음악을 튼다.

이전에는 그저 즐겨 들었을 뿐인 쓸쓸한 노래들이 나의 귀를 타고 들어와 마음에 새겨진다.

물에 물감을 풀듯, 아주 빠른 시간 동안 빠지는 곳 하나 없이 구석구석 풀어진다.


나는 운다.

나는 운다.

나는 운다.

손목을 바라본다.


어젯밤 슬픔을 이기지 못해 그린 붉은 줄 하나가 보인다.


다시 운다.


약국에서 받아와 침대에 던져둔 약봉지가 보인다.

나는 조용히 약봉지로 다가간다.

손에 들고, 봉지를 찢는다.

약 봉투의 찌익 하는 비명이 들린다. 나의 비명도 이와 같으리라.


약 통이 탁하며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열린다. 이제는 낼 수 없는 소리겠지.

한 손에 다 담기지 않아 두 손에 고이 담는다.

눈을 감고, 하늘을, 아니 그 하늘을 가리고 있는 천장을 바라본다.


몇 시간 전 병원을 가려 집 밖에 나왔을 때 날씨가 어땠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잠시 망설인다. 돌이킬 수 없겠지.


숫자를 센다. 의미 없는, 의미가 없어질 숫자.

하나, 둘, 여섯, 여덟. 의미 없는 숫자의 나열로 바뀐다.


털어 넣는다. 한 알도 남기지 않으리라는 그나마의 의지를 담고 입에 욱여넣는다.

그냥 삼켜지지가 않아 물 두 컵은 마셨으리라. 


조용히 눕는다. 문은 잠갔겠지?

조용히 눕는다. 시간을 센다. 언제 잠들까.

잠시 생각한다. 어쩌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침대에 이 생각을 하며 누워있을까.


어쩌다 나의 삶은 이렇게 망가졌을까.

어쩌다 나의 삶은 행복보다는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을까.

생각을 갈무리하기도 전에. 나는 잠들었다.

.

.

.

.

똑같은 침대에서 눈을 떴다.

날짜를 확인하니, 3일이 흘러있다.

.

이제부터가 이야기의 시작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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