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의 마지막 가는 길, 그곳에서 만난 남자
2018년 3월 27일
오늘 호스피스에서 한 중국인 부부를 만났다. 아내는 metastatic colon cancer 때문에 뇌까지 종양이 퍼진 상태라, 급격히 decline 하셔서 며칠 전에 입원하셨다. 부부는 캐나다로 이민 오셔서 영어로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아들이 있지만 그도 일하고 자녀가 있는 가장이라 어머니 곁을 항상 지키지는 못한다.
아내는 의식이 희미해지며 더 이상 통역을 통해서도 대화가 안되어 어느새 말로는 소통이 전혀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므로 난 간호사로써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들으며, 불편한 곳은 없는지, pain medication은 충분히 드리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assess를 해야 했다.
우리와 함께 그녀 곁을 지키며 돌봐드리는 남편분은 왠지 모르게 우리 아빠를 떠오르게 하였다. 체구도 우리 아빠랑 비슷하시고, 우리 아빠처럼 이민 오셔서 바쁘게 사신 그 고생이 얼굴에 훤했다. 난 ‘우리 아빠가 이 자리에 계셨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좀 더 신경 써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손으로 이야기하며 짧고 단순한 영어로 그와 조금이라도 소통하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조금씩 바뀌어 가는 아내의 숨소리, 피부색... 이 모두가 남편분에게는 새롭고 낯선 경험이었고, 게다가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 와서 한평생을 같이 한 아내를 떠나보낸다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 보였다.
한참을 같이 있었다. 침묵이 흘러도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리곤 아무리 내가 영어로 떠들어 되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싶어서, 난 그냥 그를 안아드렸다. 꽉. 내가 하고 싶는 말들, 차마 우리 부모님이 생각나서 못하는 말들을 모두 모아서 포옹으로 인사를 드렸다.
뜻밖에도 그는 나를 더 세게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내 귀에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은 가는 목소리로 “thank you, thank you, thank you”를 반복하였다.
아무리 내가 영어로 떠들어 되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싶어서, 난 그냥 그를 안아드렸다. 꽉.
이건 간호사라서 가능한 일이다.이렇게 1분 1초가 간절하고 소중한 시간에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나 서로 말없이 위로해 주고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이 세상엔 이런 직업은 둘도 없는 것 같다. 난 그저 이 가족의 삶에 딱 한 부분에 등장했을 뿐인데, 이때 내가 그들의 가족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한다는 건 어마어마한 책임감이 함께 하면서도 굉장한 영광이라 느껴졌다.
함께 해도 누군가를 보낸다는 건 힘든 일이지만, 다른 나라에 와서 떠나보낸 다는 건 더욱더 외롭고 힘겨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간호사인 나의 손길과 정성이 한 남자의 아내, 그리고 한 아들의 어머니가 떠나시는 길이 조금이나마 덜 힘들게 도와드렸다면 더 큰 바램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