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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hee lee Apr 01. 2019

전쟁터를 찾아 다니는 기자,마리 콜빈

종군기자 마리 콜빈의 기자 정신

공중보건, 보건정책에 관심이 늘어나면서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재난과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겪는 고충에 대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예전엔 '건강', '의료', '간호'를 떠올릴 땐 그저 질병과 치료법, 병원 같은 의료 시설을 생각했었다.

건강을 해치는 습관들로 인해 질병이 생기고, 그렇지 않다면 좋지 않은 운 때문에 아프다고 생각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간호사로써 경력이 쌓이고 시야가 넓어지자 점점 내가 간호하는 환자들의 건강 상태는 단순한 생활 습관이나 운 때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질병과 아무 연관 없는 사회복지의 여러 분야들이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걸 배웠다. 영어로는 social determinants of health라고 한다.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사람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에 필요한 사회적인 요인들은 크게 11개로 나누어진다:

Income and social status

Employment and working conditions

Education and literacy

Childhood experiences

Physical environments

Social supports and coping skills

Healthy behaviours

Access to health services

Biology and genetic endowment

Gender

Culture

캐나다 같은 선진국에서는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대부분 좋고, 의료 시설에 쉽게 찾아갈 수 있고, 복지가 잘 되어 있어 취업이 힘들더라도 당장 고용보험을 받아서라도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된다. 무엇보다 안전함을 중요히 여기고 자랑스러워하는 캐나다는 전쟁이나 총기사건에서 거리가 멀다. 길을 걷다가 누구의 총에 맞아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러니 난 많은 면에서 캐나다는 웬만해서는 안전하게 잘 먹고살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뉴스를 틀면 우리의 현실은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쉽게 느낄 수 있다. 눈 앞에 펼쳐진 화면 속으로 폭탄이 터지고 사람들이 총을 피해 도망가는 안타까운 장면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처음 보면 충격적이지만, 이것도 하루 이틀 비슷한 뉴스를 접하게 되면 이 마저도 익숙해져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버리기 쉽다.


난 이런 뉴스에 관심을 안 두고 있다가 어느 때인가부터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남미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의 난민들의 경험을 글로 읽고 귀로 들으며 이들이 겪는 지옥 같은 현실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흔한 뉴스 기사처럼 그저 일어난 일들의 기록이 아닌, 한 사람의 경험과 느낌을 담아낸 글들을 읽을 땐 훨씬 와 닿고, 꼭 내 이웃이 겪는 일인 것 마냥 가슴이 아렸다.


이렇게 피난 가는 난민들과 그들이 목숨 걸고 벗어나려는 전쟁이라는 현실을 뉴스 기사로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알리려고 노력한 한 종군기자가 있다. 그는 다른 기자들과 달리 뉴스 기사를 쓸 때면 1인칭 시점으로 썼고, 전쟁 속에 살고 있는 시민들을 찾아가 인터뷰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알렸다. 전쟁으로 인한 정치적, 경제적인 이슈들보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어주는 story-teller가 되었던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 콜빈.


뉴욕 롱아일랜드의 Oyster Bay 지역에서 태어나 예일대 인류학을 공부했다.

UPI에서 기자로 일을 하다 1985년부터 영국의 Sunday Times 옮겨 foreign affairs correspondent으로 일하며, 전 세계 분쟁지역을 돌아다녔다.


걸프 전쟁

체첸 분쟁

코소보 내전

스리랑카 내전.


그 외에도 동티모르, 아프리카.


전쟁 지역이라고 하면 누구보다 빨리 자신의 몸을 던진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는 2001년 스리랑카에서 타밀 반군 지역에서 정부 지역으로 넘어오면서 정부군 총탄에 맞아 왼쪽 눈이 실명되었다. 그러면서도 검은 안대 (곧 그녀의 시그니쳐 룩이 되어버린)를 착용하고 세계의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계속하여 뛰어들었다.

난 도대체 그녀가 왜 이렇게 위험한 곳만 찾아다니며 글을 쓸까 궁금했다.


 전쟁 보도는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그녀가 한 말이다.


전쟁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목소리가 크지 않다. 그들을 들어주는 사람도 없다.

그러면서도 숨다가 총에 맞아 죽는 건 일반인들이고

아이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려 나갔다가 시신이 되어 돌아오는 사람들도

누군가의 아버지, 아들, 딸, 친구다.


전쟁에 모든 걸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장 귀 기울여 들어준 사람이 마리 콜빈이다.

같이 슬퍼하고 아파하며 만나는 시민들을 알아가고 인연을 맺었다.


그러던 2012년 2월,

기자들의 입국을 거부한 시리아 정부의 눈을 피해

몰래 홈스에서 시리아 시민들과 함께 지내며 취재를 하다

정부군 포격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그녀는 56세였다.


30년 동안 전 세계를 다니며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어준 여자.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 안전을 되찾기 위해 민간인들과 함께 진실을 밝혀내는 종군기자.

전쟁이라는 혼돈 속에서도 그녀는 사람들이 언젠가 다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를 돌려받기 위한 엄청난 노력을 했다.


마리의 생전 마지막 사진

다음은 2010년 자신을 전쟁터로 이끈 열정에 대한 연설문이다:


여왕 폐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21세기의 전쟁을 보도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언론인들과 그 조력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모임에서 여러분께 연설할 기회를 갖게 돼 영광입니다. 저는 제 직업 경력의 대부분을 종군기자로 보냈습니다. 언제나 어려운 소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선에서의 객관적 보도에 대한 필요는 더욱 더 강렬했습니다.

전쟁을 취재한다는 것은 혼돈, 파괴, 죽음으로 찢겨진 장소에 가 사실을 증명하려 시도하는 것입니다. 이는 군대와 부족(部族), 테러리스트들이 충돌할 때 빚어지는 프로파간다(선전)의 모래폭풍 속에서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입니다. 물론 위험한 일입니다. 스스로에게도 위험할 뿐만 아니라 주변 동료들까지 위험에 빠트리게 됩니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 국방부가 제공하는 영상 자료들에도 불구하고, 또 '스마트 폭탄'과 '제한적 공습'을 묘사하는 온갖 '살균'된 언어들에도 불구하고 전장의 모습은 수백 년 동안 거의 동일한 상태입니다. 폭발로 파여진 구덩이들, 불탄 집들, 무수한 시체들. 여성들은 자신의 아이와 남편을 위해 울고 있고 남성들도 아내와 어머니, 자식을 위해 웁니다.

우리의 사명(mission)은 이런 전쟁의 참혹한 모습을 편견 없이 정확하게 보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감당해야 할 위험의 수준이 기사의 가치에 비춰 합당한가? 용기란 무엇이며, 또 무엇이 만용인가?

전쟁을 보도하는 언론인들은 어깨에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으며 어려운 선택과 직면하게 됩니다. 때때로 그들은 가장 고귀한 것을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취재 중 사망한 언론인과 지원 스태프 49명을 기립니다. 우리는 또한 상처입고, 불구가 되고, 납치돼 몇 달씩이나 인질로 잡히기도 한 전 세계의 언론인들을 기억합니다. 종군기자가 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전쟁터의 언론인들은 제1의 타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리랑카 내전에서 매복 공격으로 인해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저는 기자의 접근이 금지된 북부 타밀 지역에 갔고 아직 보도되지 않았던 대재앙과도 같은 인권 유린 사태를 발견했습니다. 제가 경계선을 다시 몰래 넘어올 때, 한 병사가 저에게 유탄을 발사했고 파편이 제 얼굴과 가슴에 박혔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지난주 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친구인 사진가 조앙 실바와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습니다. 우리는 무력이 횡행하는 아프간의 마을과 들에서 사람들이 느껴야만 하는 공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프간에서는 한 발짝을 내딛을 때마다 폭발에 대비해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안 되며 이는 악몽의 소재이기도 합니다. 저와 커피를 마신 이틀 후, 조앙은 지뢰를 밟아 무릎 아래 두 다리를 잃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스스로에게 물어 왔거나 지금 묻고 있을 겁니다. 그게 목숨을 걸 만한, 비통한 일과 손실을 감당할 만한 일인가? 그렇게 해서 무엇이 달라지나? 저 또한 부상당했을 때 이런 질문과 마주했습니다. 당시 한 신문은 머리기사 제목을 '마리 콜빈, 이번에는 너무 멀리 나간 걸까?' 이렇게 달았더군요.

그러나 당시에건 지금에건 저의 대답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성당에는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이런 경험들의 대가를 견뎌내야 했던 친구와 동료, 가족들이 와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또한 막대한 재정적, 감정적 대가에도 불구하고 언론사들이 특파원들을 계속 전쟁터에 보내 기사를 쓰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멀리 떨어진 전쟁터로 가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도합니다. 대중은 우리 정부와 우리 군대가 우리의 이름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알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권력에 대해 진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의 거친 첫모습을 고국에 보냅니다. 우리는 전쟁의 참상과 특히 민간인들에게 일어난 잔혹한 행위들을 폭로함으로써 차이를 만들 수 있고, 만들어 왔습니다.

우리 직업의 역사는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입니다. 근대 이후의 첫 종군기자는 <더타임스>의 윌리엄 하워드 러셀입니다. 그는 영국이 주도한 연합군이 러시아군의 침입에 맞서 싸운 크림전쟁[1853∼1856]을 취재했습니다.

군인들로부터 '빌리 러셀'이라고 불린 그는 부적절한 장비 상태와 부상자에 대한 명예롭지 못한 처우, 특히 그들이 본국에 송환됐을 때의 처우, '경기병대의 돌격'으로 유명한 영국군의 멍청한 행위가 최고 지휘부의 무능함으로 인한 것임을 밝혀 본국에서 대중들의 분노를 크게 폭발시켰습니다. 그의 보도는 전쟁 보도에서의 일대 약진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전쟁은 초급 장교들이 언론사에 파견돼 불러주는 방식으로 보도됐습니다.

빌리 러셀은 열린 마음과 망원경, 수첩, 그리고 브랜디 한 병을 가지고 전장으로 갔습니다. 저는 처음 전쟁터로 갈 때, 타자기를 들고 갔고 텔렉스 타전법을 배웠습니다. 최전선에서부터 전화나 텔렉스 기계를 쓰기까지는 며칠이 걸렸습니다. 전쟁 보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크게 변화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위성전화와 노트북 컴퓨터, 비디오 카메라와 방탄조끼를 들고 전쟁터로 갑니다. 아프간 서남부에서도 위성전화기 버튼만 누르면 기사는 송고됩니다.

매일 24시간 뉴스가 흘러나오고 블로그와 트위터 메시지가 나오는 시대에 우리 언론인들은 있는 장소가 어디든지 항상 '대기중'입니다. 하지만 전쟁 보도는 여전히 동일한 정도로 중요합니다. 누군가는 현장에 가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봐야 합니다. 사람들이 총에 맞는 현장, 누군가가 당신에게 총을 쏘는 현장에 가지 않고는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어려움은, 정부가 됐든 군인들이 됐든 길거리의 사람들이 됐든, 사람들이 우리가 보낸 뉴스가 지면이나 웹사이트, TV화면에 나올 때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것을 믿을 만큼 인간성에 대한 충분한 신념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차이를 만들고 있음을 믿기에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동일한 위험에 처하고 실제로 많이 죽기도 한 운전기사와 통역, 현지 코디네이터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차이를 만들 수도, 일을 시작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최전선의 언론인들 못지않게 진실을 추구하다가 숨진 그들을 기립니다. 그들은 살아남은 우리가 가진 것과 같은 신념을 지켰습니다. 우리의 일이 계속돼야 한다는 신념 말입니다.


마리 콜빈에 대해 알게된 책, In Extremis: The Life and Death of the War Correspondent Marie Col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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