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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hee lee Mar 27. 2019

결핵 검사에서 깨달은 캐나다 의료 시스템의 현실

90년대 초반에 한국에서 태어나 아기 때 맞은 BCG 주사가 날 2-3년에 한 번씩 애가 마르게 한다. BCG 백신은 결핵 예방 백신이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국가결핵관리사업의 일환으로 보건소에서 BCG 접중을 시행하고 있는데, 그와 반면에 서유럽과 북아메리카는 결핵을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로 여기지 않으므로 BCG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국을 포함한 다른 아시안 나라에서 이민/유학을 온 사람들은 TB test을 할 때마다, 진정 결핵이 걸리지 않았어도 결과가 'false positive'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캐나다에서 healthcare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결핵 검사는 hepatitis, MMR과 같이 필요한 예방접종이 되어있는 상태인지 꼭 받아야 하는 검사이다.


TB skin test를 하려면 가정의 클리닉에 적어도 두 번 들려야 한다. 첫날에는 팔에 간호사가 주사를 놓고, 24-48시간 후에 다시 찾아와 주사를 받은 위치에 일정한 크기의 융기가 생겼는지 체크를 받는다. 5-10mm 이상인 반응을 보이면 양성(positive)이고, 반응이 없으면 음성 (negative)이다.


나는 검사를 받을 때마다 positive다.


그렇게 되면 이어서 chest X-ray를 받아야 한다. 아무 증상이 없어도 폐에 TB nodule이 없는지 엑스레이를 통해 confirm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엑스레이는 referral 서류를 가지고 근처 병원으로 가면 된다.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가서 X-ray를 받고 나서 "all clear"이면 그 서류를 가정의에게서 받은 후 요구하는 직장이나 학교에 제출하면 된다. 합해서 TB skin test+ x-ray 검사를 받는 시간은 아마 적어도 1주일은 걸릴 거다.


문제는 TB skin test는 4개월 이내에 받은 검사여야 하고, 엑스레이는 지난 1년 이내에 받아야 한다.


나는 간호학과 학생으로 대학교 입학했을 무렵에 해야 했고, 졸업 후 신규로 병원 입사했을 때 다시 해야 했고 그리고 이직한 병원으로 옮겼을 때 한번 더 해야 했다.

마지막으로는 2017년도에 검사를 받았는데, 최근에 호스피스로 옮기게 되면서 또 한 번 검사 결과를 제출하라는 요청을 받아서 어제는 패밀리 닥터 오피스를 들렸다.


이걸 또 걸쳐야 한다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벌써 약간의 짜증이 나있었는데,

하필이면 월요일에 클리닉을 들린 건 큰 실수였던 게 아닌가 싶었다 (주말이 지난 월요일에는 클리닉이 항상 붐빈다).

내 담당 가정의는 휴가를 내고 클리닉에 없어서 그를 대신에서 다른 의사가 커버를 해주고 있었다.

근무할 때 필요한 검사라 빨리 해달라고 해서 그나마 일주일 안에 어포인트먼트를 잡았는데,

문제는 어제 Nurse Practitioner까지 sick-call로 클리닉에 의료진이 2명이나 모자란 상태였다.


오후 3:15분으로 약속된 내 appointment는 3:45분.. 아니.. 4시.. 아니 4:30까지.. 의사 선생님의 머리카락 조차 보이질 않았다.


진료실에서 졸고 있던 중 문을 격하게 열고 들어온 한 의사가 날 반겼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은 한마디 없었고

바로 내가 왜 클리닉을 방문했는지 물어보기 시작하였다.


한 시간 반을 기다려서 만난 의사는

빠른 영어로 나와 대화를 하며 우리의 만남은 10분 안에 끝이 났다.

결론은 TB test를 다시 받아야 하지만, 앞으로 쭉 의료계에서 일을 할 나를 생각해줘 서서 이렇게 자주 결핵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급하게 들어온 것처럼 똑같이 나가기 전에  TB clinic

referral를 하겠다고 약속하고 그는 나가 버렸다.


뭔가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클리닉을 방문했을 때는 결핵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것 때문에 irritable 했는데 한 시간 반을 기다리는데 시간 낭비하고 나니 오히려 그저 의료진이 모자라고 웨이팅이 긴 캐나다 의료 시스템이 더 미워졌다.


그리고 최근에 뉴스에서 본 기사가 떠 올랐다.


온타리오 Brantford라는 도시에 거주하는 한 여성이 medically complex 한 아들을 데리고 패밀리 닥터를 찾았다. 클리닉에 들어선 순간 문 앞에 붙여진 노트에는 환자당 딱 한 개의 건강 이슈에 대해 의사와 이야기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다른 문제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appointment 예약을 따로 하라고 적혀 있었다.


한두 개의 이슈에서 끝나지 않는 그의 아들을 생각한 그는 그 글을 읽고 충격받아서 트위터에 자신의 심정과 노트가 적힌 사진을 찍어 올렸다. 트위터에서의 반응은 뜨거웠다.


캐나다 Brantford의 한 가정의 클리닉에 붙어 있던 노트. 2019/03/14

시간에 쫓겨 근무하는 캐나다의 가정의 들은 환자들이 가지고 오는 길고 긴 'list of

issues' 때문에 힘들어하는 건 사실이다. 어느 환자가 꼽아서 딱 한 가지 대해 진료를 받을 수 있겠는가.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질병을 앓고 있다. 하지만 20분 이내 진료를 끝내야 하루의 스케줄이 막히지 않는 의사들은 갈수록 '빨리빨리' 정신을 갖고 일을 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의료시스템은 환자를 'person'으로 보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medical issue로 보기 시작하였다.


Heart failure patient.

Cancer patient.

Mental health patient.


하지만 cancer patient가 mental health 문제도 있을 수도 있고

mental health patient가 heart failure로 고생할 수도 있다.


각각 다른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때로는 복잡한 질병을 가진 환자들 위해 어떻게 의사들이 한 가지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영어로 의사소통이 충분히 가능한 나,

20대이고 건강에 아무 이상 없는 나,

패밀리 닥터를 봐야 하는 이유는 직장에서 요구하는 검사 결과를 제출하는 것뿐인

나로서


답답한 느낌이 치고 올라온 어제의 경험은

진정 아픈 환자들과 그들을 서포트하는 보호자들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혹은 나중에 의료진의 도움이 필요한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면

영어가 불편하신데 과연 10-20분 이내에 정확한 진료를 받으실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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