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랑이

by 여름나무


문득, 봄 아지랑이가 보고 싶어 진다. 한낮의 시간을 일터에 갇혀 지내다 보니 언제 봄 아지랑이를 보았는지. 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찌하든 소란스러운 봄이 조금 가라앉으면, 오랜 시간 미뤄두었던 사람들도 볼 겸, 봄 아지랑이를 보러 한 번쯤 고향에 다녀와야 하지 않나 생각이 되어지는 날이다.


뉴스를 보면 년 일, 코로나 19로 인한 사망자의 숫자가 믿기 힘들 정도로 겁 없이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묻어야 할, 참아내기 힘든 고통을 겪어내야 되는 일이지만, 동시에 너무 많은 이의 죽음이기에 현실감각 없이, 달리 슬픔을 나누지도, 위로하지도 못한 채 오늘을 보내고 만다.


봄만큼 그리움이 애틋한 계절이 있을까?

겨우내 경직됐던 것들이 유연 해지며 단단히 담아두었던 마음마저 쏟아지는 계절이 봄이다. 그럼에도 이제 봄은 어떤 이에겐 더 이상 꽃피는 계절이 아닌, 그리움으로 아린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런 세상사에 상관없이, 유년의 입맛이 계속해 나를 어느 봄날로 불러들이고 있다. 허기를 메우기 위해 겨우 쌀 한 줌 넣고 만들어 먹던 쑥 개떡이 잠결에도 먹고 싶어 지는 것이다. 정말 값만 치르면 있을 거 다 있는 그런 세상에, 봄볕 내리쬐는 쪽마루에 기대앉아 먹던 그놈의 쑥 개떡이 왜 그리 먹고 싶어 지는지? 어디 그뿐일까만, 마을 입구에 늘어진 아카시아 꽃잎을, 소 풀 뜯어먹듯이 씹어 먹던 기억은 여전히 입안에 풀 맛의 푸른 침을 괴게 만들고 있다.


지금이야 그때만큼 배가 고프지 않으니 무엇을 먹어도 어디 그 맛이 날까 싶지만, 그래도 근사치의 입맛이라도 찾아보게 되는 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보고픈 마음이 그러하기 때문 일 것이다.


봄이 올 때마다 고향에 사촌에 팔촌이라도 누군가 남아있었음 하는 아쉬움이 커진다. 공부를 위해서, 또는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난 고향이었음 그나마 좋으련만, 얼마의 땅으론 먹고살기 힘들어, 큰아버지는 늦은 나이에 공장의 경비로, 내 가족은 바람난 아버지에 지쳐 가출한 엄마의 삶터로, 자연스럽게 모여들어 서울살이를 시작하며 고향을 잃게 되었다. 그러니 봄이 오면 제일 먼저 쑥을 뜯어 개떡을 해 들고 찾아오는 이 있어 서울구경도, 별난 것도 사주며 함께 웃을 그 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것이, 참 아쉬움 중에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다.


시국이 이리 어수선함에도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러야 한다. 예전 같으면 사람들로 시끌벅적하였을 거리가 코로나 19 탓에 텅 비었다. 어쩌다 확성기를 단 차량만이 잠든 거리를 깨울 뿐. 코로나 19는 선거의 실태마저 바꾸어 버린 것이다.


사실 국민의 수준이 정부의 수준을 결정한다지만, 난 겨우 한 표 행사를 하면 그만인 사람이다. 참주정의 자유다, 중우정치다, 파이데이아에도 무관심하다. 선거 때마다 누구나 ‘우리의 충견이 되겠다 말 하지만 알고 보면 대부분이 탐욕스러운 늑대다’에 은근히 동의하며 뒤로 물러나 외면하던 입장이다. 그래 나름 편하자고 지구인이란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러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로 자국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비행기를 띄우는 정부를 보고, 단순하게도 내가 그 입장이 될 수도 있겠다며 국가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것이 전부인 것이다.


오히려 선거철이 되면 마을회관 앞에 차려졌던 잔치음식이 먹고 싶어 지는 게 나다.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선거가 있던 해의 고향마을은 언제나 잔칫날이 되었던 기억이 있다. 평소 보이지 않던 내 아버지는 선거철이면 무슨 당에 운동원이 되어 얼굴을 비췄다. 그리곤 밤낮으로 마을 회관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전을 곁들여, 누른 돼지머리에 막걸리를 대접하며 사람들을 꾀어가는 일을 하였다.


선거 당일 어둠이 내려서야, 아버지와 공짜 술에 모인 마을 사람은 흩어졌다. 그리고 공터엔 내가 남았다. 그런 난 아직도 정의보단 선거의 그런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누른 돼지머리를 더 좋아한다.


매년 봄이면 고향을 그리워하며 찾지 못했다. 민들레 꽃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향마을의 어느 들판에 내려앉아 피었으면 좋으련만, 도시의 붉은빛 도는 어느 담벼락 밑으로 날아와 뿌리를 두게 된 것이다.


그리움이 일 때면 고향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그들이야 도시의 문화생활이 부럽다 하지만 그건 갈증을 더욱 불러일으키는 갈망이 될 뿐, 개나리 담장을 한 그런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일하며 살아가는 것만큼, 편안한 잠을 허락하지 않는 게 도시의 생활이었다.


지금 나는 홀씨를 날려 보내야 할 민들레가 되어있다. 친구든 뭐든, 처음부터 도시에 생활권을 둔 내 아이들은 엄마처럼 그리워할 고향이 없다. 그래 삶에 조금 지쳐갈 때, 마음이라도 잠시 돌아가 쉬었다 올 수 있는 곳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다. 그리워할 고향이 있는 나로선 그것 또한 엄마로서 해주지 못한 아쉬움 중의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있는 곳, 그곳이 고향이 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래저래 올해의 봄은 마음에도 생살을 찢어내어 새순을 돋게 하려나보다. 내려 쌓인 꽃잎마저 바람은 휘몰아 내친다. 봄이 가기 전 이 어수선한 사태가 마무리되어 여름을 빛나게 맞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커피 잔을 들고 창문 너머로 고향을 그리워할 것이 아니라, 기차를 타고 잠시 따뜻한 고향 땅을 밟고 올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변한 나만큼이나 변했을 고향 땅이 무서워 고향을 찾지 못하는 것은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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