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by 여름나무


이른 아침부터 카톡이 온다.

흔한 광고 메시지 중 하나려니 했더니 뜻밖에, 부고다.


내일이나 천천히 가봐야겠단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안내 글의 끝자락엔 당연한 듯 밑줄 그어진 파란색의 계좌번호가 인사를 한다.


순간, 민낯을 들킨 듯 불편해졌다. 마땅히 찾아뵈어야 할 자리였지만 바쁘면 계좌이체라도 해주라는 듯한 당연한 요구와 잠시 오고 가는 시간을 계산하며 귀찮겠다, 생각한 속마음을 들켜버린 듯해서다.


여한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고인이 평안하게 떠나시기를 바라는, 소리 없는 인사를 대신한다.


타인의 죽음 앞에서야

어떤 삶을 살아야? 아니 어떻게 살다가야 아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누구나 알고 있듯이 가장 단순하고 정확한 대답은 행복하게 살면 괜찮다 이다. 하지만 행복한 삶은 매 순간 쉽지 않았고 인생 절반쯤, 불행에 내줘야 했다.


그렇다면 ‘저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파란 하늘이 있고 감히 상상하는 꿈들이 실현되는 곳으로 찾아가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슬프게도 유토피아는 그 말 그대로 어디에도 없는, 그게 우리가 속한 세상이다.


‘절망의 나라에(의) 행복한 젊은이들’의 저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되었을 때 자신의 처지에 만족한다' 하였다.


기대를 저 버린 것들에 대한 실망이 얼마나 큰 분노와 절망을 가져다주는지 살아오며 충분히 경험해 보았던 일이다. 그래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겠다며 기대를 버리는 일이 일상의 방어막이 된 지 오래다.


그러니 그의 말 그대로 희망을 줄여 있는 것에 만족할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도 된다.


세상의 일정 부분은 이미,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에서 ‘이의수’의 말처럼 저축을 해도 모이지 않는 돈과,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직장, 감당하기 어려운 자녀 교육비, 각종 스트레스와 질병 등으로 아파도 아파 누울 수 없는, 혹사하며 열심히 일한 결과가 후유증으로 몸져눕는 개미 같은 중장년과,


적은 월급으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취미 생활을 하고, 맛 집을 찾아다니며 여행을 하고, 집과 좋은 차는 없어도 즐겁게 사는 베짱이 같은 젊은 친구가 유명가수가 될 수 있는, 변해버린 동화처럼 시대도 환경도 변해버렸는지 모른다.


가끔 의지라는 것이 있을까 생각을 한다. 줄에 매달린 인형처럼 연출자의 짜인 각본에 맞춰 움직이기만 하는, 종종 그런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하루의 시작이 그렇다. 눈을 뜨고부터 뭔가를 해야 된다는 압박감에 눌려 하루를 시작하지만, 허탈한 밤을 맞이해 또다시 똑같은 내일을 위해 잠드는,

나의 삶에 점점 내가 사라져 가는 기분이다.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역사 교수가 꿈이었으나 결혼으로 인해 평생 자동차 정비공으로 산 남자가 역시 암으로 죽음을 앞둔 잘 나가는 그룹 회장과 함께 한 병실을 사용하며 뒤늦게, 대학 1학년 때 철학과 교수가 작성해보라는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마지막 생을 정리하는 여행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삶의 기쁨을 찾았나?’

‘남에게도 기쁨을 주었나?’

나는, 아직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한다.


제목에 끌려 집어 든 ‘개인주의자 선언’의 저자 ‘문유석’은 인간 혐오증이 있다 말하면서도 재미있어 여기저기 글을 쓴다 했다. 어쭙잖은 생각과 고민을 담은 글을 쓰는 일은 자신에게 질문이 되었고, 스스로의 생각을 관찰하게 되어 큰 재미를 느낀다 하였다.


공감이 되었다. 궁상스럽긴 하지만 살아온 날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을 글로 적어보며 남은 날에 대한 변화를 꿈꾸는 일이 내겐 재미진 일이 되기도 하였다.


그의 말 맞다나 SNS는 참 묘한 매체다. 독백체의 글을 써도 사실 그 글은 독자들에게 건네는 말이 된다.


그의 말에 나의 말을 더한다면 그 글이 사람이 그리운 나에겐 독자를 친한 이웃으로 만들어주기도, 또는 메아리가 되어 생각을 다시 하게도 하였다. 덤으로 모난 부분이나 모자란 부분을 조금씩 수정해나가는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버킷리스트 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바라는 행복은 그렇다.


바다가 있고 뒷산이 있는 소읍 정도에서 남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너무 심심하지 않게 드문드문 외지인도 여행 삼아 다녀가는 곳, 그리고 너무 외롭지 않게 내 아이들이 아주 가끔 소중한 사람들과 쉼 삼아 다녀 갔으면 하는 곳, 그런 곳에서 정신 줄 놓지 않고 살다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욕심을 좀 더 부린다면 좋은 이웃이 있어 아무 때고 부담 없이 그들에게 자장면이라도 사줄 수 있는 조금에 여유가 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리 살고 있기도 한 것을 무늬만 도시인인 나는 꿈으로 돌려놓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오늘을 보다 알차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어느 날부터 모든 게 시큰둥해져 있었다. 먹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앞섰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않으면서 겨우 견뎌내는 듯한, 그러다 도시를 떠나면 그때부터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너무 쉽게 오늘을 내주었나 보다.


언제나 보장된 내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바보 같은 일이다.


나의 부고가 어느 날 이른 아침, 이렇게 보내질지도 모르는데,


사뭇 다른,

보는 주변인까지 즐겁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별다를 것이 없는 그녀는 언제나 흥을 껴안고 산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런 그녀도 사는 재미를 잃어버려 많이 아파했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도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 난 뭘 한 건지?

진작, 날 떠난 재미를 찾아 멱살을 잡고서라도 끌고 데려 왔어야 했다.


교통카드를 챙겨야겠다. 떠난 재미를 찾아 매달리다 안되면 길에 드러누워 생 떼를 쓰기라도 해야 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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