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희망)

by 여름나무

주책스럽다. 이 나이에 두 번은 할게 못된다 생각하던 결혼이 하고 싶어 진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순백의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행복한 신부처럼 환하게 웃어 보고 싶어 졌다.


어쩔 수 없이 주어진 두 달 간의 백수생활은 허기가 져서야 겨우 일어나, 살아남은 어항 속의 마지막 물고기처럼 빈집을 유영하는 게 전부다. 눈을 뜨니 오늘도 벌써 열두 시를 넘어섰다. 혼자 먹자고 따로 상차림 하는 것도 귀찮아 큰 접시에 밥과 반찬을 담아 티비를 틀며 식사를 한다.


무심코 지나던 화면에 미혼부로 살았던 모가수가, 다 키운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결혼식을 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 주제넘게 괜한, 혼자서 애를 키우며 얼마나 애가 타고 남모르게 울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자, 불확실한 그에 아픔이 슬픔이 되어 눈물로 흐른다. 정말이지 환하게 웃는 그가 쭉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빌어진다.


그렇게 좋았던 적이 있었을까? 살면서 정말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만큼 빛나던 시절은 없었을 것이다. 밖으로만 돌던 아버지와 엄마의 가출, 가난한 할머니의 손에 성장한 나는 항상 모든 것에서 결핍을 느끼고 허기 가졌다. 그러하기에 타인에게 내어줄 틈은 없었다. 그랬던 내게 곁을 내어주고 일상의 행복을 알게 한 것이 남편이었다.


언제나 그와 함께하고 싶어 결혼을 했다. 그와의 만남 이후 다시 만나기까지 그 짧은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이었던가? 한대뿐인 전화기가 부모님 방에 있어 통화하기도 쉽지 않았던 시절, 지금처럼 어느 때고 목소리를 듣기는 커녕 문자를 주고받을 수도 없었다. 그러 하기에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길 입구부터 벌써 그가 보고 싶어 졌다.


누구나 다 그러하듯이 결혼생활은 평화롭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몇 날을 웃으면 슬픈 날도 있었다. 밥벌이에 지쳐 상처를 내기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라서 상처를 받게도 되었다. 그러니 결혼을 잘했다 잘못했다 정의(定擬)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랑한 날들이 많아 행복했고 무엇보다 소중한 자녀를 만날 수 있어 축복임은 분명하다.


산다는 것에 겁 없던,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철이없던 결혼생활엔 서러움이 많았다. 욕심이 지나쳤던 시모 와일 손이 필요한 친정의 조건으로 남편의 처가살이는 시작되었고, 신혼의 달콤함도 모른 채 난, 친정과 시댁, 남편의 눈치를 보며 힘겨운 친정살이를 해야만 했었다. 너무 울어 소리가 나오지 않아 물고기 마냥 입만 뻥끗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도 되돌아보면 행복했고 미소가 저절로 피어나는 때가 바로 그때이다. 그 시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또 그리 어렵게 살았을 것이다.


긴장이 풀리고 숨을 돌리자 무미건조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승리자도 패배자도 없는, 남은 전우애 마저 사라질 때 전쟁터엔 휴전선이 그어졌다. 탈출구가 필요해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그의 길을 가고 없다.

겨울이 시작되었다. 두꺼운 얼음 아래 숨어 매일 같은 날을 살아내고 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애써 무뎌져 야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단단한 얼음을 녹이고 있었다. 얼음 층은 나를 가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힘을 주기 위해 감싸고 봄을 기다렸던 것이다.


다시 초록빛이 올라오고 있었다. 목욕을 다녀오며 미장원에 들려야겠다. 파마머리 질끈 묶고 아직찾아오지 않은 날들로 가봐야겠다. 이젠 짙은 열정은 가질 수없다 해도 수채화처럼 묽게 남은 인생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아는가? 언젠가는 다시 신부가 되어 환하게 웃는 날을 만날 지도, 꼭 그러하지 않아도 남은 날을 신부처럼 곱고 화사하게 웃으며 살아가면 될 것이다. 겨울은 가고 있다. 그러니 꽃피기 좋은 계절이 남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