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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Dec 03. 2020

겨울 강가

겨울 강가로 가면 물억새 흔들거리는 바람에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에 잔눈 발이라도 내려준다면 둔치에 핀 마른 꽃처럼 마음 들떠, 천천히 젖어들게 될 것이다.    


무수히 많은 회색의 점들이 뱅글뱅글 도는, 눈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있다. 까마득하게 먼 곳으로 빨려 들 것 같은 어지럼증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던, 혼돈에 순간이다.    


마음에도 혼돈이 눈처럼 내리는 날이 있다. 쉽게 마음이 잡히지 않는 날이다. 그런 날엔 어느 강가로 가 물속을 들여다 보 듯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 진다.    


찬 바람 부는 겨울 강가로 가면, 어쩌면 운 좋게 날갯짓하며 강 끝을 날아오르는 물새 몇 마리 보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온전하지 않은 기억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게임처럼 즐겼던 투사검사의 하나였다 생각이 된다. 두 눈을 감고 가만히 숨을 다독이며 새를 떠올리는 것이다. 어떤 새였고,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무엇을 하고 싶은지, 용하게도 상대와 소통의 통로가 되었다.    


지워지지 않은 기억에 그녀는, 사방이 막힌 방 안에서 커다란 검은 새가 되어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했었다. 어느 아이는 전봇대에 앉은 참새가 되어 다가가지 못하는 새들의 무리를 바라만 보았고, 어떤 친구는 자유롭게 세상을 떠도는 중이라 했다. 그러니 난 지금 겨울 강가에 물새가 되고 싶은지 모른다.    


겨울 강가로 가면 차디찬 강물에 노니는 물 새 몇 마리 보게 될지 모른다. 혼돈에 마음도 차디찬 물빛에 제 모습 비추며 유영하듯 저절로 마른 풀잎 되어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러고 보니 흐르는 건 강물이 아니라 곰지락곰지락 거리며 수시로 변화하는 사람에 마음인가 보다.     


도시의 하늘엔 새들의 길을 열어두지 않는다 

길이 나지 않은 하늘로 돌아오는 새들은 없다 

건물과 건물 사이 어딘가에 고된 하루를 풀어헤칠, 

날지 못하는 새들이 살아갈 뿐이다


바람 잠든 어느 강가로 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먹이가 될만한 쓰레기가 풍요로운 도시 

골목골목의 틈새는 날지 못하는 새들의 자유로운 땅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

돌아오지 않는 새들을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다

기대를 다 채우지 않아도

매달리던 것들에 의미가 뒤섞여 본질을 잃어도

날지 못하는 새도 새가 되는 도시다.    


사람의 머리 위에도 새들은 집을 짓는다

잡으려 하면 더 멀리 도망치는 저마다의 욕심 같은,

날지 못하는 새다.


도시의 하늘엔 새들의 길이 없다

아주 오래전

날갯짓을 까맣게 잃고 사는 새들에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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