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랑짤랑 거리는 방울 소리가 울음소리였다면 어땠을까?
산사의 풍경소리처럼 은은하게, 마을 너머로 퍼지는 교회의 종소리처럼 청명하게, 때론 수업 시작을 알리는 유년의 기억처럼 아련하여 울음 울기에 어렵지 않았으리라.
일상이 겨울날의 뜨락이 되었다.
차 한잔을 마시면서도 나서지 못하고 창문 밖으로 세상을 내다본다. 그 끝으로, 울타리 삼아 던져두었던 벽돌 사이로 삐죽이 자란 마른풀들이 언제 자리 잡았는지 모를 고무대야의 부추 꽃대와 어우러져 작은 겨울 풍경을 만들어 보였다. 장난감 인형이라도 되어 그 속으로 들어가 햇빛이 얼굴 내밀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같아진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반짝거리는 사계절을 삼키는 것도 모자라 국내 코로나 19 확진자는 어느새 하루 천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영화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을 현실에서 마주치고 만 것이다. 단연코 아닐진 데, 이러다 보통의 날들을 아예 잊어버리고 살게 되는 건 아닌지 두려워졌다.
일하는 만큼 재밌게 살겠다던 그녀가 일자리를 잃었다며 하소연을 해왔다. 무슨 말로 위로를 전할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저마다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 미뤄두었지만 비단 그녀 만의 일이 아닌, 또 개미처럼 성실히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가장 먼저 아픔이 들이닥치는 것 같아 답답해지는 속을 어쩌지 못한다.
덩달아 마음이 잡히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속수무책, 엉엉 울어서라도 짓눌리는 속을 풀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지만, 어느새 소리 내어 우는 법도 잊은 듯하다. 어쩌다 이리도 둔감해진 것인지, 웬만한 통증엔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며 살아온 내게 진심으로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사실 상황이 이렇지 않았다면, 겨울만큼 내 안으로 들어서기 좋은 계절은 없었을 것이다. 가벼워진 나뭇가지처럼 불필요한 것들을 털어내고 찬바람에 맑아진 정신으로 들어앉아 내 그림자를 바라보기에 그만큼 좋은 계절은 없기 때문이다.
새하얗게 눈으로 덮인 도시처럼 용서가 펼쳐지는 계절이 되었으면 한다. 마법처럼 온기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선물 같은 겨울이기를 바라는, 욕심이 자란다.
너에게 편지를 쓰듯 문밖으로 나가 새하얀 눈밭에 발 도장을 찍어 꽃들을 피웠다. 소복을 걸치고 상여꾼 뒤를 따르며 꺼이꺼이 울 듯 울어댄 네게, 할 수만 있다면 그 꽃들을 포장해 보내고 싶다.
이 겨울, 숨어들어 울 곳이 필요했을 네게, 이 꽃들이 위로의 말을 대신 전해줄 수 있을까?
아마도 눈물이 방울 소리 같았다면 이 세상은 아름다운 종소리로 가득 차 행복해지지 않았을까 상상을 펼친다.
그러니 부디 마스크가 코로나 19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뿐, 마음은 가리지 않는 겨울이 되기를 무턱대고 아무 곳이나 빌어 본다.
이 한파 속에서도 꿋꿋하게 봄에 피워낼 꽃을 품은 목련처럼 우리의 겨울이 그러하기,
읽어 두었던 마음이라 덧붙여 봅니다(노자의 수유칠 덕 중)
물처럼 살았으면 한다. 네모진 곳에 담으면 네모진 모양이 되고, 세모진 그릇에 담으면 세모진 모양이 되는, 본질은 변하지 않으며 순응하는 것이다. 가만히 골이진 곳을 따라 흐르며 벼 이삭을 키우고 목마른 사슴의 갈증을 풀어주지만, 바위를 부수고 산을 무너뜨릴 힘이 그대에게 있다는 것을,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마침내 도달하는 곳이 드넓은 바다임을 그대가 잊지 않기를, 어느 해 보다 따뜻한 겨울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