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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Dec 27. 2020

당신이 평안하시기를,

“오겡끼데스까? 와다시와 겡끼데스”


시름시름 그리움을 앓는다. 소화제 몇 알을 습관처럼 삼켜도 겨울이 오면 영화‘러브레터’의 한 장면은 여전히 소화되지 않아 물안개 같은 그리움을 게워낸다. 이대로 눈의 숲으로 달려가 그대의 안부를 소리쳐 묻는다면, 바람은 메아리가 되어 대답을 해줄까?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도 잘 지내요”


게으름도 익숙해지니 마냥 좋네요. 바람도 잠시 멈춘 한 낮, 창문을 넘나드는 금빛 햇살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도 따라 잔잔해집니다. 할 수 있다면 이 평화로움을 전해드리고 싶단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모두가 편안했으면, 잠든 아이처럼 마음도 평안해지시기를요.


삼십 대 초반에 보았던 영화 ‘러브레터’는 2년 전, 등반사고로 죽은 약혼자 이츠카에게 편지를 보내며 시작되는 히로코의 그리움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동명이인인 약혼자 이츠카의 동창생으로부터 뜻밖의 답장을 받으며 끝내 하지 못했던 작별인사를 하게 되는 이야기이지요.


그토록 사랑한 사람을 잃은 히로코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짐작 가능한 일이지요. 꼭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살아온 날에 우린, 비슷한 크기의 아픔 하나쯤 숨겨둔, 눈물 상자를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 마음에 세월을 보태며 살다 보니 이젠 죽은 자와 산 자의 구별도 모호해지는데, 이렇게 어느 것에고 이별을 고해야 할 시간이 되면 언제나 숨겨둔 아픔은 되살아나 마음을 아리게 하네요.


다시없을 소중한 시간을,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지 말자며 보내고 있습니다. '매일, 이렇게 게을러도 괜찮아?' 하는 질문과 싸움을 합니다. 돌이켜보니 왜 그렇게 언제나 뭔가 해야 한다는 막연한 불안에 쫓기며 살고 있는지? 갑자기 멀미가 나더군요. 그래 잠시 멈춤에 시간을 갖습니다. 지나고 보면 같은 자리인데 마음은 언제나 쑥대밭 같은 전쟁터였더라구요. 미련하게도 어느 것에서건 구별과 분리가 우선이란 걸 이제야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환청처럼 들여오는 바람소리에 낮잠에서 깨어납니다. 지친 여행자가 돌아와 문 두들기듯, 거칠고 쉰 숨소리로 겨울바람이 창문으로 와 부딪치고 또 힘없이 돌아서기를 반복하고 있네요.


바깥세상에는 아랑곳없이 팔 베고 누워 잠든 콩이를 쓰다듬으며 가볍게 입맞춤을 합니다.

"사랑해, 이쁜 놈"

달콤하고 부드럽습니다. 사랑이 그런가 봅니다. 그러고도 넘쳐나는 사랑을 어쩌지 못해 콩이의 방식대로 그에 가슴에 머리를 비벼 사랑을 속삭입니다. 따뜻함이 전해져 오네요.


그러고 보면 참 사는 날이 고맙습니다. 코로나 19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없던 재택 근무일이 생겨 콩이와 낮잠을 자기도 하네요. 그만하면 족하다, 싶습니다. 부족하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니 또 그저 모든 것들이 감사해지네요.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올해는 긴가민가, 설마 하다 어찌 보면 허망하게 손을 놓아야 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나름, 얼음 밑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의미를 갖는, 흐르는 시간이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새해에는 부디, 언 땅이 녹아내리고 대지가 피어나듯 모두의 삶이 활짝 피어나기를 더욱 소망하게 됩니다.


참 고마운 일들이, 감사해야 할 분들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웃으면서 즐겁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고, 때론 아파하며 깨닫게 된 일들도 있네요. 어찌하든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보낸, 제겐 긍정적인 변화의 시간인, 한 해였습니다.

어떠하셨습니까?


어떤 꿈을 꾸었을까요?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새해에는 이랬으면 좋겠다 싶은 바람을 갖습니다. 하여 스스로 부족함을 알기에 보다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었던 한해였지요. 그럼에도 세상사와 별개다 싶은,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날 수 없었네요.

생각하신 대로 이루어진 한 해였을까요?


어떤 꿈을 가져볼 수 있을까요?

새해에는 도전적인 삶을 살아보고 싶단 생각을 합니다. 이제까지 머뭇거리던 방식을 던져버리고 나름 한 번 근사하게 바라볼 수 있는 해가 되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그래 화두처럼 저의 새해 단어는 '해보자'로 정하였습니다.

어떤 계획을 하고 계신가요?


페이지를 하면서 속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며 글을 쓴다는 게 때론 부담되는 일이었지만, 푸른 멍이 빠지듯 나도 모르게 숨어있던 분노와 슬픔이 조금씩 묽어집니다. 이상의 나와 현실의 내가 겨우 인사를 나누게 된 것이지요.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좀 더 찾아보려 합니다.


스탠드 불빛 아래 빌린 책을 보다 낙서를 만나게 되었네요. 지우고 싶다는 충동이 요동을 치지만 잘 참아냅니다. 인생에도 지우고 싶은 부분이 있겠지요. 하지만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놔두고 바라봐야 개선에 기준점도 돼주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간질간질하더니 입술 옆으로 큰 뾰루지 하나가 돋네요. 겨울이 곪는가 봅니다. 해마다 겨울 앓이를 하니 앞선 걱정이 어떻게든 표식을 나타내고 싶었나 봅니다. 쉽지는 않았지만 이젠 트라우마라며 농을 던질 정도가 되었으니 앓이도 정이 듭니다. 한 해 그렇게 독자님들과 정이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좀 더 좋은 날들이,

행복한 날들이 찾아오리라 믿습니다.

모자란 제 얘기에 귀 기울여 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새해에도 자잘한 일상에 기쁨이 되었으면 합니다.


마음은 언제나 의식과 지향성이라는 두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합니다. 좋은 마음을 만나 살아가는 날이 밝고 평안하시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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