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조금 춥다 싶은데,
양지바른 담벼락 밑엔 성급한 봄 조각이 자리를 잡았네요. 마른 풀덤불 사이로 삐죽 고개를 내민 여린 풀잎과 마주하는 인사가 마음을 들뜨게 합니다.
그 들뜬 마음에 아이처럼 어느 곳이고 달려 나가 봄 인사를 전하고 싶어 지네요.
‘안녕, 봄’
해말갛게 밀가루 풀을 쑤어 들고 골목마다 선거 벽보 붙이듯 봄 인사로 도배를 하고 싶어 집니다. 까불거리는 마음을 담아 현수막도 몇 개 걸어주면 좋겠지요? 그러다 어느 집에서고 묵은 김치전에 냉이 된장국을 끓여 쪽마루에 걸터앉아 볕을 곁들여 허기를 채울 수 있다면.....
욕심이 과해 지네요.
한 번쯤 쏟아지는 눈을 더 볼 수 있을까요? 미련을 갖게 됩니다. 코로나 19 탓에 채 누리지 못한 겨울이 아쉽고 유달리 많은 희망을 걸고 기다리는 봄이기에, 떠나는 겨울에게 미안한 마음도 가지게 되네요.
기세 등등하게 벽을 차지한 달력장 중, 어느새 한 장이 찢겨나가고 곧 또 한 달이 지나려 합니다. 새해 들어 어떠셨나요? 안부를 묻듯 묻고 싶어 집니다. 저는 어쩌다 보니 해야겠다 하면서 미루어두었던 것들을 한 달에 한 가지씩, 두 가지나 해치워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더 잘하지 못한 것에 조금 후회를 합니다. 하긴 해치워 버렸으니 썩 맘에 들지 않는 게 당연하겠지요. 그래도 품고 있던 미련을 털어낼 수 있어 마음이 홀가분 해졌습니다.
이러하겠다 다짐을 하면서도 너무 쉽게 무너지는 게 자신과의 약속인가 봅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마무리를 잘해두어야지 하면서 또 왜 그리 그 여유에 차일피일 늘어지게 되는지, 몹쓸 맘입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속 시원히 버려도 누가 뭐라 할 것 없는 것들인데, 모두를 속여도 자신을 속이지 못해 끙끙 앓게도 합니다.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세 가지 명사가 고독. 허무, 불안이라는 경제학자의 강의를 우연히 방송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왜 노년을 준비하는 게 삶의 목표가 돼야 하는가의 질문은 순간적으로 삶을 다시 생각하게 히더군요. 그리 생각하면 또 ‘까르페디엠’,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라틴어의 심오한 의미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솝 우화중 하나인, ‘개미와 베짱이’란 동화를 읽으며 집단 무의식에 빠진 우리에겐 쉽지 않은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불안은 겨울을 대비해 음식을 모으는 개미에게서 시작된 것인지 모른단 우연한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살아내면서 우연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인연이 되고, 또 그러한 인연이 운명이 되는, 그래 팔자겠거니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게 삶이지 싶습니다.
몇 년 전에도 어려워 읽어내지 못했던 책을 기간을 정해놓고 읽어내느라 힘겨워했습니다. 요상한 것이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처럼 사람 마음을 들뜨게 하더니 점점 진을 빼놓고 돌아서지도 못하게 미련을 남겨, 결국은 에라 모르겠다. 어쨌든 가고보자로 어두컴컴한 개미 소굴에 갇힌 기분이 되어서야 책값만큼이나 두꺼운 마지막 장에 억지로 올라 깃발을 꽂았습니다.
이십 대 초반까지는 더러 책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직장을 다니며 아이들을 키우고 던져두는 게 책 읽기였습니다. 그래 이제 좀 책을 읽어야지 싶었더니, 시력도, 이해력도 도움을 주려하지 않네요. 조금씩이라도 천천히 이어져왔다면 하는, 아쉬운 미련이 남습니다.
끝말잇기를 하듯 새책을 집어 드네요. 책의 선택에도 우연은 이어집니다. 공부라는 것으로 시작을 하네요. 공부의 공은 하늘 천자와 땅지를 연결하는 뜻이고, 부는 천과 지를 연결하는 주체가 사람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그러니 공부란 천지를 사람이 연결하는 것이고,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 한다 하네요. 공부라 해서 뭐 학문적인 것만 있겠습니까? 무심코 지나던 일상에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살피는 것 또한 공부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공부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것이고 곧 자기 성찰이라 하니, 허무와 고독을 채워주기에 그만한 것이 또 없을 거 같습니다.
순서도 질서도 없는 게 우리의 삶이라는’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이 또 작업을 걸어옵니다. 이번에도 사랑만 하기엔 너무 어려운 꾐에 빠진 것 같습니다. 20년의 수형생활 중 깨달았다는 ‘그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의 결론’이라는 말씀에 나의 어리석음을 되돌아보게도 됩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 하는 여행 중, 가장 먼 여행은 ’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 합니다. 이것은 ’ 철학은 망치로 한다 ‘는 니체의 말처럼 낡은 생각을 깨트리는, 우리가 갇혀있는 완고한 인식 틀을 깨뜨리는 것이 공부라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새해 첫날의 다짐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되는 설날이 며칠 안 남았네요. 5인 이상 모임이 자제되는 상황이니 어느 때보다 슬픈 설날이 될 거 같습니다. 기다림이 지나쳐 원망이 되던 유년의 명절날이 기억됩니다. 할머니 손에 성장하며 가졌던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컸던지, 지나고 보면 살아낼 만한 것들이 왜 그리 커다란 구멍이 되었던지.....
조금 낯설지만 교대로 찾아가 그리움이 채워지는 설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예방책이 있다는 건 큰 희망입니다. 오는 봄을 그 누구도 막지 못하는 것과 같겠지요. 사는 것도 그런가 봅니다. 너무 힘들어 죽고 못 살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아쉬움으로 남는, 미련의 덩어리들 같은 날들입니다. 어찌 보면 한없이 부족한 제가 페이지를 한다는 것에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부끄러워 그만두어야지 하다가, 언니 오빠나 동생들에게 징징거리며 푸념을 늘어놓아 알사탕 하나 받아먹는단 생각도 들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새 정겨운 분들이 많아져 댓글 표정을 보며 별 탈 없으시구나 확인하는 나를 만나게 됩니다. 또는 어딘가에서 어려운 사연을 읽게 되어 추운 겨울 잘 이겨내고 계실까 마음 쓰이는, 더 이상 만나 뵙지 못하는 분도 계십니다. 어떠하든 찾아오는 봄은 모두가 오늘보다 나아지는 날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이 우선입니다. 배고픈 시절과 같지 않아 너무 풍성한 것이 오히려 건강에 해롭기도 합니다. 집안에서 제자리 걷기라도 하는 명절이 되셨으면 합니다. 명절이 지나 운동이라도 할 걸하고 미련이 남지 않았으면 합니다.
봄이 오고 있네요. 갓 고개를 내민 여린 싹도 무성해지겠지요. 그런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