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요란하다.
불만이 소리가 되어 나왔다. 그러나 ‘어디 이런 일이 고객님 뿐이겠어요’ 싶은, 어림없다는 듯 미소를 띠우며 대답하는 직원의 흔들림 없는 태도가 철옹성처럼 막아선다.
서툰 대답이라도 미안함이 묻어 나오면 사그라들 화였다. 만족스럽지 못한 수리에 다시 두 시간째 기다려달라는 말뿐인, 상투적인 대답에 서서히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대부분 완성품을 구입해 사용하는 게 생활용품이다 보니, 고장이 나면 그중 작은 물품은 직접 들고 서비스센터를 찾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번거로움에 먼저 짜증이 찾아든 건지, 소싯적 ‘소비자가 왕이다’란 말에서 아직 헤어나질 못해 그러한 건지, 암튼 서비스 센터에서 참아내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그러다 곧 보다 나은, 현명한 대처를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후회하며 정작 상황보다 들끓는 속에 그리 밖에 행동을 취하지 못한 자신이 싫어져 화가 치밀고 있음을 알아채고 만다.
언제나 감정은 사정을 두지 않고 난데없이 나타났다. 이성을 통해 길들여졌으면 좋으련만, 앞선 감정을 자신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용서도 되지 않아, 결국 자멸하듯 혐오스러움으로 빠져들어 뒤집어지는 속을 어쩌지 못하고 만다.
도대체 이런 난 어떤 나인지? 나이를 더해가며 점점 까탈스러워지는 건지, 여유를 잃어가는 것인지, 속 시원하게 누군가 대답을 해주었으면 하는 심정이 되었다.
‘가시나무 새’의 노랫말이 읊조려졌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이 쉴 곳이 없네, 내속엔 헛된 바람들로 당신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 뺏고 내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정말 내 속엔 어쩌지 못할 내가 너무 많다. 그렇게 요란스레 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것이다.
쉬는 날이 이어져 새벽에야 잠들고 늦은 아침에나 일어나는, 두더지 같은 방콕 생활이 제법 적응이 되어갔다. 고요 속에서 잠 깨어 물을 끓이고 커피 내리는 소리에 의식은 그제야 눈을 뜬다. 어떤 자극도 주어지지 않으니 어느 생각도 침범하지 못해 단조로워진 내가, 떨어지는 커피 방울 소리를 내는 순간이다.
햇빛이 찾아들고 바람이 창밖에 머물며 기웃거릴 땐, 적막감에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온 집안을 뛰어다니고 싶어 졌다. 조금 심심하기도 해 놀아줄 사람이 있었으면 바라는, 그리움에 소리를 내는 순간이다.
티브이를 켜고 입은 채로 여행을 나서기도 한다. 눈 쌓인 고향집 뒷산으로 가 높은 나뭇가지에 숨어있는 새들의 집들을 찾아보며 사각사각 발자국 소리가 되는 순간이다. 창공을 날으며 슬픈 날들은 가고 좋은 날들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새의 노랫소리가 되어도 좋을 것이다. 바람에 부러져 떨어지는 마른 나뭇가지의 소리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요란스럽지 않은, 들어 좋고 행복한 소리를 내며 살아갈 순 없을까?
어떤 감정이든 적절하지 않아도 편안할 수 있게, 끓어 넘쳐흘러 주변을 어지럽히는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작은 일에도 떨그렁 떨그렁 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날들은 이제 그만 버려도 좋을 날들인데, 정작 수리를 받아야 하는 건 제품이 아니라 내가 되어야 했던 건 아닌지,
가시나무 새는 가시에 찔려 죽어가며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한다. 그 가시에 찔린 것처럼 오늘을 반추하며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서히 봄기운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성급히 시간을 가로질러 봄으로 가고 싶은 건 겨울이 힘겨워서보다, 꽃피는 계절처럼 기다림에 시간이 지나 아름다운 소리가 되고 싶은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