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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Dec 16. 2021

우리 동네 목욕탕 세신사

어딘지 모를 어딘가, 아팠다. 시름시름,

병아리처럼 봄볕 내리쬐는 따스한 담장 밑에라도 가 누워 잠들고 싶은 그런 날들이, 한 열흘쯤 지났을까? 퇴근길에 그냥 가까운 병원으로 가 영양제라도 맞고 누워 며칠 지내볼까 하는 생각도 불쑥불쑥 치밀어 올랐지만, 담장 밑 햇볕 쬐기처럼 편안할 리 없는 여럿과 지낼  번거로움에 그냥 끙끙 앓고 만다.    


그런 날 중, 잠결이었다. 찾는 전화에 병가 처리를 부탁하고 허기를 더 이상 참아낼 수 없어서야 어기적어기적 자리를 턴다. 남들은 아프면 입맛도 없다는데, 허 할수록 먹을 것을 더  찾게 된다.    


쩍쩍 갈라진 논밭처럼 연거푸 몇 잔의 커피를 들이마시고 벌어진 땅 틈 사이로 커피가 차올라 잔잔한 물결을 치고서야 겨우 물 오르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기지개를 켠다.    


해결책을 찾아내야 했다. 하계의 신 하데스에 납치된 페르세포네도 아닌데, 몸은 계속해 땅 속으로 빨려 들 듯 끌려가고 있었다. 늘어지는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했다. 삐걱삐걱 거리는 절지동물의 뼈 마디마디를 차디찬 바닷물에 씻어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릴 수 있다면,     


바닷속을 문어처럼 유연하게 헤엄치고 싶었다.    


일주일 가까이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칠천 명을 넘어서고 전파력이 높다는 오미크론에 대한 공포는 확산되어 가는데, 동네 목욕탕에 전화를 걸어 백신 2차 접종 확인서만 있다면 입장 가능하다는 허락을 구한다.   

 

어찌 되었든 뱀 껍질을 벗어내듯 허물 벗는 일은 몸을 편안케 해 마음을 가볍게 하는 일이었다. 시장통 생닭 집 좌판에 펼쳐진, 발 모가지 잘려 나간 토종닭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세신사의 지시에 따라 때밀이 용 간이침대에 벌러덩 들어 누워서였다.    


지나치게 거대하게는 살이 찌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건 세신사에게 덜 미안해해도 되겠다는 안심이었다.    


농사 부쳐 먹을 자신에 땅 한 평 없어 서울로 올라왔다는 그녀는, 아이들 셋을 먹히고 입히고 교육시키느라 안 해본 일이 없다 말을 한다. 공장일도, 식당 일도, 함바집도 다 해 보았지만 때밀이 만한 수입은 없었다 말하는 그녀는 이래 봬도 웬만한 대기업 월급쟁이만큼은 번다며, 그 아들 딸들을 좋은 직장에, 시집 장가를 보내고 아파트 사는데 까지 한몫 거들었다며, 여전히 손주 놈 갖고 싶은 것은 다 사줄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며 자랑이다.    


그 삶의 무게로 질근질근 밟고 두들겨주니 뼈 발라낸 토종닭이 되어 야들야들 시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발걸음 걸음마다 기도하듯 바램을 넣는 나를 발견한다. 제발 그 아들 딸들이 제 것 챙기기에 바쁘지 않은, 엄마의 노고를 알고 살아갔으면 하는 간절함이다.


희한한 일이었다. 제멋대로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어느 시인의 글귀처럼 병세가 제풀에 지쳐 떠나는 모습을 보였다. 닮은 마음을 만난다는 게 알 수 없는 효과를 가져다준 것이다. 무슨 일이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맙고 좋은 일이 되던가?     


오징어 땅콩 과자에 풋사과 캔맥주 하나를 사들고 와 티브이 앞에 앉았을 뿐인데 마음이 그리 편안할 수가 없다. 그러고 보면 약이랄 게 특별한 것도 없는, 편안한 마음 그게 다인, 참 감사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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