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는 시선이 멀어져 가는 계절이다. 밤은 어김없이 찾아들고 건물과 건물 사이 어디론가 숨어들었는지 바람에 소리도 고요하다.
'눈이 오시려나? '
등 기대고 앉아 캔맥주에 해묵은 영화나 볼 거면서 괜한 설렘으로 눈이 내리길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눈이 내린다고 선뜻 그 소식을 편히 전할, 아련히 떠올려 곱씹을 사람 하나 마땅치 않으면서 눈이 내리면, 마치 찾아가 만나야 할 사람이라도 있는 것처럼 한 순간 그 감정에 빠져들어 눈을 기다리고 있는 거였다.
그래서일까? 시절 변화에 둔한 내게도 유독 일찍 찾아드는 계절이 겨울이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대게 그렇듯 추위를 고스란히 견뎌내야 했던 기억은, 여즉 실제의 온도보다 한참 밑도는 체감온도로 유별스럽게 추위를 타게 한다. 그래 얼음처럼 차가운 밤하늘에 별빛도, 하얀 나비 떼처럼 마구 쏟아져 가슴으로 휘날릴 눈도 무서워 따끈한 이불속으로 숨어드는 계절이 겨울인 것이다.
그러면서 온통 하늘이 잿빛으로 젖어 들거나 바람 소리마저 내려앉는 밤이 오면, 혹시 눈이 내릴까 궁금해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다시 전화가 왔다.
담요 한 곁에서 잠들었던 냥이가 잠 깨어 눈빛을 맞춘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수화기 너머로 절망이 내려앉고 있었다.
재차 누구의 핸드폰이 아니냐 묻는 전화에, 다시 사용자가 바뀌었음을 확인해주는, 그게 전부인 내가 미워지는 순간이다.
'차라리 내가 그였으면 좋았을 것을'
냄새만으로 취기가 도는지 게슴츠레 취한 냥이의 눈빛을 붙들고 캔맥주 한 모금을 더 들이킨다.
이미 오래전, ‘순간의 선택이 십 년을 좌우한다’는 모 전자제품의 선전 문구는 거짓이 되었다, 삼년상이라도 치른 듯 용케 임무를 마친 핸드폰의 배터리가 수명을 다했다. 이리저리 손보면 연장 가능할 수명이겠지만 수리 비용이나 새로 핸드폰을 구입하거나 그리 큰 가격 차이가 없어 새 것을 장만하고 만다.
번호를 변경하고 세상의 시끄러움을 끄듯 안내멘트를 하지 않기로 했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사람들과 전혀 기억나지 않는 모호한 이름들, 그 속엔 막연히 내 편이겠거니 기대고픈 사람들과 외면하고 싶지만 회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중 아주 가끔 전화해 술 한잔을 나누며 너무 쉽게 사람에 마음을 고백케 하는 친구가, 언제고 전화를 걸어와 밥 한 번 먹자 말해주기를 기다리게 하는 친구가 있었다. 모두 기억하지 않기로 했다. 핸드폰 배터리 보다야 관계의 수명이 길었으면 좋겠지만 과감하게 털어낸다. 아마 마음 한구석에 언제고 만나야 할 사람은 자연스레 만나지게 된다는 인연의 법칙을, 믿는 구석이 숨어 있기도 해 그러할 것이다.
남들 보기엔 참 별스러운 짓이다. 허나 바람이 불지 않으니 흔들릴 가지가 없듯, 한동안은 그렇게 온실 속에서 홀로 어느 정도 성장의 시간을 갖고 싶어 졌을 뿐이다. 덕분에 내 안의 것들은 모두 고요해지고 불면의 밤들은 잠들어가고 있다.
그런 참에, 그녀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애타게 김 뭐시기를 찾는다. 보통은 한 번의 확인으로 끝나고 마는 행위를 그녀는 시간도 잠잠해지는 한밤중에, 해지는 저녁에, 그리움에 사무쳐 전화를 걸어온다.
별칭이 미친년이었던 어느 상담 선생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내가 그녀와 다름 없어져 가는 기분 탓일까? 잦은 전화에도 차마 차단 설정을 하지 못한다.
조금씩, 사는 날을 억지로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가게 되면서부터였을까? 그녀의 그리움에 농도도, 흐르던 눈물에 희석되어 옅어지면, 더 이상 전화를 걸어오지 않게 될 것이란 것을, 은연중 잘 알고 있기 때문 일 것이다.
그렇게 무덤덤해지며 살아가는 날들이 편안해지는, 그녀가 내리는 눈처럼 늙어갔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면 이웃의 집으로 찾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필요에 의해 제출한 서류의 주소에 실제로 그가 살고 있는지 확인도 필요치 않는 요즘과 달리, 무슨 문제라도 발생하면 오렌지주스 몇 병 사 들고 찾아가 걱정을 거들며 따뜻한 밥 한 끼 나누던, 그저 핸드폰 번호 하나 달랑 입력하면 끝나는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인연을 맺는 방식이었다. 그러니 편하다는 것만이 그리 좋은 세상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연말이라며 밥 한번 먹자던 친구들과의 자리에서 한 친구가 사는 게 너무 외롭다며 하소연을 해왔다. 어느 한순간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바쁘게 돌아가던 삶이 여유가 생겨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그럴 것이라 답했다.
말을 해놓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미안함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외로운 마음을 차단하는 일이 말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뒤늦은 후회다. 그 외로워지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 우린 징징거림을 받아내 줄 사람을 찾고, 때론 의미 없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뒤돌아 서서는 찾아드는 공허와 후회로 몸서리치는 게 아닐까 싶어지는 것이다.
결국 홀로인 시간을 어느 만큼 채워가며 살아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나의 그 길에 다행스럽게 냥이가 있어 자주 웃는다. 스웨터의 부푸러기를 제거하고 밀린 다림질에 뿌듯해지는, 시답지 않은 것들에서 평화와 행복을 찾는다. 서둘 곳 없어 마냥 게을러도 좋으니 냥이와 뒹굴며 캔맥주 하나를 마셔도, 곱게 취해 좋다.
아, 그런데 냥이는, 수시로 내 사랑을 무시한다. 얼만큼 사랑하는지 입 맞추며 숱하게 고백을 해도 시큰둥,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다.
고얀 놈!
이 밤, 눈이 내리시려나?
새하얀 아침이었으면 좋겠다. 밤새 소리 없이 쏟아지는 눈이 겹겹이 쌓여, 세상사 모든 슬픈 기억은 덮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무 일도 아닌 듯 그녀나 나나, 오늘을 지나쳤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라는 것이 오롯이 내 안으로 차오름이 가득한 날을 찾아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