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던 그리움도 정처 없이 떠돌다 잠시 내 집에 들른다. 따뜻한 차 한잔을 얻어 마시면 떠나려나 싶었지만 꼼지락꼼지락 늑장을 피우며 서성거린다. 나서기에 겨울밤 거리는 그만큼 고단하고 매서울지도,
채 시간도 남지 않은,
곧, 오늘과 올해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섭섭하고 아쉽고 안타까운 많은 감정들이 오고 갔지만 지나고 보면 그저 그리운, 되돌아가지 못할 시간이 된다.
십이월로 들어서면서부터 준비했던 이별이기에 막상 이별 앞에 서자 덤덤해졌다. 기대와 실망을 안겨주었던 날들이 책상 위 얹힌 달력에 여전히 또렷하게 볼펜 자국으로 남아있지만, 마치 맘에 차지 않았던 나의 행동들이 달력 탓인 양, 그 달력을 버리면 후회스러운 기억도 깨끗이 지워버릴 수 있을까 하는 착각을 불러와 서둘러 새 달력을 책상 위에 얹어놓게 하였다.
우습게도, 주술사라도 불러 그 달력 앞에 헌물을 쌓고 제라도 올리라면 기꺼이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드는 건, 그냥 한 번 웃어보자는 마음 만은 아닐 것이란 사실이다.
언제 가장 행복하세요?
머뭇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다.
행복이 뭘까?
국어사전에 ‘행복’의 의미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이라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난 지금 분명, 행복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두렵다는, 아니 단순한 육체의 늙음이 아니라 마음이 늙을까 봐 두렵다는 어느 젊은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나이를 먹는다 해서 되고 싶은 내가 없다면, 그것보다 더 슬픈 일은 없을 것 같다는 결론으로 책을 덮고, 자발적 고립의 시간 속에 읽으려 준비했던 책 중, 어느 책을 먼저 읽어볼까 조금 즐거운 고민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은,
눈앞에 있는 행복의 파랑새를 알아보지 못하고 찾아 나서듯
답을 찾아 헤매는 게 혹시 습관으로 들어선 인생길은 아니었는지?
생각을 해본다.
스스로, 한동안 문 밖 출입을 하지 않으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잘살아내는 내가 조금 기특하였다. 그렇다고 사회와 정말 고립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간간히 퇴화돼가는 촉을 세워 티브이를 통해 바깥 소식을 전해 듣고, 쌓아놓은 간식들을 야금야금 꺼내 먹으며, 유튜브를 따라 요가에 요상스러운 자세로 춤도 따라 추고, 따뜻한 담요 속에서 냥이와 낮잠을 자는 일상이, 내내 행복하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코로나로 힘겨운 사람들도 그리 많은데 이리 혼자 행복해도 괜찮을까 미안함에 조심스러워진다.
‘잠시 휴식 중’이라 종이 팻말이라도 만들어 문 앞에 걸어두어야 할까 보았다.
‘애썼다’ 무엇보다 한 없는 모자람으로 동동 거리며 한 해 열심히 살아냈다.
‘잘 참아냈다’ 슬퍼도, 뒤쳐져도, 표현하지 못해도, 때론 조금은 난 척, 척, 하며 잘 살아냈다.
이 꼴, 저 꼴, 별 꼴 다 보아 눈 꼴 시려도, 그저 니 꼴이나 내 꼴이나 별 차이 없다며 뚝심 좋게 잘도 버텨냈다.
그러니 보다 나은 내일은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덧붙일 것이다.
단 한 번도 사랑해보지 못한 겨울을 이제야 사랑하게 되었다. 아니 이렇게 한 없이 게을러도 좋은 겨울을, 따스한 겨울을 사랑하고 있음을 이제야 깨달은 것일 게다. 춥다고, 쓸쓸한 기억뿐인 유년의 기억에 붙잡여 거부해왔던 것들이 이제야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