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는 바람에 궁금증이 묻어왔다. 도시보다 봄이 조금 더 일찍 찾아오는 곳이니 지금쯤 몇몇의 꽃들은 활짝 피었을 것이다. 매화며 개나리며 볕 좋은 곳을 차지한 산수유라면 흐드러지게 피고도 남음이다. 하긴, 무심코 지나치는 도시의 거리를 차지한 개나리도, 긴 겨울을 버텨낸 목련도 꽃망울 터트릴 날만을 눈치껏 살펴보고 있으니, 분명 그곳은 봄이 활짝 피었을 것이다.
하지만 봄이 오면 정작,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꽃은 그러한 꽃들이 아니다.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피어 언제고 볼 수 있는 꽃이 아닌, 누군가 눈여겨보아주지 않아도 들판 어느 곳이고 피어나는 작은 꽃인 것이다. 마을을 둘러싼 어느 길을 걸어도 만날 수 있는 흔한 꽃이기도 하였다. 단발머리를 한 소녀처럼 다소곳하게 피어나 만나는 아무에게나 목례를 건네는 그 꽃은, 맨땅에서도 잘 자라나 고픈 배를 채울 수 있는 식물이라 냉이란 이름을 얻기도 하였다.
바람에 훈기가 돌아 언 땅이 살짝 녹아들 무렵 그 틈으로 냉이는 고개를 내밀었다. 어린 날엔 계집아이 몇이 모여 바구니를 들고 밭으로 가 캐 담아왔던 냉이다. 그러다 냉이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 누구랄 것 없이 아이에게 젖먹이를 하는 어미를 대하듯 더 이상 손대지 않던 꽃이다.
그 냉이가 밭두렁이고 논두렁이고 언덕배기를 가리지 않고 자라는 만큼 종류가 다양하게 많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 냉이를 나생이라 부르던 내 할머니도 그 봄나물이 그만큼이나 영양이 풍부한 식품이란 것을 알 턱이 없었을 것이다. 단지 입 끝이 짧은 손녀를 위해 몇 시간의 노동을 들여 고추장 무침이나 된장국을 끓여 가난한 살림에 밥상을 채우고자 했을 것이다.
회벽만큼이나 거칠던 손녀의 얼굴에 피었던 버짐이 사라질 무렵 냉이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나즈막한 울타리 옆으로 그 작은 꽃들이 바람에 흔들거려서야 밭두렁에 걸쳤던 할머니의 허리도 하늘을 향해 일어설 수 있던 것이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지금의 나로선 상상 불가능한, 마른 체형만큼이나 성질도 나뭇가지만큼 뻣뻣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나 기억한다. 까만 눈동자가 유난히 맑고 투명했다는 것을,
까닭 없이 마음이 무거웠다.
어제와 같은 날임에도 괜한 짜증이 들끓었다.
마음 한가득 쓰레기로 가득 찬 느낌이다.
그렇다고 알게 모르게 쌓인 쓰레기통을 무턱대고 비울 수는 없었다. 속 마음이야 그럴 수만 있다면 통째로 나를 내다 버리고도 싶었다.
여과기가 필요했다.
마냥 행복한 봄날은 아니었겠지만 여과되어 아름다운 것들만 남은 유년의 기억을 소환한다.
무엇이 먹고 싶든, 힘들이지 않고 원하는 입맛대로 사 먹을 수 있는, 더 맛난 것이 많은 날들이다. 그 좋은 날에 부족함 없음이 오히려 부족함으로 다가와 마음을 피폐하고 황무지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다시 마을을 둘러싼 길 어디고 피어있을 냉이꽃을 찾아 그 길을 걸어보고 싶어졌다. 까만 눈동자 맑고 투명했던 그 아이로 돌아가 오늘을 여과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