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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Mar 13. 2022

삼월의 골목길에서    

  골목길, 낮은 담벼락에 등을 기댄 목련이 볕을 쬐고 서 있었다. 다행스럽게 재개발이 무산되어 남게 된 골목길이다. 길가의 우뚝 선 아파트와 급하게 들어선 빌라들 사이 남은 골목은 역시, 사는 사람들도 노후된 건물만큼이나 오래된 사람들이었다.    


  오고 가며 그 목련이 꽃을 피웠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양팔을 벌리고 서면 가닿을 것 같은 파란 하늘이 보였다. 꽃 피면 꽃잎 뒤로 숨어들 하늘이었다. 그 골목길을 지날 때마다 나는 꼭 누군가 불러 세우는 것 같은 환청에 걸음을 멈춰 서곤 하였다. 뒤돌아서면 허공뿐인, 몇 번의 속임을 당하고서야 그게 그리움의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장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그 골목길을 지나는 것은 아니었다. 재래시장이라 하지만 대부분 현대화된 마트 옆에 늘어선 좌판 몇 개가 전부인 시장이었다. 유년의 기억 속에 남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정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어쩌면 그런 탓에, 시장에서 얻지 못하는 아쉬운 무언가를 나는 골목길에서부터 채워가며 시장으로 걸어 들어서고 있었는지 모른다.    


  종종, 마음에 답답함이 드는 날에도 나는 그 골목길을 걸었다. 오늘도 그 골목길을 걷게 되었다. 특별히 장을 봐야 하는 건 아니지만 골목길을 걸어 시장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사는 게 다시 가벼워졌다. 그래 무료함이나 달래자고 틀어 두었던 티브이가 무겁게 가슴을 짓눌러, 마음을 소화도 시킬 겸 시장으로 발길을 둔 것이다.   

 

  기자의 카메라에 잡힌 노모의 허망한 눈빛이 가슴을 시리게 했다. 설마 우리 집까지 산불이 번질까 해, 죽은 남편의 사진도, 자식을 키워낸 추억의 물건도 하나 챙기지 못했다는 노모는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를 확진자 대비 퍼센트로 밖에 전하지 못하는 아나운서의 말이, 얼마 전 다녀온 상갓집의 상처를 후벼 파기도 했다. 몇 날쯤 더 살아 꽃피는 봄날에 떠났으면 했는데, 서둘러 떠난 친구가 미웠다. 죽은 사람이야 말을 못 한다지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지켜보는 나로선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기예보는 오십 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겨울 가뭄이라 했다. 내 마음에도 기상 캐스터를 세웠다면 아마, 그리 말했을 것이다. 두루두루 잔인한 삼월의 시작이 아닐 수 없다.    


  골목 끝자락에 다 달아서야 뒤돌아선다. 텅 빈 길 위로 시간이 멈춰서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게 되었다. 넋 놓고 쉰다 해서 빤히 들여다볼 사람도 없는 골목길이다. 가늠할 필요 없는 시간을 새 한 마리가 기습적으로 날아들었다. 그제야 눈빛이 새를 쫓는다. 새는 익숙한 듯 봄빛이 걸린 나뭇가지에 걸쳐 앉았다. 날아들지 않았더라면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로 온통, 겨울을 벗어내지 못한 나뭇가지 색깔을 하고 있었다. 경계를 하듯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그 새에겐 나도, 골목으로 날아든 사람 하나가 될 터였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낯선 사람 하나가 그의 세계로 날아든 것이다.    


  나이 들어 좋은 것이 하나 생겼다. 아무 데고 주저앉아도 주변 눈치를 보지 않는 편안함이 생긴 것이다. 한때는 아이들로 붐볐을 골목의 자락에 새처럼 엉덩이를 걸친다. 한낮의 시간은 전업주부들의 놀이 터였는지 모를 골목이었다. 해 지는 시간이면 밥 짓는 냄새에 된장국 냄새 가득 찼을 골목이기도 하였다. 형편 좋은 사람들은 어딘가에 아파트를 분양받아 들뜬 마음으로 떠나기도 했을 골목이다.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남은 사람보다 그곳에 살지 않는 집주인들이 그 땅에 아파트를 세우고 싶어 했었다. 그리곤 또 거주인의 의견과 상관없이 골목길로 남게 된 것이다.    


  외형상, 변화와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많은 골목길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복원하기 힘든, 보다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살다 보면 어쩌지 못하는 일들과 참 많이도 부딪치게 된다. 그런 순간 마음을 털어도 허물이 되지 않는 이웃을 잃어버린 일은 가장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그 골목길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어찌 보면 재개발을 겨우 면한 그 골목길이 나와 별반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그 골목길처럼 구획을 그어놓고 선을 넘어서지 못해 뱅뱅 맴도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았던가?    


  젊은 날에는 사람이 사람의 위로가 되는 골목길이었다. 길을 걷다가 낮은 창을 넘어서는 이야기에 저절로 미소를 짓기도 하는 삶이 있는 곳이었다. 그처럼 아름다운 삶으로 가슴 떨리는 일이 꾸준하기를 바라던 골목길이었다. 그러나 이젠 한 편의 시에서나, 더러는 미술관 벽을 차지한 그림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되고 있는 골목길이다.    


  호루라기를 불듯 새가 날았다. 낯선 사람 하나가 그만 날아가기를 바라나 보았다. 새가 다시 돌아와 편안히 쉬기를 바라며 자리를 턴다. 굳이 시장을 한 바퀴 돌지 않아도 어느새 가벼워진 마음이었다.     


  보물을 발견한 듯 빼꼼히, 양지바른 담벼락을 타고 늘어선 스티로폼 박스에서 고개를 쳐든 성질 급한 놈들을 보았다. 뒤엉킨 마른 풀잎을 거둬주지도 않았는데, 한두 놈이 아닌 여러 놈들이 돋아나 있었다. 국민학교 시절 소풍을 가 찾았던, 보물 쪽지를 찾아낸 만큼이나 기쁨이 솟았다. 두서없는 생각이 그때 찾지 못한 쪽지는 아직도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에 미친다. 그 뒷산이 사람의 욕심에 논밭으로 변하지 않고 산으로 남아있기를 바랄 뿐이다.

     

  한동안, 삶이 뿌연 안갯속에 갇힌 듯 모든 것이 정지된 느낌에 답답해했다. 일상의 아름다움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 의욕을 상실했었다. 그런 나를 골목길은 봄으로 이끌고 있었다. 처연하게 찾아오는 봄이지만, 이 봄 힘겨워도 꽃은 피어 날 것이란 속삭임을 전한다. 어쩌면 사는 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노력해 찾아야 할 것이 아름다움인지도 모르겠다.


  곧 봄비가 내릴 것이다. 그 비에 말갛게 씻고 맑은 봄으로 피어나고 싶다. 그렇게 시작할 것이다.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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