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나무 May 08. 2022

내 마음의 폭으로 내 걸음이 되기를

해의 빛이 창문을 투과해 마루 바닥으로 들어와 눕는다. 나의 오래된 연인처럼 말없이, 나의 낮을 지켜주기 위해 밤새도록 달려온 듯 안도의 숨을 내쉬며 노곤한 미소를 보이고 있다.


오늘은 이른 아침이면 잠 깨우던 나의 충실한 알람도 느긋한 휴일을 보내게 될 것이다. 모처럼 창가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즐길지도 모른다. 그러다 생각이라도 난 듯, 해의 빛과 정분난 주인의 밀회를 상상하며 콧수염 아래 감춰진 입술을 실룩거릴 수도 있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참으로 좋은, 늦은 아침이다. 숙제를 하지 않은 아이처럼 뒤척이던 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깊은 수면으로 떨어져 뚝딱 아침을 꺼내놓고 말았다.


그 아침에, 내딛는 걸음마다 몸을 비벼가며 간식을 얻어먹은 냥이를 끌어 앉고 해의 빛 속으로 들어가 눕는다. 환자를 돌보듯 마음을 더듬어 가는 창살의 그림자가 그지없이 따스하다.


몇 달, 과한 욕심을 부렸다. 욕심을 뒤쫓다 보니 어느새 내가, 쫓기는 자가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온전할 리 없는 게 쫓기는 자의 삶이다. 머무는 자리가 불편했고 급기야 잠결에도 도망칠 궁리를 하게 되었다.


자위 삼아 적어보던 글에 욕심이 생긴 탓이다. 글을 좀 더 체계적인 틀 안에서 배워 보고 싶다는 욕구가 들썩거렸다. 되짚어 보니 한때는 글쟁이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던 소녀였다.


.......그 꿈으로부터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여태껏 가족을 위한 삶을 살았다면 이젠 나를 위한 삶을 살아봐야지 하는 보상심리로 무장을 하고, 처음으로 글쓰기 수업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불편함과 짝을 이루고 있는 듯 나의 부족함과 마주하는 시간이 되고 말았다. 좋아하던 글쓰기가 순식간에 밀린 숙제가 되어 부담으로 변한 것이다.


버리지 못한 오래된 꿈이었기에 그랬는지, 감춰둔 허영심을 들켜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그 욕심에 내가 시들어 갔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가 수월할 리 없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의 폭보다 큰 걸음걸이로 마음을 종종거려야 했다.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라는 말이 나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아무래도 지나친 욕심에 다리 대신 내 마음이 찢어지고 말았던 것은 아닌지 살펴야 했다. 차라리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가는 날이 평온한 날들이었다.


잠시 모든 것을 미뤄두기로 했다.


누구나 흔들리지 않고 단번에 균형을 잡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잘해보려는 욕심을 내려놓자 오히려 조금씩 균형이 잡혀가는 듯 보였다.


그러고 보면 사는 내내 욕심을 부리는 게 일이었다. 욕심을 낼만한 것도 아닌 것에서부터 감당 치도 못 할 것에 욕심을 품다 상처를 받는, 지나고 보면 이유도 모를 것에 매달리다 만신창이가 된 나였다.


물론 개중에는 붙잡고 싶지만 너무 늦어 되돌리지 못할 것들이 또는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생각하면서도 잡지 못하는 욕심이 더러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오늘도 또 다른 욕심에 머물러 머뭇거린다는 것이다.


가끔, 포인트가 쌓이면 누적된 점수에 따라 사은품을 주는 게 인생이었다면?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덤으로 받는 게 인생이었다면 욕심을 부리지 않으며 살아왔을까?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또 욕심이 없다면 늘그막에 어느 술집에 앉아 여기저기 자리 잡은 흉터를 드러내며 허세를 부릴 일도 없어 인생, 너무 심심하진 않을까 염려를 한다. 그리곤 버리지 못할게 뻔한 욕심임을 알기에 '그런 게 인생이야' 하며 이율배반적인 타협에 손도장을 찍고 마는 것이다.


콩이가 엄마의 팔 무게를 더 버텨낼 수 없는지 탈출을 감행한다. 하긴 칼과 방패가 되어 수십 년을 사용한 그 어마 무시한 팔뚝의 무게를 작은 고양이가 감당하기엔 벅찼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것도 사랑한다는 이유로 갖다 붙인 나만의 욕심이었던 것이다. 저만치 달아나 털 정리를 하는 콩이는 의도치 않았겠지만, 때때로 욕심도 이렇게 멈춰야 함을 깨닫게 도왔던 것이다. 이렇게 잠시 멈춰 서면 그만인 것을, 참 힘들게도 알아가는 내 나름의 방식이다.


흔들림을 통해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삶의 길일 것이다. 과한 욕심은 언제고 탈이 나게 마련임을 잠시 잊었다. 그러자 조금 글을 못쓰면 어떤가 하는 베짱도 생겼다. 어쩌다 어느 날, 누군가 낯선 이로부터 듣게 되는 따뜻한 위로의 말처럼 나의 글이 낯선 이로부터 듣게 되는, 마음에 와닿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되었으면 그저 감사한 일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던가?


고기도 굽고 좋아하는 커피도 마시고 배부른 마음으로 오후엔 가까운 서점에라도 가봐야겠다. 아주 천천히 나의 마음 폭으로 나의 걸음에 맞춰 좋아하는 것들에 다가서도록 길을 바꿔봐야 할런가 보다.



작가의 이전글 사월의 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