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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Apr 23. 2022

사월의 거리

 사월의 거리가 술렁였다. 집을 나서는 길에 만난 벚꽃이 천연덕스럽게 활짝 웃는다. 가을이면 제일 먼저 노랗게 물들 은행나무를 뽑아내고 살며시 그 가로수 길을 꿰찬 벚나무다. 그러한들 꺼릴 것 없는 벚나무는 보는 이에게 내내 기쁨을 나누는 일만으로 바빠 보였다. 아무렴 그 여리고 고운 모습 뒤엔 분명, 세파를 견뎌낸 야무지고 당찬 구석을 감춰 두었던 것 일 게다.     


  세상사 모든 것이 다 그러하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으련만, 또한 그렇지 못한 것이 세상사의 일인가 보았다. 버티고 버티던 지구의 투정처럼, 어느 날 갑자기 우리의 일상으로 들이닥쳐 삶을 꿰찬 코로나는 접하는 이마다 고통과 슬픔 속으로 집어삼키기에 바빴다.     


  만 삼 년 가까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두려워 불안했던 일상이었다. 어디서고 잔기침만 하여도 마치 바이러스 감염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의 눈총을 받아내야 했었다. 덩달아 마주하는 사람 또한 어디선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는 았을지, 걱정도 하게 되었다. 게다가 마스크를 쓰면 실제보다 이쁘고 멋지다는 '마기꾼' 이란 말이 새롭게 등장했는가 하면, 새로이 시작된 관계에서는 마스크를 벗은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해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괜한 짜증이 쌓이는 일상이기도 하였다. 그러던 차 결국 나도, 바이러스에 감염돼 확진자가 되고 만 것이다.     


  참으로 요란스러운 앓이였다. 어느 날은 문득, 이젠 젊음의 강은 다 건넜나 보다 하는, 마음에 매듭을 짓게도 되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랜 옥중 생활을 끝내고 출소하는 죄인의 마음이 이만했을까 하는 해방감을 맛보기도 하였다. 그만큼 바이러스로 인한 몇 년의 억눌림은 알게 모르게 우리 일상의 자유를 크게 속박하였던 것이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물리친 바이러스였지만 울음이 쌓인 눈꺼풀처럼 자꾸만 졸음이 쏟아졌다. 잔기침은 놀리듯 목젖을 오르내렸고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목소리에선 쉰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버티다 보니 시간은 약이 돼주었다.     


  벚나무만큼이야 당찰 리 없었겠지만 어차피 한 번쯤 부딪칠 코로나였다면, 부딪쳐 봤다는 베짱이 코로나로부터 여간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게 아니었다.   

  

  제일 먼저, 조바심으로 아침마다 찾아보던 코로나에 관한 뉴스를 멀찌감치 던져두었다. 그러자 다른 세상에 사는 듯 마음이 조용해졌다. 무채색의 거리가 서서히 색을 입혀가듯 마음에도 봄빛이 물들기 시작한 것이다. 더더군다나 곧 야외에서만이라도 마스크를 벗게 될 거란 희망의 소식도 들려오고 있지 않던가? 그 평범한 날들이 찾아오면 더 이상 정확한 의사전달을 위해 소리를 높이거나 말을 되풀이해야 하는, 피곤한 일들은 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     

  마스크만 벗어내도 우리의 삶이 그만큼 숨통 트일 것 같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코로나는 감내하기 힘든 일들을 남겨 주었다. 어쩌면 오늘 집을 나서는 이유도 코로나가 바로 주범이 될   터였다. 서둘러 겨울을 빨아 널듯 베란다에 빨래를 널고는 집을 나서지만 발걸음이  무거웠다.


  오늘은 낮술을 좀 마셔야 될 터였다.  

   

  여자 넷의 모임이 조용할 리 없었다. 한동네에 살며 학부모로 만나 젊음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니 할 이야기가 더욱 많았다. 아이들의 이야기에 삶의 이야기가 곁들여졌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자신들의 시간을 찾아가자 덩그러니 빈 항아리처럼 남겨진 여자들이기도 하였다

.     

  술집의 희미한 불빛이 투박한 항아리 같은 여자들을 하얀 목련꽃처럼 조명했다. 한 때 가슴 설레던 소싯적 이이기를 소환해 술안주를 삼기도 한다. 남편만 선택하지 않았다면 다들 더 좋았을 거란 장담에, 모를 인생이지만 가타부타 쉬이 대답을 잇지 못한다.   

  

  얼굴도 마음도 붉게 취한 것이다. 그러다 결국 낮술을 부른 그녀가 숨겨둔 울음을 꺼내 든다. 코로나로 인한 경기침체로 오랜 시간 몸 담았던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위로의 말보다 울음의 언어가 필요한 시간을 침묵으로 함께한다. 너무 희어 눈부셨던 목련 꽃의 최후처럼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누구의  것이라 말할 수 없는 말들이 오갔다. 인생, 오늘이 끝이 아니다. 다 산 날이 아니라며 위로의 말을 주고받지만, 혼자 삭혀내야 할 슬픔임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저마다 돌아갈 시간이 되어서야 누군가  

  "인생 아름답게 살자, 60이고 70이고 80이 된다 해도 살아 있는 날들을 아름답게 살아보자"며 자위적인 말을 쏟아 놓는다.


  삼 년의 간 동안 드글드글 각자의 이유로 마음이 들끓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리두기도 풀렸으니 곧 마스크 속으로 표정을 감추치 않아도 좋은 날들이 올 것이란 희망을 품는다.


  사월,  때때로 숨을 몰아쉬지 않아도 좋을 계절이지 않는가? 그러니 오늘 술렁이는 사월의 거리를 즐겨보는 것만으로 행복한 날임을 곱씹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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