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시여,
어이하여 제게는 노래 잘 부르는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허락하지 않으셨는지요?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고, 무엇을 하기에도 힘든 날씨에
곰처럼 먹고
곰처럼 자고
곰처럼 뒹굴다
시인의 마음으로 시를 읽다 우당탕, 고양이를 따라 건너편 집 옥상에 앉은 참새를 몰래 훔쳐본다.
베란다 창틀에 기댄 엉큼한 두 마리의 짐승을 생각하니 어이없는 웃음이 피었다.
이 무더운 여름 아래 무엇이 멀쩡할까마는, 갑자기 건물에 갇힌 난쟁이가 돼버린 기분이다.
친구 왈,
좀 더 늙으면 가고 싶어도 못 다닌다며 여기고 저기고 좀 돌아다니라지만,
필요한 게 있으면 앱으로 주문만 하면 문 앞까지 가져다주는 세상이니 더더욱 집 밖으로 나가야 할 일이 없어진다. 한 편으로는 더 늙어 후회할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라도 집안에서 고양이와 뒹구는 일만큼 평화롭지가 않다.
제 좋으면 그만이지 싶은, 티브이 화면으로 ‘가수 박정현’의 유튜브를 보고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너무 부러운, 박정현은 왜 저리 노래를 잘할까?
신은 참 너무하다. 내게도 조금 나누어 주시지.....
노래를 듣다 보면 기억의 저편, 어디론가 떠나 주저앉아 있는 나를 만난다.
낯설었던 거리 파리는, 그저 007 영화를 볼 때 나도 가봤지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탈리아는 꼭 가보고 싶어 진다.
마음은 바람인 것이다. 여름날의 바람.
여름날의 바람은, 가끔
책장에서나 묵은 시집 같은 기억을 꺼내
등 떠밀며
골목길을 걸어 오르게 한다
어느 골목이고 마을버스는
뱀처럼 꼬리를 흘리는데
옛집은 주소만 서울시
버스정류장이 없다
긴 그림자를 부여잡고 올라야 하는 그 길
재롱이라도 피우듯
갈라진 시멘트 길바닥 틈새를 헤집고 나와 핀 들꽃이
미안함에 미소를 짓는다
들꽃처럼
도시의 벌어진 어느 틈엔가 끼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기대고 비비며 살아내던 곳
마음이 품고 사는 고향 같은 집이다
몇 평의 마당엔
뉘 집이던가 떠나고 미련처럼 남은
장판을 두른 평상도 있어
밤이면
달님도 따라 누워 누렁이처럼 머리를 디미는 곳이다
손을 뻗으면 가 닿을 것 같은 시간
찾아든 옛집은
울음의 언어, 재개발을 집어삼키고
가슴에 별 하나 품고 사는 사람들을 모두
표류하게 만들었다
깨진 유리창을 꿰맨 테이프처럼
덕지덕지 파스로 부쳐진 기억
이젠, 구 지도에 시처럼 누워
구청 서고에나 꽂힌 번지가 되었다
내 여름날의 바람은
이제 어디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