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나무 Jul 29. 2022

여름날 바람

신이시여, 

어이하여 제게는 노래 잘 부르는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허락하지 않으셨는지요?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고, 무엇을 하기에도 힘든 날씨에  

곰처럼 먹고

곰처럼 자고

곰처럼 뒹굴다 

시인의 마음으로 시를 읽다 우당탕, 고양이를 따라 건너편 집 옥상에 앉은 참새를 몰래 훔쳐본다.

베란다 창틀에 기댄 엉큼한 두 마리의 짐승을 생각하니 어이없는 웃음이 피었다. 

이 무더운 여름 아래 무엇이 멀쩡할까마는, 갑자기 건물에 갇힌 난쟁이가 돼버린 기분이다.     


친구 왈, 

좀 더 늙으면 가고 싶어도 못 다닌다며 여기고 저기고 좀 돌아다니라지만, 

필요한 게 있으면 앱으로 주문만 하면 문 앞까지 가져다주는 세상이니 더더욱 집 밖으로 나가야 할 일이 없어진다. 한 편으로는 더 늙어 후회할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라도 집안에서 고양이와 뒹구는 일만큼 평화롭지가 않다.      


제 좋으면 그만이지 싶은, 티브이 화면으로 ‘가수 박정현’의 유튜브를 보고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너무 부러운, 박정현은 왜 저리 노래를 잘할까? 

신은 참 너무하다. 내게도 조금 나누어 주시지.....

노래를 듣다 보면 기억의 저편, 어디론가 떠나 주저앉아 있는 나를 만난다. 

낯설었던 거리 파리는, 그저 007 영화를 볼 때 나도 가봤지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탈리아는 꼭 가보고 싶어 진다. 


마음은 바람인 것이다. 여름날의 바람.     


여름날의 바람은, 가끔

책장에서나 묵은 시집 같은 기억을 꺼내

등 떠밀며

골목길을 걸어 오르게 한다     


어느 골목이고 마을버스는 

뱀처럼 꼬리를 흘리는데

옛집은 주소만 서울시

버스정류장이 없다     


긴 그림자를 부여잡고 올라야 하는 그 길

재롱이라도 피우듯

갈라진 시멘트 길바닥 틈새를 헤집고 나와 핀 들꽃이

미안함에 미소를 짓는다     


들꽃처럼

도시의 벌어진 어느 틈엔가 끼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기대고 비비며 살아내던 곳

마음이 품고 사는 고향 같은 집이다  

  

몇 평의 마당엔

뉘 집이던가 떠나고 미련처럼 남은 

장판을 두른 평상도 있어

밤이면

달님도 따라 누워 누렁이처럼 머리를 디미는 곳이다     


손을 뻗으면 가 닿을 것 같은 시간

찾아든 옛집은

울음의 언어, 재개발을 집어삼키고

가슴에 별 하나 품고 사는 사람들을 모두 

표류하게 만들었다     


깨진 유리창을 꿰맨 테이프처럼

덕지덕지 파스로 부쳐진 기억

이젠, 구 지도에 시처럼 누워

구청 서고에나 꽂힌 번지가 되었다     


내 여름날의 바람은 

이제 어디로 갈까               


작가의 이전글 빗님은 오시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