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빛이 흐린 날이다. 먹구름이 가득 낀 걸보니 해님도 오늘은 선글라스 장착하고 어딘가 꼭 가야 할 곳이 생겼나 보다. 어쩌면 오랫동안 밀어두었던 그녀를 만나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해님이 하루 쉰다니 오늘은 선글라스를 낄 핑계가 생기지 않는다. 사실 선글라스의 용도는 강렬한 햇빛으로 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한다. 그렇지만 난 숨어들기 위해 선글라스를 사용하고 있다.
선글라스를 끼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마주하기 불편한 것들을 쉽게 외면할 수 있으며, 상대방을 부담 없이 훔쳐볼 수 있고, 낯선이와 굳이 말을 섞지 않아도 좋을 만큼 거리감을 유지시켜주기 때문이다. 더하여 커피 한 잔 사들고 어느 곳이든 주저앉아 자유로운 기분도 즐길 수 있다.
금요일이란 이유만으로 모든 것에서 여유로워지는 날이다. 이런 날은 마음에도 선글라스를 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자 셋이 수다를 곁들여 마시기로 한 술 약속이 기대가 되는 불금이기도 하다.
정말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도 총량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을까? 누가 들고도 못 갈, 집만 지키던 내가 요즘은 바람난 멍멍이 마냥 바쁘다. 뮤지컬에 연극에 연주회에, 술 먹는 약 속까지 더한다.
평소 사람과의 관계에 소홀했다. 맞추자니 힘들고 참자니 속상하고 바라보자니 가끔 배도 아팠다. 그러다 보니 몇몇을 제외하고는 자연스럽게 혼자라는 것이 편한 삶을 선택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안다 그게 열등감에서도 망치기 위한 나의 방어기제라는 것을,
불편하지 않던 삶이 불편해졌다. 사람이 그리운 길목에 서게 된 것이다. 이 나이쯤이면 많은 이가 그러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타인과의 거리도 선글라스를 낀 것처럼 편안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고 거리를 두자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합리적인 개인주의로 삶을 살고 싶다는 거다.
그러면서도 사실 자신이 없는 게 또한 오늘이다. 혹여 모래 속에 머리통만 집어넣으면 숨은 줄 아는 타조처럼 나도 선글라스만 끼면 불편한 자신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 생각하는 건 아닌지 알 수 없기 때문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