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은 애써 울음을 참아내는 듯한 도전자의 모습을 극대화 시키고 있었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손끝으로 울음이라도 문지르는 듯 보였다.
그가 첫 소절을 부르자 얼음장이 깨어지듯 연출된 어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음과 음 사이, 괜한 눈물이 소리 없이 흐른다.
"얄밉게 떠난 님아, 얄밉게 떠나안 님아아, 내 청춘 내 순정을 뺏어 버리고, 얄밉게 떠나안 님아" 노래 제목이 "배신자"인 것과는 달리 청춘도 순정도 뺏어버리고 떠난 그녀에게, 어쩐 일인지 얄밉다 한다. 그녀는 배신자다. 그것도 보통 배신자인가? 청춘을 앗아간 그녀. 순정을 짓밟은 그녀다. 찾아가 앙갚음을 하거나 악을 쓰며 떼를 써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얄밉다가 다다. 오랜 시간 몰래 훔쳐본 혼자만의 사랑이라서? 아님 애초에 그리 될 줄 알았던 사랑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너무 사랑해 미워하기도 아깝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얄밉게 떠난 님 아, 얄밉게 떠난 님아, 내 청춘 내 순정을 뺏어 버리고, 얄밉게 떠난 님 아“ 떠난 그녀를 다시 한번 그려보는 듯하다. 어쩌면 어린 시절, 남여구별도 없이 한 마을에서 그녀와 함께 성장 했을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러다 얼굴에 여드름 돋듯 그녀를 보며 가슴이 뛰었을 수도, 붉어지는 얼굴 혼자 감추었을지도 모르겠다.
"더벅머리 사나이에 상처를 주고 너 혼자 미련 없이 떠날 수가 있을까? 배신자여, 배신자여, 사랑의 배신자여" 다 큰 처녀가 촌스런 더벅머리 사나이를 사랑할 수가 있을까? 왕자님은 못되어도 멋을 부릴 줄 아는 남자와 사랑을 꿈꿀 나이다. 어찌 촌티를 벗지 못하고 더벅머리로 남았단 말인가? 그녀를 탓할 일이 못된다. 그녀의 기대치를 채우지 못한 사내의 잘못이 더 크다. 그녀도 이젠 분가루 바르며 뾰족구두 챙겨 신고 집 밖으로 들락거릴 나이가 된 것이다. 더벅머리 사내만 알아채질 못할 뿐이다. 참 눈치코치도 없는 더벅머리 사내다.
"얄밉게 떠난 님 아, 얄밉게 떠난 님 아, 내 청춘 내 행복을 짓밟아 놓고 얄밉게 떠난 님 아, 더벅머리 사나이에 상처를 주고 너 혼자 미련 없이 돌아서서 가는가? 배신자여, 배신자여, 사랑의 배신자여" 소위 말하는 썸 좀 탈수도 있었겠다. 순박한 마음씨로 그녀의 말이라면 별도 달도 다 따다 줄 듯한 사내, 한번쯤 그 더벅머리 사내의 여자가 되어 아이 낳고 살아보는 것도 생각해 보았으리라.
살짝 쿵, 그런 그녀를 보고 순진한 더벅머리 사내는 저만의 꿈을 꾸었나보다. 세상 전부인 그녀와 알콩달콩 살아볼 날들을, 그러나 어쩌랴? 큐피드는 춘풍에 심술을 부리고 만다.
그녀도 그녀의 가슴을 뛰게 하는 사내를 따라 떠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더벅머리 사내는 매달릴 줄도 모른다.
그렇게 그녀는 떠났다.
더벅머리 사내, 세상이 텅 빈, 살아가는 의미를 상실한 나날을 보내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그도 모르는 사이, 그를 닮은 순박한 처녀와 사랑을 하여 다시 더벅머리 총각이나 그녀 같은 새침때기 처녀의 아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배신자가 1969년생이니, 그들도 이제 오십이 넘었다. 바람결에도 솔 깃 하는 나이다. 추억은 아련해지며 그리움은 더해 갈 것이다. 어쩌면 누구보다 열심히 잘살아왔음에도 텅 빈 마음을 가져 볼 수도 있겠다. 더벅머리 사내는 이제 새치에 염색을 해가며 가끔 그녀가 보고 싶기도 할 것이다. 얄밉게 떠난 그녀, 더벅머리 사내의 청춘을 아프게도, 설레게도 했던 그녀, 정말 얄밉지만 죽기 전에는 한 번만 보고 싶은 그녀일수도 있겠다.
미련 없이 떠난 그녀는 잘 살았을까? 사랑받는 아내로, 따스한 엄마로 가족과 웃으며 살아내고 있는지? 어쩌면 도시의 삶에 지쳐 황폐해지지는 않았을지, 고향 같은 더벅머리 사내를 떠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정말 배신자는 그녀가 아니다. 진정한 배신자는 세월인 것이다.
노래를 끝낸 도전자의 모습이 마음 쓰리게 다가온다. 묘하게도 트로트는 들으면 들을수록 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아마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보다는 상대를 위해 비껴서는 그 시대의 정서가, 누구나 가슴에 숨겨둔, 채우지 못한 것에 대한 체념을 살짝 건드려 그러하진 않은가 싶다.
아, 그놈의 더벅머리 총각은 어디에 가 찾아볼 수 있을까?
얄밉게 떠난 님아, 얄밉게 떠난 님아, 내 청춘 내 순정을 뺏어 버리고 얄밉게 떠난 님아
얄밉게 떠난 님아, 얄밉게 떠난 님아, 내 청춘 내 순정을 뺏어 버리고 얄밉게 떠난 님아
더벅머리 사나이에 상처를 주고 너 혼자 미련 없이 떠날 수가 있을까
배신자여 배신자여 사랑의 배신자여
얄밉게 떠난 님아, 얄밉게 떠난 님아, 내 청춘 내 행복을 짓밟아 놓고 얄밉게 떠난 님아
더벅머리 사나이에 상처를 주고 너 혼자 미련 없이 돌아서서 가는가
배신자여 배신자여 사랑의 배신자여
더벅머리 사나이에 상처를 주고 너 혼자 미련 없이 돌아서서 가는가
배신자여 배신자여 사랑의 배신자여 사랑의 배신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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