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의 명함과도 같은 작품번호 1번에 대하여
클래식 곡명 뒤에 붙은 알파벳, Op.는,
라틴어로 '작품'을 뜻하는 오푸스(Opus)의 줄임말입니다.
우리말로는 ‘작품번호’라고 읽지요.
1600년 즈음 음악사에 처음 등장해서, 악보를 출판할 때 편의상 붙이는 번호였습니다.
자... 그렇다면, 상상해봅니다.
내가 작곡가라면... 어떤 곡을 ‘작품번호 1번’으로 선보일까?
작곡가 슈만은 스물한 살에 피아노곡 <아베크 변주곡>을 작품번호 1번으로 발표했습니다.
한 아가씨의 이름으로 만든 변주곡이 첫 출판작이라니... 슈만답지요?
손가락 부상으로 피아니스트의 꿈을 포기했지만,
슈만은 이후 작품번호 23번까지를, 모두 피아노곡으로 채웠습니다.
또... 브람스는, 스무 살 12월에, 이전에 쓴 곡은 제쳐두고
<피아노 소나타 1번>에 작품번호 1번을 붙여 출판했습니다.
그해 가을, 브람스가 슈만 부부를 처음 만나 그들 앞에서 연주하고,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음악” 이란 극찬을 들었던 그 곡이었죠.
19세기 전반 바이올린의 전설인, 니콜로 파가니니의 작품번호 1번은,
연주자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무반주 바이올린 카프리스>입니다.
여기에는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카프리스 스물네 곡이 담겼어요.
열한 살에 독주 무대에 데뷔해서 전 유럽에서 이미 유명했던 파가니니가,
30대 중반 즈음, 여전히 한창이던 시절에 쓴 곡으로 추정됩니다.
당대 바이올린의 모든 테크닉을 총망라한 작품으로,
오늘날까지 기교를 위한 연습곡이자, 오디션이나 입시곡, 또 빛나는 앙코르 곡으로 사랑받고 있죠.
이들보다 앞서... 베토벤은, 거의 모든 곡에 직접 작품번호를 붙인, 최초의 작곡가였습니다.
고향 본을 떠나 빈으로 온 지 3년 쯤 지난, 1795년,
베토벤은 피아노 3중주 1, 2, 3번에 ‘작품 1’을 붙여서 출판했습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가 연주하는 피아노 3중주는 당시 빈의 귀족들이 가장 좋아하던 편성이었어요.
베토벤은 이 곡으로 악보 판매에도 성공했고, 든든한 후원자도 만났습니다.
무엇보다, 음악의 도시 빈에 작곡가로서 멋진 명함을 내밀며 등장해 이름을 알렸지요.
음악학자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작품 1번은, 작곡가가 자신을 대중에게 알리면서,
또한 자신의 권리를 입증하려는 작품이다.“
베토벤의 <피아노 삼중주 1번 E♭장조, op.1 no.1> 1악장을 들으며, '작곡가의 명함과 같은' 클래식 음악 속 숫자 1을 찾아봅니다.